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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처음과 뒷 부분에 애플 로고가 선명한 노트북이 등장하고 카메라가 틸트업하면 두 여자가 광고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첫 장면에선 레이첼 맥아담스와 누미 라파스, 뒷 장면에선 누미 라파스와 카롤리네 헤어퍼스다. 스마트폰을 어떻게 하면 스마트하게 광고할 수 있을까가 이들의 주제. 그러나 모니터를 바라보는 두 여자들의 눈빛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한 여자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고 다른 한 여자는 무심한 듯 시크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모그래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히치콕을 닮고 싶어한 정신분석학 스릴러와 다양한 장르 영화다. 전자에 속한 영화들로는 <캐리> <드레스드 투 킬> <보디 더블> <팜므 파탈> 등이 있고, 후자에는 <스카페이스> <언터처블> <허영의 불꽃> <칼리토> <미션 임파서블> 등이 있다. <패션 위험한 열정>은 전자의 계보를 잇는 영화다.


묘령의 금발 여인이 등장하고,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영화는 관객과 두뇌 게임을 벌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는 감독이 젊었을 때 보여주었던 재능을 따라가지 못한다. 영화는 초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분리되어 있는데 그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다. 뒷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전반부를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다고 할까. 영화는 초반부에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두 여자의 파워게임을 보여주는데 후반부로 가면 직장 내 문제는 모두 덮어버린다. 즉, 직장 내에서 상사와 부하의 수직 관계였던 세 사람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평적 관계가 되는데 이 지점이 갑작스럽다. 광고 회사라는 배경을 후반부에 전혀 이용하지 않으면서 영화 전반부에 광고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그대로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캐리>에서 아주 효과적이었던 화면 분할 기법이 이 영화에서도 쓰이고 있는데, 발레 [목신의 오후]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화면 분할로 나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참 뜬금없기도 하거니와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까지 영화가 말라르메가 쓰고 드뷔시가 선율을 붙인 [목신의 오후]처럼 몽롱한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어울렸을테지만 전반부는 너무나 관습적인 상사와 부하 이야기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쨌든 억지로라도 [목신의 오후]와 이 영화 스토리를 연결시켜보면 어울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춘곤증에 빠져 아름다운 요정을 찾아 내려온 목신 이야기의 관능미와 에로틱한 몽상의 흔적이 이 영화에도 담겨 있긴 하니까.


전반적으로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리게 하지만 많이 아쉬운 이 영화에도 기억해야 할 장면은 있다. 누미 라파스의 고층 집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5분은 브라이언 드 팔마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누미 라파스와 카롤리네 헤어퍼스가 휴대폰 동영상을 놓고 싸우는 와중에 형사는 범인을 오해한 것이 미안해 사과의 꽃다발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고 죽은 레이첼 맥아담스의 쌍둥이 언니는 동생의 스카프를 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다. 카메라는 자유롭게 공간 사이를 유영하는데 교차 편집의 호흡은 점점 빨라진다. 이 한 장면만은 다시 볼 가치가 충분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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