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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내 주세요. 내가 오늘 떠난다고. 나는 언제나 뉴욕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잠들지 않는 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싶어요. 내가 최고라는 걸 깨닫고 싶어요."


이 경쾌한 노래 'New York New York'을 가장 슬프게 부르는 여자 시시(캐리 멀리건 분). 그녀는 관계중독증입니다. 사람들에게 쉽게 빠져들고 사랑을 갈구하고 매달립니다. 그래서 항상 상처받고 버림받습니다. 그녀는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혈육인 오빠를 찾아옵니다. 오빠의 아파트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조릅니다. 침대가 없으면 마루의 소파라도 좋습니다. 언제나 뉴욕의 일부가 되고 싶었기에 뉴욕을 떠나기는 싫습니다. 매사에 감정 표현이 솔직해 작은 일에 기뻐하고 안달하는 그녀와 달리 오빠는 속을 드러낼 줄 모릅니다. 오빠는 여자를 넉달 이상 사귀어본 적이 없습니다. 데이트를 어떻게 하는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완벽한 남매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감 사는 잘 생긴 백인들입니다.



남자는 성중독증입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 전망 좋은 뉴욕의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브랜든(마이클 파스벤더 분)의 취미는 포르노 감상입니다. 인터넷으로 화상 음란 채팅을 하기도 합니다. 여자 친구 대신 콜걸들이 그의 아파트를 찾아옵니다. 콜걸들과 섹스를 한 뒤 남자는 "마실 것 좀 줄까?"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거절합니다. 남자는 여자들과 물 한 잔도 같이 마시지 못합니다. 그저 성적 쾌락만 즐길 뿐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물을 나눠 마시는 여자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여자가 데이트 신청을 한 겁니다. 남자는 식당에서 주문하지도 않고 머뭇거립니다. 웨이터가 이것저것 추천을 해주다가 돌아가는데 이 장면 참 재미있습니다. 무언가를 함께 먹는 즐거움을 처음 발견한 사람 같습니다. 남자가 타인과 유일하게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인데 처음에 머뭇거리던 남자는 다음날 곧바로 여자에게 대시합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나니 섹스가 잘 되지 않습니다. 결국 여자는 그렇게 떠나가 버립니다. 집에 와서 다시 예전처럼 화상 채팅을 하며 자위행위를 합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남자는 부끄러워서 갖고 있던 모든 음란물들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여자는 뉴욕에서 오빠 외에 달리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견디지 못합니다. 모든 만남은 일회성이어야 합니다. 오빠는 여동생을 내쫓고 나서 거리를 방황합니다. 여동생은 계속해서 삶이 힘들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관계중독증입니다.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못 사는 여동생과 스스로 외에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오빠.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는 남자의 얼굴이 거울 속에서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결국 어떤 응답도 남기지 않은 그는 콜걸들을 만나 쓰리썸을 합니다. 성에 몰두하면서 파괴된 그의 내면과 마주합니다. 세상의 모든 베드신 중에 가장 절망적인 베드신인 명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굳이 두 남녀를 오빠와 여동생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포커스가 가족보다는 인간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면 둘이 남남인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마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사와 토마스의 관계처럼 말이죠. 토마스가 결국 연민에 의해 테레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브랜든도 시시가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자 그녀를 향해 달려갑니다. 절망의 바닥까지 침몰할 수 있었던 그 장면 이후 브랜든은 다행히 한 번의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영화 속에서 두 남매가 사이좋게 보이는 딱 한 장면이 있죠. 바로 지하철 플랫폼에서 서로의 등에 묻은 먼지를 갖고 장난칠 때입니다. 이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서 깃털 만큼의 무게가 브랜든에서 시시에게로 전달됩니다. 브랜든은 어깨 위에 아무 것도 올려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 남자의 삶이 슬픈가요? 안타깝고 답답한가요? 하지만 대도시 속에서 하루하루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삶은 결국 브랜든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요? 그가 빗속에서 절규할 때 공감한 사람이 저뿐은 아닐 겁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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