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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과 홍상수는 한국영화계에서 한 묶음으로 자주 불리는 이름이다. <악어>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모두 1996년에 데뷔한 두 사람은 1960년생 동갑내기이면서 다작을 하는 감독이다. 김기덕은 지금까지 18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홍상수는 14편을 만들었다. 두 사람 모두 현대사회의 모순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 닮았고, 뚜렷한 주제의식을 갖고 반복과 차이를 통해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점이 비슷하다.


강렬한 데뷔작으로 한국영화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두 사람이 걸어온 경로는 많이 다르다. 김기덕은 대사가 없이 생생한 영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이미지가 중첩되며 이야기가 힘을 얻는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의 관점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점점 종교와 구원, 시스템의 문제로 돌아서고 있고, 불편한 영상 그 자체를 숭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점점 이미지에 상징을 덧씌우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때로는 그 상징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억지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세련되지 않은 것에서 경이로움을 끌어내는 것이 김기덕의 매력이다. 반면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대하기 편해지고 깨알같은 대사가 늘어난다. 홍상수의 인물들은 처음엔 참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들의 속마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욕망을 희극적으로 담기 시작한다. 비극으로 시작했던 홍상수의 영화는 갈수록 코미디가 되고 있다. 하지만 기저에 깔린 것은 여전히 인간군상의 부조리함이다.


김기덕과 홍상수는 고도성장한 한국사회의 밑바닥에 감추어진 것을 굳이 끄집어내는 감독들이다. 돈, 가부장제, 여성을 사는 남자들, 이방인이 된 낙오자들, 위선적인 지식인, 외국인에 대한 시선 등. 김기덕은 그것들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홍상수는 그것들이 웃기지 않냐고 조롱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혀 다르다. 김기덕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조폭, 창녀, 사채업자 하수인이고,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은 주로 교수, 영화감독, 작가들이다. 이런 차이점은 두 사람의 전혀 다른 성장배경이 원인일 것이다. 김기덕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청계천 등지에서 공장일을 했던 사람이고 홍상수는 유학파 감독이자 현직 교수이다.


두 사람의 영화에는 반복적인 상황이 많다. 비슷한 상황을 반복하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차이를 둠으로써 메시지를 확고하게 각인시킨다. '반복과 차이'라는 음악으로 따지면 대위법에 비유할 만한 기법을 즐겨쓰는 두 감독은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진화와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 결과 최근 작품에서는 초기에 느꼈던 공통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극과 극처럼 다른 <피에타>와 <다른나라에서>를 보라. 김기덕이 반복을 통해 상징을 강요하고 그 속에서 결국 시적인 숭고함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면 홍상수는 거창한 군더더기들을 제거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더 클로즈업해 가식을 조롱하는 데 모든 러닝타임을 쓰고 있다. 김기덕은 잔뜩 힘 주어 고전적인 의미의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 반면 홍상수는 힘 빼고 가볍게 한 잔 하며 들어보라는 식으로 농담을 건넨다. 전달하는 방식에서 누가 더 설득력이 있는 지는 영화를 관람하는 각자의 취향에 맡길 일이다.


각각 베네치아와 깐느에서 먼저 알아본 두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가 발표될 때마다 평단과 마니아 팬들은 열광하지만 일반 대중은 외면한다. 해외영화제를 가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무보수로 앞다퉈 출연을 기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난해한 작업방식으로 인해 기피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점점 더 김기덕과 홍상수의 세계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이 줄어들면서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교집합도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며칠 전 김기덕 감독의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요즘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외연을 넓힐 수 있을까?


김기덕과 홍상수가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억지로 자신들이 해오던 작업의 방향을 수정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김기덕과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할 필요는 없고 또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억지로 보러 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 제2의 김기덕과 홍상수를 꿈꾸는 영화감독 지망생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토양은 남겨두어야 한다. 확실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한국영화계의 큰 이름, 김기덕과 홍상수의 차기작이 문득 궁금해진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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