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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대해 쓰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워낙 팬이 많잖아요. 제작과정에 대해 섣불리 아는 척했다가는 뻔한 글이 될테죠. 그래서 저는 가급적 다들 하는 이야기말고,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시리즈에 대해 느낀 점을 적어볼까 합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에 이은 3부작의 마지막편이라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애초에 이 시리즈를 세 편의 영화로 기획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조금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는 서로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였거든요. 연결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 설정과 주제의 크기부터 달랐기 때문에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 비긴즈>의 속편이라기보다는 주인공만 같은 스핀오프처럼 보였요. 그런데 그것이 3부작을 위한 2편의 시리즈였다니요. 3부작 보다는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계속해서 다른 주제로 진화해 나아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색깔이 다른 이전 두 편의 영화의 관객들을 모두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마치 '짬짜면'을 먹는 것 같아요. 만약 감독이 배트맨을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이런 3부작을 기획했다는 것이 진심이었다면 아마도 감독은 자신이 감독으로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헤겔의 '정-반-합'이 이 시리즈에 어울리는 이론 같습니다. <배트맨 비긴즈>가 배트맨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이 시련을 겪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이 마침내 시련을 극복하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눠놓고 보면 마치 한 편의 영웅신화처럼 느껴집니다. 헐리우드에는 유독 스토리를 거창하게 상징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감독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스타워즈>를 고대 우주신화로 만든 조지 루카스나 <매트릭스>를 포스트 모던 담론으로 만든 워쇼스키 남매 같은 경우죠. 크리스토퍼 놀란도 그들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가 막강한 국력을 등에 업고 널리 구전되었던 것처럼 지금 헐리우드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돈의 힘을 통해 전세계에 널리 전파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꾸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거기에 역사성을 부여해 스스로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정당화하고 싶은가 봅니다. 이런 방식은 초반에는 신선했지만 반복될수록 그 수가 드러나게 마련이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이전에 1990년대 초반 팀 버튼의 배트맨 2부작이 있었습니다. 원작과 다른 독창적인 매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라는 평가를 받았던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그는 어두운 영웅을 창조해 마술같은 세계에 집어넣었습니다. 당시에 더 밝은 배트맨을 보고 싶다는 제작사의 고집 때문에 시리즈는 3편 <배트맨 포에버>부터 조엘 슈마허로 감독이 교체되었지만 어두운 배트맨의 강렬한 인상은 팀 버튼의 배트맨을 추종하던 관객들에게 그대로 남았습니다.


십여년이 지난 뒤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을 아예 '어둠의 기사'로 정의합니다. 의상만 검은 것이 아니라 성격, 살아온 배경, 취향 등 모든 것이 밝음과는 담을 쌓고 있는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어쩌면 시대가 그것을 용인해줄 만큼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어두운 영웅을 팀 버튼식 마술 속 공간에서 끄집어내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 쳐박습니다. 그곳은 탐욕스런 기업, 무능한 정부, 부패한 공권력, 그리고 그런 더러운 현실에 기생하는 여러 악인들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에게 그곳을 개혁하는 임무를 준 뒤 온갖 시련을 겪게 하고는 결국 영웅으로 승화시킵니다. 그래서 이 3부작을 통해 비로소 배트맨은 신화의 주인공으로 탄생합니다. 마치 우리 곁에 있었던 역사속 영웅처럼 그는 지나치게 현실을 닮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통해 바로 지금의 현실에 뿌리내립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마지막 장면에서 고담시에 배트맨 동상이 서는데 이것은 현실 세계가 영웅을 기억하는 전형적인 방법이죠.


 


