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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래 세계를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중에서도 미래를 정말 그럴 듯하게 그린 영화를 좋아합니다. 극단적인 상상력 속에 있으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헝거 게임>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마치 <네버 렛미고>처럼 지금과 전혀 다른 미래이면서도 미래같지 않게 그려내고 있거든요.


문제는 그 분위기에 이끌려 가다보면 이 영화의 단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도 못본 척 해야하나 고민이 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참아줄 만합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고나서 본격적인 '헝거 게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기본적인 설정이나 줄거리라면 원작자 수잔 콜린스에게 따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시나리오는 소설과 분명히 다른 또다른 독립된 영역입니다. 모든 영화 관객이 원작 소설을 확인하면서 영화를 봐야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이 말이 제가 원작을 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겁니다.


영화 속 세상은 총 13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에 캐피톨이라는 부자동네가 있고 변방으로 12구역의 가난한 동네가 있습니다. <엘리시움> <업사이드 다운> <가타카> <설국열차> <아일랜드> <인 타임>처럼 부자와 빈자가 명백하게 나뉘어진 미래 세계가 배경입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가난한 주인공이 혁명을 시도하겠지만 이 영화가 다른 SF 영화와 다른 점은 섣불리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왠지 불합리한 세상을 뒤집어야 할 것 같지만 영화는 그런 뉘앙스만 풍기다가 끝납니다. 한 마디로 좀 어정쩡한 것이죠. <네버 렛미고>처럼 아예 가난한 자들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부자들의 시스템에서 그들이 만든 규칙대로 게임을 해 승자가 된 뒤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매력으로 인해 74회나 해온 이 게임 시스템에 약간의 생채기가 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이 의도한 게 아니었죠.


이 영화의 또다른 레퍼런스는 '빅 브라더'와 '서바이벌 게임'입니다. <트루먼 쇼> <엑스페리멘트>처럼 그들은 그들을 지켜보는 자들을 위한 장난감일 뿐이고, <배틀 로얄> <10억>처럼 수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독재국가 판엠이 가난한 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헝거 게임 자체에 많은 모순점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설국열차>에서 왜 열차가 배경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세상은 얼어버렸다고 하면서도 설국열차는 얼지 않은 기차길을 빙빙 돕니다. 전세계를 돌면서도 선로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게 참 이상한 것처럼, <헝거 게임>에서도 캐피톨 사람들이 왜 이 게임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12구역에서 무작위로 뽑은 청춘들을 데려다가 미니 올림픽을 해 승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 오히려 체제유지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처럼 며칠 동안 라이브로 방송되는 이 지루한 서바이벌 살인쇼를 과연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까요?


게임의 기획자들은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자들이 로마 시대의 검투사처럼 훈련받아 죽음을 무릎쓰고 싸우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 아이들은 영웅이 되고 싶은 검투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가난하지만 그럭저럭 살아왔고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내가 대신 살아야겠다는 욕심은 이 영화에서처럼 부자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시스템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정글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오는 것입니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존할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자발적으로 참여해 스스로 영웅이 되려 하는 게임이 서바이벌 게임입니다. 지금처럼 아무도 자원하지 않고 추첨으로 억지로 희생자를 만드는 방식은 게임의 시청자에게 동정심만 유발해 오히려 체제 유지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헝거 게임>의 서바이벌 게임은 어쩐지 핀트를 잘못 잡은 느낌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영화는 후반부로 가면서 삼각관계 로맨스로 흘러갑니다. 여자 주인공이 별다른 갈등 없이 갑자기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를 고향에 있는 남자친구가 화면으로 지켜보는데 참 부자연스럽습니다. 그동안 진지하게 빈부격차 체계와 폭력을 자제한 감성적인 서바이벌 게임으로 주인공에게 동화되도록 만들어온 이 영화의 종착역이 결국 삼각관계였다니 허무한 엔딩이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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