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엄태화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자 독립영화계에 괴물 같은 신선한 작품이 나타났다고 소문난 영화 <잉투기>는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영화 속에 디씨 격투기갤러리, 아프리카 등 키보드 워리어들이 사는 세계가 그대로 활자화되어 등장한다. <잉투기>는 한 마디로 '젖존슨'에 현피당하고 복수하기 위해 나선 '칡콩팥'의 이야기로 이런 이야기를 굳이 실화에서 찾아 재구성한 감독의 잉여력 돋는 작품이다. 비자발적 잉여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숨은 강자들은 역시 세다.


영화는 미스테리 구조로 시작한다. 도대체 '젖존슨'이 누군가. 영화는 한 번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칡콩팥(엄태구 분)에게 안면타격공포증을 선사한 인물인데 칡콩팥을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괴롭히는 존재다. 칡콩팥은 친한 형 '쭈니쭈니'(권율 분)와 함께 격투기를 배우겠다고 도장을 다니는데 그곳은 키보드 워리어들이 링 위에서 현피 뜰 수 있도록 '잉투기'를 여는 곳. 사범(김준배 분)의 조카인 영자(류혜영 분)는 밤에 아프리카에서 BJ를 하며 치킨 먹방 라이브하는 재미로 사는 고등학생. 칡콩팥의 굴욕 이야기에 끌린 그녀는 칡콩팥을 도와 그를 격투기 선수로 키워낸다. 이제 정정당당하게 젖존슨과 잉투기를 하려는 칡콩팥. 사실 이 훈련 장면에서는 영화가 갑자기 <록키>나 <완득이>처럼 '잉여인간'을 제도권으로 키워내려는 메시지를 담은 것처럼 보였는데 다행히 <잉투기>는 그 정도로 야심이 적은 영화는 아니었다. 젖존슨과의 대결이 무산되고 괴로워하던 칡콩팥이 디씨 갤러들의 현피 성지인 간석오거리에서 폭주하고, 감독은 이를 영자의 교실 밀가루 투척 라이브와 교차편집하면서 영화는 좀 더 거대한 야심을 드러내며 막을 내린다.


<잉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는 영자 역할의 류혜영이었다. 다리만 축복받은 그녀는 가느다란 눈을 치켜뜨며 "잉여력 돋네" "지금 스토킹하심?" 같은 '인터넷 문어체'의 대사를 내뱉을 때 정말 요즘 학생처럼 보이는데 지금껏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마치 만화의 어느 칸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교실로 쳐들어가 문을 닫고 밀가루를 뿌릴 땐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의 <말죽거리 잔혹사> 정신을 거의 10년 만에 스크린에 되살려냈는데 그 비슷한 장면을 이미 <품행제로>의 베게 씬이나 <배틀 로얄>에서 본 적 있어 식상했지만, 아이폰으로 아프리카에서 라이브 중계하며 잉여력을 뽐내는 부분에선 새로움이 돋아났다. 결국 이 영화의 묘미는 칡콩팥과 영자라는 두 인물의 세계가 '디씨'와 '아프리카'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키보드 워리어들의 세계와 '접속'될 때 현실감 돋으며 폭발한다는데 있다.



아쉬운 것은 두 남자 캐릭터였다. 쭈니쭈니는 도대체 왜 칡콩팥과 함께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이고 무슨 사연으로 잉투기를 벌이는지 설명이 미흡한 캐릭터다. 링 위에 서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려했다면 그에게 더 많은 사연이 필요했다. 주인공인 칡콩팥은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젖존슨에 당한 복수만 꿈꾸는 인물인데 칼을 들고 다니면서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다는 것은 알겠으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캐릭터다. 마지막 장면에서 폭주하면서 그전의 밍숭맹숭한 장면들이 사후정당화되기는 하지만 이런 파격적 엔딩이 아니었다면 칡콩팥 캐릭터를 동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