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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뜬금없지만 미국영화는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복잡한 영화와 단순한 영화. 두 영화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소구하는 관객이 확실한 영화를 단순한 영화라고 본다면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닌 소구대상이 작품 자체를 향해 있는 영화를 복잡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복잡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마스터'라 불리는 인정받은 사람들이고 그외 대부분은 단순한 영화를 만든다. 아마도 이것은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는 미국시장의 특성상 영화가 단순해야 더 특화된 관객층에게 소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에서 첫 영화를 만드는 외국인 감독은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 같은데 이방인인 그들은 대부분 뭔가 보여주려고 하지만 결국 틀에 맞는 영화를 생산하고 돌아온다.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는 단순함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감독 본인도 애초부터 작은 액션영화를 찍는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찬욱의 경우는 어떨까? <스토커>는 감독이 하고 싶었던 영화일까? 기존 작품들의 연장선상에서 어울리는 필모그래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토커> 역시 단순함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찬욱의 인장이 어느 정도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화면이 예쁘기 때문일 뿐이다. 플롯에서는 화려함이 사라졌다. 박찬욱의 전작과 비교해볼 때 <스토커>는 <친절한 금자씨> <박쥐>에서 진화한 영화로 느껴지기보다는 잠깐 쉬어가는 단편영화처럼 느껴진다.


"예뻐야 돼, 뭐든지 예뻐야 돼"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이 대사처럼, 씬과 씬의 상징적인 연결과 오프닝 시퀀스에서 매끄러운 자막의 사용, 미장센에서 풍부한 색감은 박찬욱 영화의 전매특허다. 그의 영화를 <올드보이>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볼 때 영화가 거듭될수록 확실히 장면마다 더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박찬욱의 영화는 <올드보이>의 보라색 방, <친절한 금자씨>의 빨간 립스틱, <박쥐>의 흑백화면처럼 탈색된 자동차씬 등 강렬한 색으로 기억에 남는다.


<스토커>에서는 이런 실험을 더욱 밀어부쳤다. 니콜 키드먼의 금발머리가 갈대밭으로 변하는 장면이나 매튜 구드가 공중전화 박스에 갇힌 재키 위버를 앞에 놓고 허리띠를 푸는 장면 등을 보면 화면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만들 것인가에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면에만 신경 쓴 나머지 정작 스릴러 영화에서 중요한 서스펜스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매튜 구드가 연기한 찰리라는 인물이 갖는 개성이 잘 살아나지 못했다. 그는 매력적인 킬러로서 강렬한 캐릭터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플롯이 지나치게 단순한 것도 흠이었다. 이야기는 더 뻗어갈 수 있었는데 야심 없이 소박하게 막을 내렸다. 엔딩에서 강렬한 여성캐릭터의 탄생을 알리긴 했지만 위로받기에는 전개과정이 약했다.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가 네크로맨틱스러운 행위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엔딩을 생각하면 필요한 장면들이긴 하지만 전개과정에서는 개연성이 부족해 설득력이 약했다. 가장 공을 들였다는 피아노 연주장면. 두 사람이 피아노로 교감하는 것은 좋은데 그 장면이 놓인 위치가 어색했다. 그전까지 인디아는 찰리를 피해다니기만 했었다. 갑자기 함께 피아노를 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국 <스토커>는 이도저도 아닌 영화처럼 보인다. 충분히 박찬욱스럽지 않았다. 영화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간단하게 끝나버린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머가 사라졌다. 박찬욱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한 번도 웃지 못한 적은 처음이다. 잔뜩 긴장해 힘을 주고 있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향해 "봤지, 내 실력 이 정도야" 라고 뽐내고는 있지만 정작 박수 치기엔 뭔가 내키지 않는 그런 영화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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