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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커다란 행성이 떠 있다. <멜랑콜리아>가 떠오르는 장면. 그러나 그 미지의 행성은 지구를 파괴하러 오는 행성이 아니라 또다른 지구다. 영화 속에서는 'Earth 2'라고 명명되는데 인간은 갈릴레오의 발견 이후에도 여전히 우주의 중심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행성에 '지구2'라는 이름을 붙인 것. 바로 이 명칭에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지구2'가 발견되고 우주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마치 SF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심리치유 드라마다. '지구2'는 메타포일 뿐이다. 한국영화 <유에프오 U.F.O>가 사실 유에프오를 찾아나선 아이들의 성장영화이듯, 또 <명왕성>이 입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에 관한 영화이듯, <어나더 어스>는 하늘에 뜬 또다른 지구에 빗대 지금 여기 절망에 빠진 한 여자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가를 묻는 영화다.


로다 윌리암스(브리트 말링 분)는 우주에 관심이 많던 학생이었다. MIT 입학통보를 받고 뛸 듯 기뻐하는 야망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사고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제2 지구가 발견되던 날, 라디오 DJ가 흥분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차를 운전하다가 하늘을 바라보는 사이에 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존 버로우즈(윌리암 마포터 분)라는 음악교수의 차를 들이받은 그녀의 차는 아스팔트 위에 선명한 검은 스키드마크를 남기고 미끄러진다. 아들과 부인을 잃은 존은 폐인이 되고 미성년자였던 로다는 4년 간의 복역을 마친 후 현실세계에 복귀한다.


집으로 돌아온 로다는 그러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대학 대신 청소 일을 택한다. 고등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면서 낙서를 지우고 바닥을 문지르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자 한다. 몸이 힘들수록, 낙서가 지워질수록, 자신의 죄도 씻겨져 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녀는 존의 집을 찾아가 보지만 폐인이 된 그에게 용서를 빌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저 집 밖을 맴돌다가 돌아올 뿐이다.


지구2에 관한 세간의 호기심이 증폭되고 어느 우주개발 벤처회사는 우주인 선발 공고를 낸다. 로다는 망설이다가 응모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던 시절, 지구의 끝을 향해 탐험을 떠났던 자들은 상류층이나 전문가들이 아니라 인생의 끝에서 절망에 빠진 자들이었다. 바로 자신처럼." 로다는 자신의 심정을 담담하게 적는다. 자신이 바로 미지의 세계로 갈 적임자임을 호소한다.


어느날 로다는 용기를 내 존의 집 문을 두드린다. "뉴 헤이븐의 청소회사에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존은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무료라는 말에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인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파괴한 그의 삶의 파편들을 마주하고 할 말을 잃는다. 그러나 그에게 자신이 범인이라고 고백할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대신 그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녀는 매주 그의 집을 찾아가 그의 집을 청소해준다. 술병들로 난장판이던 집 안이 깨끗해지면서 그도 점점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로다는 존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을까? '지구2'로 가려는 그녀의 계획은 실현될까? 그곳에 가서 또다른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영화의 엔딩은 약간 의뭉스런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나더 어스>는 2011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마이클 케이힐 감독의 데뷔작이다. 감각적인 영상과 군더더기 없는 편집이 이 영화의 강점인데 여자 주인공의 감수성을 유지하는 연출력이 좋다. 재미있는 것은 마이클 케이힐 감독과 여주인공인 브리트 말링이 이 영화의 각본을 함께 썼다는 것. 두 사람은 조지타운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경제학과에서 만난 두 남녀가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했고 결과는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탄생했다.


금발의 미녀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브리트 말링은 골드만 삭스 대신 연기자의 길을 택했는데 처음엔 호러영화의 금발 미녀 시나리오만 들어와서 속이 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쓰기로 하고 두 편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하나가 <어나더 어스>이고 또다른 하나가 <사운드 오브 마이 보이스>다. 두 편 모두 자신의 친구가 연출하고 자신이 출연했는데 2011년 선댄스 영화제에 나란히 초청됐으니 그녀는 참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어나더 어스>에서 그녀는 신비하고 고독한 이미지를 잘 표현해냈다. 감독 어머니의 집을 빌려 로다의 집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저예산 영화이면서도 CG를 활용해 제2지구를 근사하게 표현한 이 영화, 감성 짙은 힐링 영화를 찾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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