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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아등바등 힘들게 사는 것 같은데 그 친구는 참 쉽게 너무나 잘 사는 것 같다.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는 모든 면에서 월등해 보인다. 집안 좋고 외모 좋고 인기도 많다. 그에 반해 나는 가진 거라곤 열등감 뿐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긴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불공평한 세상에서 나온 것이다. 더 우월한 자가 말하는 평등은 '동정'에 가깝고, 열등한 자가 말하는 평등은 '꿈'이니 말이다. 꿈은 그럴듯한 포장지에 담겨 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다. 그중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더이상 꿈 취급도 받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누군가의 넋두리일 뿐이다.


이야기가 이쯤 흘러가면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아이가 모범생에게 복수하는 <명왕성> 같은 스토리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다. 아이가 우울하면 아이들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소년 이카리 신지는 한 명으로 족하다. 그래서 아이는 밝아야 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여야 한다. <몬스터 대학교>의 눈 한 개 달린 마이크 와조스키는 왜소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아이괴물이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스캐어링 명예의 전당'에 서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 드디어 'MU'에 입학한다. 생각해보면 MU는 몬스터 유니버시티의 약자이면서 동시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약자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잉글랜드 명문구단에 입단했던 박지성처럼 마이크도 노력하면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어릴적부터 "넌 안돼"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마이크는 특유의 낙천성으로 계속 도전한다. 현실은 자주 기대를 배반하지만 그것이 문화의 포장지를 껴안은 영화에서라면 기적은 더 자주 일어난다.


반면 제임스 설리반은 전설적인 MU의 졸업생의 아들로 마이크의 정반대편에 있는 괴물이다. 타고난 재능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천재라고 할까. 시험공부 하지 않아도 항상 만점 받는 아이, 매일 놀러다니는 것 같은데 수업시간에 늘 칭찬받는 아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 아이, 누구의 아들이라며 선생님이 특별 관리해주는 아이. 이런 아이와 경쟁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런데 이런 만남조차 그나마 학교니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특목고가 넘치는 시대엔 이런 만남도 불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배경이 전혀다른 두 괴물은 같은 대학에서 만났다. 시골에서 막 상경한 소년이 강남 엘리트 집안의 아이와 같은 과 동기로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처음엔 호기심이 일지만 갈수록 거대한 벽이 느껴진다. 그 벽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까마득하게 높아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정은 계속된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남 아이가 시골 소년의 촌스러움 속에서 번득이는 재능을 발견했거나 혹은 시골 소년이 강남 아이의 꽉 짜여진 구조 속에서 일탈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가능하다.



<몬스터 대학교>는 영리하게도 마이크와 제임스가 경쟁하는 것처럼 진행하다가 두 괴물을 동시에 열등반으로 보내 한 팀으로 묶어준다. 두 괴물이 계속 경쟁했다면 이것은 열등한 자가 우등한 자에 맞서는 계급투쟁의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둘을 한 팀으로 묶으니 이제 팀웍의 이야기로 변했다.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경쟁한다. 회사의 면접 담당관은 개인의 능력 만큼이나 조직에 융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팀웍을 중시해 팀으로서 승리하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 팀에 열등한 자가 있다면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만약 내가 우리 팀에서 가장 열등한 자라면, 나 때문에 우리 팀이 위기에 처할 지도 모른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이 영화의 해답은 "나만의 장점을 찾아라" 그리고 리더에게는 "팀원들의 장점을 개발하라." 결국 답은 이미 내 안에 들어 있고 나는 그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아마도 지금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줄 수 있는 모범답안 중 하나일 것이다.


<몬스터 대학교>는 결국 태생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긍정적인 마인드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아메리칸 드림의 답습이지만, 거기에 '팀웍'의 이야기를 더해 협동심을 고취시켰다. 이것은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되기 전부터 줄곧 주장해온 "협동심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토이 스토리> <카> <니모를 찾아서>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퀼인 이 영화는 두 괴물이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사내 우편함에 취직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전편에서는 제임스 설리반의 털을 실감나게 표현해 화제가 됐는데 이 영화에서는 실사와 거의 흡사한 배경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술적인 것들은 더이상 큰 화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애니메이션은 더이상 '실제와 똑같은 영상'이라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영화는 주인공만 인간에서 괴물로 바뀌었을 뿐 스토리나 배경은 기존 할리우드 스쿨 무비와 거의 판박이라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또, 몬스터 캐릭터에서 느껴지는 감정 역시 예전 같지 않았다. 픽사 영화를 볼 때 줄곧 느껴왔던 '동경' '판타지' 같은 감정을 더이상 느낄 수 없었고 그저 한 편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본 것처럼 무덤덤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은 픽사 팬으로서 대단히 실망스러운 경험이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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