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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술자리에서 취기가 적당히 오르면 가장 먼저 떠올리곤 하는 그 시절. 가장 성공적이었거나 혹은 가장 뜨거운 사랑을 했거나 혹은 가장 큰 기쁨을 맛봤던 그 시절. 사람마다 다른 것 같지만 그 시기들의 공통점은 그들 스스로 가장 열정적이었다는 것. 현재에 실망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일수록 그 시절에 대한 향수는 깊어진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서양 역사에서만 봐도 기원전 로마, 16세기의 암스테르담, 18세기의 런던, 20세기 초의 파리, 그리고 20세기 말의 뉴욕까지. 역사가들은 그 시대를 '전성기'라 부를 것이고, 철학자들은 그 시대를 '르네상스'라 부를 것이며, 또 예술가들은 그 시대를 '황금시대'라 부를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감독 우디 앨런은 ‘아름다운 시절’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상향으로 꿈꾸던 시절이 사실은 바로 앞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디 앨런이 꿈꾸는 아름다운 시절로 여행을 떠나보자.



뉴욕부터 파리까지, 우디 앨런의 도시예찬


78세의 노감독이 된 우디 앨런에게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자 캐릭터다. 그는 영화 속에서 도시를 주연으로 격상시킨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의 걸작 중 한 편인 <맨해튼>(1979)을 보라. 스스로 소설가를 연기한 그는 첫 장면부터 내레이션을 통해 뉴욕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1장. 그는 뉴욕을 숭배했다. 그는 비정상일 정도로 뉴욕을 이상화했다."


뉴욕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고백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는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시네마스코프 비율에 담긴 흑백사진 같은 화면 위로 뉴욕 태생의 음악가 조지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가 우아하게 흐른다. 우디 앨런에게 뉴욕은 "어떤 계절이든 흑백사진 속에 존재하며 조지 거쉬인의 음악 속에서 고동치는 도시"다.



뉴욕에서 태어나서 뉴욕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평생 뉴욕에서 살아온 그는 한때 뉴욕을 떠나는 게 겁난다고 말할 정도로 뉴욕을 숭배했다. 그에게 뉴욕은 센트럴파크에서 연인과 수줍게 키스하는 도시, 미술관에서 시니컬하게 예술을 논하다가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사람들처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도시다. 그는 <애니 홀>(1977)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이후 영화 속에 항상 뉴욕을 담았다. 때론 <애니 홀> <맨해튼>처럼 달콤하고 로맨틱한 도시로, 때론 <한나와 그녀의 자매들>(1986)처럼 수다와 냉소 속에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도시로, 때론 <카이로의 진홍빛 장미>(1985)처럼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도시로 그렸는데, 나중에는 <맨해튼 살인사건>(1993) <브로드웨이를 쏴라>(1996)처럼 범죄가 만연한 삭막한 도시로 그리기도 했다.


말하자면 우디 앨런에게 뉴욕은 삶 그 자체였다. 그는 아카데미 영화상에 스물 세 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LA로 가기 위해 뉴욕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 시상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애니 홀>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는 뉴욕의 한 바에서 재즈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게 뉴욕을 사랑했던 그이지만 정작 그의 영화는 미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영화를 인정해준 것은 프랑스였다. 파리지앵들은 우디 앨런의 영화에 열광했다. 우디 앨런은 1990년대 한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영화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할리우드 엔딩>(2002)에서는 그 자신이 프랑스에 감사를 표시하는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우디 앨런은 잉그마르 베르이만 같은 유럽 감독들을 좋아했고 점점 유럽 대가들의 스타일을 닮아갔다. 계속되는 유럽 영화제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소공포증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이유로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던 그는 뉴욕-베니스-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7)를 만들면서 드디어 유럽에 발을 내딛었다. (물론 아주 유명해지기 전에 <사랑와 죽음>(1975)이라는 시대극을 파리에서 찍은 적이 있긴 하다.) 그리고 몇 년 후, <멜린다 앤 멜린다>(2004)를 마지막으로 뉴욕 생활을 청산한 우디 앨런은 대서양을 건너 본격적으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뉴욕을 떠나 도착한 곳은 런던이었다. 우디 앨런은 뉴욕에 있을 때도 마이클 케인, 샤를로트 램플링, 헬레나 본햄 카터, 케네스 브래너, 휴 그랜트 등 영국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래서 런던에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낯선 환경이 예술가에게 주는 영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런던에서 우디 앨런이 만든 영화들은 뉴욕에서와는 조금 달랐다. <매치 포인트>(2006) <스쿠프>(2007) <카산드라 드림>(2007) <환상의 그대>(2011) 등 네 편의 영화에서 그는 런던을 그리스 신화 속의 한 공간처럼 다루었다.


신경질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수다스러우면서도 위트 넘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살아가던 뉴욕과 달리 런던에서 만든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상징적인 존재들처럼 보였다. 더 정형화되어 있고 마치 신화 속의 이야기처럼 웅장한 주제를 품고 있는 영화들이 탄생했다. 그 자신이 뉴욕을 떠난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것 같은 영화들이다.