<다크 나이트>와 비교하면 어때? 이런 질문들을 자주 하고 또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다크 나이트>보다 좋았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조커라는 캐릭터의 잔학성에 기댄 도시범죄 영화처럼 보였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좀더 풍부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느꼈어요. <다크 나이트>가 도시와 인간, 그리고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플롯상에서 너무 원초적으로 하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런 질문들을 캐릭터 뒤로 숨기는 기지를 발휘했어요. 그래서 관객이 질문에 직접 노출돼 깨달음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좀더 편안하게 스스로 질문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도 흠이 많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하는 것처럼 철학적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영웅에 대한 노스탤지어만 남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어쨌든 <다크 나이트> 보다는 덜 직접적이어서 덜 불편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다크 나이트>의 플롯은 불균질했습니다. 그래서 군데군데 튀는 장면들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멋진 대사들과 이상한 대사들이 섞여 있었어요. 반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플롯은 전반적으로 리드미컬하고, 대사도 튀지 않았습니다. 리듬을 맞춰주는 것은 셀리나 카일(앤 헤서웨이)과 존 블레이크(조셉 고든-레빗)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에 따른 것입니다. 그들이 전반적으로 무거울 수 있는 배트맨과 베인(혹은 미란다)의 대결 과정에서 중간중간 템포를 조절합니다.


물론 <다크 나이트>에는 조커(히스 레저)라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한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도 이런 악당은 없었어요.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또다른 조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을 관객들에게 감독은 반전으로 한 방 날립니다. 베인(톰 하디)이라는 캐릭터의 실체가 밝혀지는 장면은 조금 어이없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건 조커라는 악으로서의 절대 기준치가 있었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느끼게 된 실망감이었죠.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지능적이면서 스스로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해 더 파괴적인 악당인데 반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베인은 엄청난 근육과 추진력을 자랑하면서도 너무 단순한 이유로 고담시 파괴에 뛰어든 악당입니다. 조커에게 이유가 없었다면, 베인은 브루스 웨인을 보좌하는 알프레드처럼 하나의 목적만 있었습니다. 정반대의 캐릭터죠. 그런데 <다크 나이트>에서는 조커라는 캐릭터가 워낙 세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이 다 묻혀버렸어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반전에 대해 실망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 장면을 감독이 <다크 나이트>의 엄청난 안티 히어로를 스스로 파괴하는 과정으로 봤어요. 그래서 비로소 정-반-합에서 반을 이겨내고 합으로 나아갈 수 있게된거죠. 어쨌든 감독에게도 조커의 강렬함은 넘어야 할 벽이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조금 뜬금없지만, 이 영화의 제목에는 'Rises'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Rises의 주어가 The Dark Knight이고 단수형이기 때문에 어둠의 기사가 난관을 극복하고 일어선다는 뜻으로 쓰였겠지만, 저는 영화를 보면서 Rises의 주어가 어둠의 기사가 아니라 고담시민들처럼 보였습니다. 'Rise'에는 '들고 일어서다', '봉기하다'라는 뜻도 있죠. 영화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히 고담시민들은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베인을 추종하는 자들과 겁에 질린 자들입니다. 배트맨이 어둠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었지만, 배트맨이 살인 누명을 쓴지 8년이 지났고 이미 누구도 배트맨을 믿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시민들은 실종된 리더십에 목말라 하고 있었고 그 자리를 베인이 메운 겁니다. 베인은 라스 알굴의 추종자이니 결국 이것은 라스 알굴의 이름을 빌린 쿠데타라고 볼 수 있겠군요. 리더십이 습관처럼 굳어 있는 고담시에서는 시민들도 리더에 의해 쉽게 휘둘립니다. 이건 참 미국식 문화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리드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믿죠. 그래서 고든 청장도 자신이 지휘해야 한다며 병원을 박차고 나오고, 로빈도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부패의 대명사로 나왔던 경찰들은 청장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이미 많은 것이 변해서 테러범들에 맞서는 존재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죠. 영화 속에 높이 쌓아올린 책상 위에서 '추방 혹은 죽음'의 판결을 내리는 재판정이 등장합니다. 마치 쿠데타 이후의 군사재판을 연상시키는 그 장면은 우리에게 잘못된 리더십의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PS) 영화가 핵융합 폭탄을 범죄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다소 실망스러웠
습니다.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과의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요? 
베인의 첫 공격 대상은 증권거래소였는데 아주 신선했습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이 담겨 있는 장면이자 <배트맨 비긴즈>에서 라스 알굴이 "고담시를 멸망시키기 위해 경제시스템을 주입했다"고 말했던 대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계획이기도 하죠. 그런데 마무리는 핵융합 폭탄이라니요. <배트맨 비긴즈>의 액체 증발 가스나 <다크 나이트>의 기폭장치와 비교해봐도 참신함이 떨어져 아쉽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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