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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가 극영화처럼 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 물론 정도가 심한 포르노 영화는 X등급을 받을테고, X등급을 받으면 광고에 제약이 있지만 전용관에서 상영할 수는 있습니다. 1972년 제작된 <목구멍 깊숙이>는 최초로 극장 개봉한 포르노로 유명한 영화입니다. (최초라는 데 대해서는 논란이 있긴 합니다.) 당시는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니 극장 개봉이 아니면 포르노를 볼 수 없던 시대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롤랑 바르트는 포르노그래피는 균질적이어서 자신을 찌르는 푼크툼이 없다고 했죠. 성기를 촬영할 때도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메이플도프가 한 것처럼 팬티의 그물을 접사해줘야 비로소 균열 속에 혼란이 생기며 푼크툼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냥 찍으면 포르노, 감추며 찍으면 에로라는 거죠. (아마도 <아티스트 봉만대>의 봉만대 감독이 한국에서 이걸 가장 잘 이용하는 감독일 듯합니다.)



어쨌든 <목구멍 깊숙이>는 그냥 성기만 나오는 포르노는 아니고 드라마가 있는 포르노입니다. 그 드라마라는 것은 섹스를 아무리 해도 흥분을 느끼지 못하던 한 여자가 의사를 찾아가 클리토리스가 목구멍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블로우잡(Blow Job)을 하며 흥분을 만끽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줄거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어떤 줄거리라도 있어야 하드코어 장면의 개연성이 부여되고, 소송 위험을 줄이고,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왠지 일본의 닛카츠 로망 포르노가 섹스 장면만 있으면 스타일이나 스토리에 제약을 두지 않아 각종 실험 영화의 화수분이 되었던 것을 떠올리게도 하죠.


<러브레이스>에서 린다 러브레이스(아만다 사이프리드 분)는 척(피터 사스가드 분)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척은 돈을 노리고 린다를 포르노 영화에 출연시킵니다. 자신의 부인을 포르노 영화에 출연시키고 창녀로 만들고 거부하면 때리기까지 하는 악한 남자. <나쁜 남자>의 조재현을 떠오르게 하나요? 영화는 그녀의 기구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 영화의 구성입니다. 전반부는 린다가 포르노 스타가 되는 과정을 다룹니다. 고지식한 부모 아래서 자랐던 그녀는 포르노가 뭔지도 몰랐지만 시키는대로 했더니 어느날 스타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그녀를 버리고 말죠.



그리고 영화는 6년 후로 넘어가 그때부터 과거를 다시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조금 헷갈리지만 특이한 구성입니다.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린다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억지로 포르노에 출연한 것이었고, 이후 이름을 바꾸고 결혼해 다른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린다 러브레이스였음을 고백하고 포르노를 반대하는 여성단체 편에 섭니다. 그리고는 가족과 화해합니다. <러브레이스>는 결국 한 실존 인물의 안타까운 삶을 독특한 플롯으로 창조해낸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실존 인물은 이미 2002년 사망했기 때문에 자료에 의존해 각본을 썼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의 자서전이 주요 참고자료였을텐데 아쉬운 것은 영화는 그녀의 삶을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 하에서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녀에게 벌어진 일은 영화에서 보여진 것보다는 좀더 논란 속에 있습니다.



잠깐 <목구멍 깊숙이>로 들어가 봅시다. <목구멍 깊숙이>는 2만 2천달러로 제작해 자그마치 6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둔 전대미문의 흥행작입니다. 투자 대비 수익이 엄청나죠. 그것도 공식 집계된 것만 그렇습니다. 포르노 영화의 특성상 이후 B자 비디오 테잎이 얼마나 돌았는지는 알 수도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제작자가 제발 속편을 찍자고 사정할 만합니다. 과연 영화의 힘만으로 이 정도의 대흥행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당시 시대상황을 함께 봐야 합니다.


1972년은 1960년대 후반 한창이던 성해방 운동이 꽃을 피우던 시기입니다. 남자만 일방적으로 오르가즘을 느끼던 시대에서 벗어나 여성이 스스로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 남자들의 성기를 빤다는 펠라치오 스토리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그것도 닳고 닳은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 시골에서 막 올라온 듯 촌스럽고 주근깨 많은 여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프리섹스, 마약, 히피... 이런 문화들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등장한 <목구멍 깊숙이>는 덕분에 지식인들에게도 환영받았습니다. 트루먼 카포티, 잭 니콜슨, 워렌 비티, 프랭크 시나트라 등 저명 인사들이 이 영화를 보고 찬사를 보냈고 영화가 정부의 압력에 의해 상영금지된 뒤에는 변호사 비용을 지원하기까지 했습니다. 말하자면 당시 <목구멍 깊숙이>는 관람 자체가 내가 얼마나 열린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일종의 문화현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출연한 실제 인물 린다 러브레이스는 정말 <러브레이스>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강요에 의해 포르노를 찍었을까요? 원동연의 저서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에 의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자신의 출연을 반대하던 마피아를 찾아가 오럴 섹스를 해주는 조건으로 배역을 따냈습니다. 적극적으로 영화에 출연하고자 했던 겁니다. 또 영화가 대히트를 쳐 스타가 되고난 후엔 할리우드로 가려고 했는데 이때 이전에 찍었던 영화들 중 동물과 섹스하는 수간 포르노 등 난잡한 성생활이 문제가 되어 결국 할리우드행은 무산되고 맙니다. 이후 그녀는 자서전을 내고 자신이 강요에 의해 포르노를 찍었다고 심경을 토로하며 포르노 반대 운동을 했지만 어느 순간 다시 포르노 잡지에 커버모델로 등장하는 이중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쯤되면 그녀의 인생은 억지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기엔 곤란한 논란 많은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린다는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느 정도의 노출을 보여줄 지가 관심사였는데 영화는 영리하게도 노출에 대한 관심을 플롯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쨌든 아만다의 연기는 멋집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발랄한 처녀가 고통 속에 살아가는 과정을 주근깨 많은 얼굴로 잘 포착해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린다의 고지식한 엄마 역할을 샤론 스톤이 했다는 것입니다. 한때 최고의 섹스 심벌에게 포르노 스타를 내팽개치는 엄마 역할이라니, 왠지 역설적으로 잘 어울리는 캐스팅입니다.


PS) <목구멍 깊숙이>의 원제인 Deep Throat에는 '내부 제보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흥행하던 1972년부터 1974년 닉슨이 대통령을 사임할 때까지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벌어졌고 그때 어둠 속 익명의 제보자를 이 영화에서 딴 'Deep Throat'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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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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