하지만 런던을 빠져나오자 그의 영화는 좀 더 밝고 경쾌해진다. 거대한 주제로 걸작을 만들겠다는 어떤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관광객처럼 유럽 주요 도시들을 누빈다. 지금까지 발표된 영화는 바르셀로나에서 만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9)와 파리에 존경심을 바친 <미드나잇 인 파리>. 두 영화들의 공통점은 미국인 주인공이 관광객으로 도시를 유람하는 영화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엔 도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비키와 크리스티나라는 두 미국인 여자 앞에 나타난 섹시하고 다소 느끼한 스페인 남자가 바르셀로나를 상징하고, 미국인 소설가 앞에 나타난 1920년대 예술가들의 뮤즈인 가상의 여인이 파리를 상징한다. 차기작은 로마, 코펜하겐 등지로 무대를 옮겨 만든다고 하니 아마도 본격적으로 유럽 도시 시리즈를 기대해도 좋겠다.



밤 12시, 환상속의 파리로 떠나는 시간


우디 앨런이 “뉴욕이 아니면 이곳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했던 곳. 파리 찬가는 간들거리는 색소폰으로 시작한다. 뉴욕 찬가 <맨해튼> 도입부의 뉴욕이 가로등 불빛 같은 트럼펫이었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의 파리는 아기자기한 노스탤지아 상점을 닮은 색소폰이다. 색소폰과 함께 파리의 명소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에펠탑, 뤽상부르 공원, 몽마르트르에서 내려다본 전망, 물랑루즈 극장, 개선문, 센느 강의 바토무슈, 사크르쾨르 성당, 루브르의 피라미드, 오페라 가르니에 등의 명소부터 한적한 골목길, 여유로운 노천카페, 길가의 꽃집, 퐁네프 다리, [개선문]의 작가 레마르크의 단골집이라는 샹젤리제의 푸게(Fouguet's) 카페, 노트르담 가는 길 등의 풍경, 또 비오는 날의 파리 시내, 비갠 후의 파리 공원, 오전의 파리, 오후의 파리, 저녁의 파리, 그리고 한밤중의 파리까지... 마치 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발렌타인 데이 카드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파리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헤밍웨이가 '움직이는 축제'라고 불렀던 도시. 그래서 "한 번 가보면 꼭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오게 된다"고 했던 도시. 너무나 낭만적이어서 누구나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도시. 약혼자와 함께 파리에 온 미국인 작가 길 펜더(오웬 윌슨)는 이미 파리와 사랑에 빠져 있다. 할리우드에서 각본가로 성공했지만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 싶은 그는 파리에서 위대한 아티스트들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아이처럼 들뜬다. 그는 마치 아이돌을 만난 소녀 팬처럼 그들을 숭배한다. 길은 마치 우디 앨런 그 자신을 닮았다. 그가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아마 직접 주인공을 연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길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환상에 빠져 사는 사람 취급한다. 그의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 그녀의 부모, 그리고 우연히 만난 이네즈의 친구 폴 커플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로댕 동상 앞에서 박학다식함을 자랑하고, 시시한 에펠탑 보다는 밤새 파티에서 춤추고 싶은 미국인 관광객일 뿐이다.



파티를 거부하고 한밤중에 홀로 남게 된 길. 그는 호텔로 가기 위해 밤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파리 시내 골목 이곳저곳을 헤맨다. 지친 그는 어느 한 모퉁이 계단에 주저앉는데 그때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더니 멀리서 오래된 푸조 한 대가 다가온다. 드디어 현실이 멈추고 판타지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차 안에는 파티복을 입은 남녀 여러 명이 타고 있다. "어서 타세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려 길에게 말한다. "네? 저요?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니에요?" 길은 어안이 벙벙하다. 술을 너무 마셨나? 하지만 취해서 잘못 들은 것은 분명히 아니다. "자, 샴페인 한 잔 하세요. 그리고 어서 타시라니까요." 남자는 길에게 술잔을 건네고는 정중하게 차 뒷문을 연다. 안에서는 두 명의 여자가 깔깔대고 웃으면서 길에게 얼른 타라고 재촉하고 있다. 길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차 안으로 오른다. 이들은 자정의 인신납치범일까? 하지만 푸조가 데리고 간 곳은 90년을 거슬러 간 1920년대 파리의 한 파티장이다. 콜 포터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곳에서 길은 자신을 젤다 피츠제랄드라고 소개하는 여자와 만난다.


우디 앨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이런 장면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마술처럼 이어지는 장면은 그의 전매특허다. "현실은 환상을 동경하고, 환상은 현실을 동경한다"고 말하는 그는 시침 뚝 떼고 90년의 시간을 넘나든다. 시간여행을 다룬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꼭 덧붙였을 개연성이나 역사의 변화 같은 문제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관객이 그 시간을 충분히 황홀하게 즐길 수 있느냐가 유일한 관심사다. 마치 콜 포터가 “Let’s Do It”이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그저 아름다운 시절로 빠져 들어가면 된다.


