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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를 아이맥스 3D로 관람했습니다. 4DX 3D가 더 어울리는지 혹은 메가박스 M2가 더 훌륭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는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는 게 맞을 것 같더군요. 예상대로 영화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고 왕십리까지 찾아간 선택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고집스럽게 영화를 극사실주의로 찍었습니다.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러 파견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 분) 박사와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 선장은 인공위성 파편을 피해 지구로 귀환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라이언의 경험이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무중력상태의 우주에서 이동하고 러시아와 중국 우주선에 탑승해 대기권으로 들어옵니다. 일종의 우주 재난영화이기 때문에 극적인 재미를 위해 파편이 유성처럼 비오듯 날아오고 그에 맞춰 소유즈선이 폭발하는 장면 등을 집어넣었습니다. SF에 관심이 많은 필자가 보기에도 이 영화는 그동안 SF 영화들에서 지적되었던 여러가지 비현실적인 문제들을 모두 제거해버린 거의 완벽한 우주경험 영화입니다. 예컨대 우주에서는 공기와 파동이 없어 소리가 날 수 없는데 <스타워즈>에서는 광선검이 쉭쉭거렸고 <아마겟돈>에서는 도킹하는 우주선이 굉음을 내뿜었죠. 또, 지구 위 20km 상공에서는 중력 자기장이 미치지 못해 아무것도 빨아들일 수 없는데 <스타트렉 다크니스>의 엔터프라이즈호는 대기권을 뚫고 지구로 추락해버렸습니다.


이처럼 <그래비티>는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으로 만든 장인정신의 영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SF영화에서 기대하는 게 그것이 전부일까요? 만약 먼 미래에서 이 영화를 다시보기로 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경탄할 수 있을까요? 시시한 옛날 이야기 취급받지 않을까요? 지금이야 무중력상태를 담아낸 카메라가 새로운 기술이라고 환호하고 있지만 미래에도 그럴까요?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선 스토리에 좀더 상상력을 발휘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죽은 딸을 잊기 위해 우주로 왔고 이제 삶의 의지를 찾아 지구로 가려 한다는 메인 플롯 하나로 버티기에 우주는 넓습니다. 러닝타임이 90분으로 짧긴 하지만 그마저도 단편영화를 길게 늘여놓은 영화 같습니다.


물론 기술적인 성취는 분명합니다. 모든 공로는 카메라와 우주 세트에 돌아가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무중력상태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구의 힘보다 강한 인공 물체는 만들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죠. CERN에서 실험중이라는 소위 '반물질'이라는 게 비슷한 것이긴 한데 누구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우주로 나가서 촬영한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영상을 뽑아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초반 롱테이크 장면의 카메라는 마치 우주에서 촬영한 것 같았습니다. 어떤 멕시코 기자는 감독에게 실제로 우주에서 촬영했냐고 묻기까지 했다죠. 그만큼 정교한 세트와 자연스런 카메라 동선이었습니다. 또 우주에서 보는 일출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도 알게 됐네요.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최고 우주 영상이라는 찬사는 이 영화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아이맥스 3D로 황홀한 우주 체험을 하고 나면 어느새 라이언 박사는 지구에 추락해 있습니다. 그녀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중력에 늘어진 뼈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서 흙을 움켜 쥡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그렇게 삶의 의지를 확인할테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우주 체험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가 경험했고, 또 <콘택트>의 앨리너 박사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이야기 너머 이야기의 세계로 라이언 박사 역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우주체험보다도 그녀의 인생이 더 궁금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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