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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간 한국의 공포영화는 내게 무서운 영화인 적이 별로 없었다. 매년 여름 만들어지는 한국 공포영화를 보고 무섭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장화, 홍련>이 마지막이었던가. <알포인트>나 <령> 정도면 꽤 무서운 편해 속하긴 했다. <불신지옥>은 잘 만든 공포영화긴 했지만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영화를 보면서 무서운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매번 다른 감독들이 시도를 하지만 지금까지도 잘만든 공포영화는 손에 꼽힐 정도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도록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낯선 것, 머릿속에 정형화된 세상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배척하려 한다. 그런 본능이 결국 경쟁심으로 이어지고 다른 종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공포라는 감정은 진화의 원인이자 결과물인 것이다.


어쨌든, 한국 공포영화가 내게 별로 무섭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조야한 특수분장과 긴머리 귀신의 무분별한 등장 때문이다. <월하의 공동묘지>나 <전설의 고향>으로 대표되는 처녀귀신 혹은 <여고괴담> 시리즈의 여고생 유령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캐릭터다. 한번 인기를 얻은 탓인지 이들을 벤치마킹한 긴머리 여고생이 한국 공포영화에 너무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의 장면은 이야기의 맥락과도 맞지 않고 참 뜬금없다. 그래서 무섭기는커녕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태반이다.


감독 여섯 명의 옴니버스 공포영화인 <무서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와 달] [공포 비행기] [콩쥐팥쥐] [앰뷸런스] 네 편과 이들을 잇는 브릿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긴머리 여자 귀신이 앞의 세 편에 등장한다. 피를 칠하고 조명 적당히 어둡게 하고 음침한 음악을 깐다고 다 무서운 게 아니다. 어떤 장면은 음악이 너무 거슬리고 또 어떤 장면은 분장한 게 너무 티가 난다. 원혼도 원혼 나름이지 제발 깜짝쇼만 하려고 하지 말고 이야기로 설득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네 편 중 그나마 [앰뷸런스]가 가장 좋았다. 김곡, 김선 형제 감독이 만든 이 에피소드는 좀비가 창궐한 지역에서 감염 보균자로 의심되는 아이와 엄마를 싣고 달리는 앰뷸런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아이가 감염됐는지 아닌지를 놓고 인물 간의 의심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밀도 깊은 이야기로 기존 좀비 영화들과 확실하게 차별화를 시켰다.


또 <키친>을 연출한 홍지영 감독의 [콩쥐팥쥐]는 조선희의 [모던팥쥐전]이라는 원작을 변형한 이야기인데 원색에 가까운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강렬한 붉은색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배다른 자매인 공지와 박지는 정은채, 남보라가 다소 과장되게 연기하는데 외모가 닮은 두 자매가 보여주는 연기는 마치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연극처럼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옴니버스 영화답게 많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유연석, 김지원, 정은채, 남보라, 진태현, 최윤영, 김예원 등 기대되는 충무로 배우들의 얼굴을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볼 수 있다. 옴니버스 영화의 최대의 난제인 에피소드마다의 균질성을 위해 이 영화는 브릿지 에피소드를 따로 만들었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세헤라자데가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것처럼 여고생은 납치범이 잠들게 하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만 한다. 겨우 잠든 것처럼 보였던 납치범이 마지막에 다시 깨어나서 여고생을 위협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제작진 스스로도 별로 무섭지 않다는 반성에서 온 것일까.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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