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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씌인 집에 일가족이 이사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2층집. 다섯 딸과 함께 살고 있는 페론 가족은 새 출발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 집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말이죠. 더 끔찍한 것은 이 사건이 실화라는 겁니다. 악령을 쫓고 기념품을 모으던 워렌 부부가 겪었던 가장 끔찍했던 사건이라고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의 감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있을 법한 것'에서 옵니다. 영어에 'uncanny' 라는 단어가 있는데 두려운 낯설음을 뜻하는 말이죠. 신비롭고 으스스한 기분은 머리에 달려 있어야 할 머리카락이 하수구에 꽂혀 있을 때, 수도에서 물이 아닌 핏물이 나올 때, 혹은 이 영화에서처럼 움직이지 않아야 할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는 기분이 들 때 극대화됩니다.


유령의 집, 엑소시즘, 악령 이런 오컬트적인 소재는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도 근근히 만들어지고는 있습니다. <엑소시스트> 새 시리즈를 비롯해 <콘스탄틴>, <오멘> 리메이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의 연장선보다는 제임스 완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쏘우>의 기념비적인 성공 이후 복수극 <데쓰 센텐스>로 실패를 맛본 말레이시아 출신 감독인 그는 <데드 사일런스>부터 자신만의 공포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컨저링>에도 등장하는 인형호러의 초기버전인 이 영화는 <사탄의 인형>처럼 낯익은 것이 오히려 무척이나 낯설어지는 경험을 공포로 극대화한 영화입니다. 그는 <쏘우>처럼 피튀기는 공포영화에서 벗어나 심리를 이용해 공포를 극대화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후 <인시디어스> 시리즈와 <컨저링>으로 이어지는데 <컨저링>은 <데드 사일런스>의 인형과 <인시디어스>의 하우스 호러를 결합한 제임스 완 감독의 야심이 묻어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컨저링>은 최근 만들어진 공포영화 중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컨저링>의 기본 바탕은 스릴러입니다. 형사가 범인을 쫓는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워렌 부부라는 퇴마사가 악령을 쫓아 페론 가족의 집으로 옵니다. 그들은 그 집의 과거를 캐고 악령의 원인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보통 스릴러가 관객과 주인공 사이에서 정보 흐름을 통제하며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관객에게마저 정보를 차단함으로서 최대한의 서프라이즈 공포를 이끌어냅니다. 예컨대 다른 공포영화라면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에 대한 이야기로 러닝타임을 채웠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짤막하게 암시만 되고 있을 뿐입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는 과거 공포영화의 걸작들인 <새> <엑소시스트> <샤이닝>의 이미지가 비슷하게 차용되고 있는데 이는 감독이 과거 거장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이 영화가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배경을 1970년대로 설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대와 동떨어진 시대에 고립된 마을이라서 휴대폰도 등장하지 않아 연락이 단절되고, 집 안의 비밀공간이나 악령이라는 소재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영화를 보며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도대체 왜 페론 가족은 저 끔찍한 집을 버리고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극중 로저 페론(론 리빙스톤 분)이 에드 워렌(패트릭 윌슨 분)과 나누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집을 수리하고 대출받느라 다른 곳으로 갈 여유가 없어요. 일곱 명의 대식구를 받아줄 곳도 없고요." 왠지 요즘 현실과도 맞물려 아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든 생각은 "이제 저 집 어떻게 파나" 하는 것이었는데 귀신 나온 집이라고 하면 반값에 내놓아도 잘 안 팔릴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 에드 워렌이 자신도 이런 한적한 전원주택에서 사는게 꿈이었다고 말하자 로저 페론이 "그럼 이 집 사실래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대사가 별로 없는 이 영화의 배경과 영화를 보는 관객이 사는 현실을 묘하게 연결시켜주는 대사입니다.


이 영화에는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등장하는데, 아마도 실제 사건에서 다섯 명이었으니 그렇게 설정했겠지만, 아쉬운 것은 다섯 명의 캐릭터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두 명만 있었어도 스토리 진행에는 무리가 없었을 겁니다. 더구나 모두 딸들이고 몇몇은 장성한 예쁜 딸인데 아무런 사건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참 의아합니다. 퇴마사 한 명과 눈맞는 딸도 있었는데 메인 플롯과는 전혀 무관하더군요. 어쨌든 그중 두 딸들은 영화 초반에 집 안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합니다. 눈을 가리고 더듬거리며 숨은 아이를 찾아가는데 술래가 요구하면 박수 소리로 자신이 숨은 위치를 알려줘야 합니다. 이 숨바꼭질 모티프를 보면서 한국영화 <숨바꼭질>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됐습니다. 두 스릴러 공포영화의 플롯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빈 집에 누군가 살고 있는데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라는 거죠. <컨저링>에선 그것이 십자가에 반응하는 악령이었고, <숨바꼭질>에선 빈민촌에 살던 아이였습니다. 영화가 만들어진 목적이나 시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집 안에 누군가 숨어 있다"는 설정이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중산층의 공포를 자극하는 장치로 쓰였다니 재미있습니다. 그나저나 페론 가족은 그 사건 이후 그 집을 잘 팔고 이사갔을까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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