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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영화는 제법 묵직한 철학적인 문구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고등학생인 4명의 아이들. 모범생 반장, 독실한 교인, 겉늙은 왕따 허풍쟁이, 1년 쉰 맏형. 일명 사대천왕이다.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이 모인 계기는 바로 U.F.O. 어느날 저녁 교정에서 U.F.O를 목격한 이들은 음모론에 빠져들고 결국 U.F.O가 자주 출몰한다는 경기도 성산으로 향한다. U.F.O 유언비어 때문에 땅값이 떨어진다는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그 마을 입구에서 그들은 한 여고생과 마주친다. 그 소녀는 U.F.O 따위는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경고에도 아랑곳 없이 산에 올라 며칠 간 U.F.O를 찾아헤맨다.


영화는 경찰서에서 형사에게 취조당하는 네 명의 아이들로 시작한다. 여고생 실종사건을 수사중인 형사는 아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U.F.O를 직접 목격했고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났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형사는 처음에 믿지 못하다가 이 마을에서 U.F.O 때문에 실종된 사람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에 움찔한다. 과연 정말 이 마을에 외계인이 있는 걸까?


4명의 아이들 중 반장인 순규(이주승)는 당시 술에 만취한 상황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산 속에 홀로 남겨져서 따로 내려와야 했다. 다른 아이들이 외계인을 만났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생각할 뿐이다.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순규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점점 U.F.O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형과 함께 다시 그 산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두들 감추어왔던 진실과 마주한다.


영상원 출신 공귀현 감독의 데뷔작인 <유에프오>는 확실하게 실재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U.F.O에 빗대 은유법으로 풀고 있다. 일종의 어드벤처 성장영화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추리영화 같기도 한데, 산 속에 모여 음모론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서는 <스탠 바이 미>의 아이들이 오버랩되고, 외계인을 직접 봤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미지와의 조우>나 <E.T.> 같은 순수한 믿음이 연상된다.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영화는 방향을 완전히 튼다. 구름에서 내려와보니 그곳이 진흙밭이었다고 말하는 듯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그들이 무엇을 감추려 하고 있고 왜 U.F.O를 봤다고 주장하는지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스릴러로 이동한다. 하지만 그 이동 방식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내러티브가 탄탄하고 세공이 잘된 플롯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장르를 비트는 방식은 서툴러서 후반부가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또 여고생의 캐릭터가 너무 기능적이고 그녀가 갑자기 산 속에 나타난 이유나 아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설명이 안되어 있어서 스릴러로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다. 마치 두 가지 이야기를 억지로 맞물려 놓은 느낌인데 애초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초반부에서 형사의 취조장면이나 여고생이 실종된 이야기 등을 좀더 긴장감 있게 가져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데뷔작치고는 탄탄하다. 공귀현 감독은 무거운 주제로 최대한 힘을 빼면서 뒤로 갈수록 궁금해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꼼꼼한 세공능력을 보여줬으니 차기작이 더 기대된다.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인 네 명의 남자들인 이주승, 지상혁, 정영기, 김창환도 <스탠 바이 미>의 아이들처럼 스타로 성장할 잠재력을 보여줬다. 언젠가 이들에게 <유에프오>는 그들에게 찾아온 깜짝 불빛으로 기억될 것이다.



PS>

영화 속에서 순규의 형으로 나오는 영규(김태균)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한 대사라고 생각되는데 그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번 양보해서 네가 어떤 물체를 진짜로 봤다고 쳐. 다른 사람은 못봤는데 너는 진짜 봤어. 그런데 그게 이 세상에 의미가 있어? 그냥 너 혼자만 간직하고 살면 되는 거야. 존재론적 미니멀리즘. 이 세상을 존재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말란 말이야." U.F.O, 종교 등 아직까지 믿음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을 호기심 이상으로 광신하는 자들에게 해주고픈 말이기도 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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