길은 그곳에서 꿈에 그리던 위대한 아티스트들을 만난다. 가령 지나가던 남자가 스콧 피츠제럴드였고, 춤을 함께 추던 여자가 주나 반스였으며, 파티를 주최한 남자가 장 콕토였다. 술집에서 만난 헤밍웨이는 길의 원고를 지도해줄 사람으로 자신의 멘토 거트루드 스타인을 소개시켜주는데 그때 스타인에게 혹평을 듣는 남자는 피카소였다. 다음날 마차에서 만난 사람은 T.S. 엘리엇이었고,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져 고민하던 길을 붙잡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살바도르 달리였다. 문화의 수도라고 할 만큼 당시의 파리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다. 관객들에게, 그리고 길에게 이 순간은 판타스틱한 만남이지만 아마도 이 타임슬립은 감독인 우디 앨런 자신이 가장 고대하던 순간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우디 앨런이 신나게 각본을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이들 예술가들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영화를 더 즐겁게 볼 수 있다. 젤다는 스콧이 변한 것 같다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사실 가난했던 스콧 피츠제랄드는 부유한 젤다와 결혼하는 것을 목표로 소설을 썼던 청년이었다. 길에게 “죽음을 유예시키기 위해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멋진 멘트를 날리는 헤밍웨이는 사실 그때 첫 번째 부인과 별거중이었다. 길이 2010년에서 왔다는 것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초현실주의자 살바도르 달리, 루이스 브뉘엘, 만 레이. 그들은 그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사진을 찍겠다고 말한다. 길은 브뉘엘에게 그가 40여년 후에 만들게 될 영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혹은 멕시코 버전 <절멸의 천사>) 스토리를 들려주지만 젊은 그는 그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길은 그가 몇 년 후 만들게 될 <안달루시아의 개>의 면도 장면을 슬쩍 던져주고는 자리를 뜬다.


참고로 영화 속에서 박학다식함을 뽐내는 폴과 길이 로댕과 결혼한 여자가 까미유 끌로델인가 로즈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정답은 길과 박물관 가이드(카를라 브루니, 바로 그 사르코지의 부인)의 말처럼 로즈가 맞다.


파리를 그린 영화에서 뮤즈가 빠질 수 없는 법. 밤에는 과거를, 낮에는 현재를 사는 길은 야행이 길어질수록 1920년대에 익숙해지고 더 대범해진다. 결국 그는 다른 시대의 여자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띨라르)와 사랑에 빠진다. 아드리아나는 1920년대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가상의 인물인데 코코 샤넬에게 패션을 배우러 파리로 와서 브라크, 모딜리아니, 피카소의 여인이었다가 헤밍웨이와 킬리만자로로 사냥을 떠나기도 하는 ‘남자들의 이상향’으로 설정됐다. 현재에 싫증을 느끼는 그녀는 캉캉 춤을 추던 19세기 후반의 벨 에포크 시대가 완벽했다며 그리워하고 있는데 영화 후반부에는 또 다른 타임슬립이 이루어지면서 어느 시대나 노스탤지어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항상 과거를 완벽한 원형으로 기억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이 찌질해보여도 결국 그 현실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환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의 결론은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라.’ 길은 파리에 남아 자신을 이해해주는 또다른 여자를 만나고, 아드리아나는 벨 에포크 시대로 무작정 뛰어들어가 툴루즈-로트렉과 고갱을 만난다. 아드리아나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만족을 찾아 다른 시대로 가려고 할까? 고갱이 “지금 세대는 상상력이 없고 텅 비어 있어요. 르네상스 시대가 낫죠.” 라고 말하는 순간 길은 깨닫는다. 정말 가치 있는 걸 쓰고 싶다면 환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아드리아나는 “그게 작가들의 문제”라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거라고 다짐한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결국 자신만의 환상을 현실로 만든다.


혹자는 1920년대 파리를 일방적으로 숭배하는 이 영화가 불편할 지도 모른다. 세계대전의 포화나 핍박받던 아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낭만에 빠져 있을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것은 한 남자의 백일몽이다. T.S.엘리엇을 만난 알프레드 프루프록이 자신을 왜 그렇게 슬프게 그렸냐고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1940년이 되면 독일군의 파리 점령으로 그들만의 아름다운 시절도 끝이 날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파리를 떠나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헤밍웨이의 충고를 받아들인 길은 약혼녀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는 약혼녀를 떠나 홀로 파리에 남기로 결심한다. 서점 겸 출판사였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상징되는 1920년대를 빠져나와 센느 강 어느 다리를 걷고 있던 길은 우연히 가브리엘(레아 세이두)과 다시 마주친다. 길이 쓰고 있던 소설 속 주인공인 노스탤지어 상점 주인처럼 그녀 역시 추억을 파는 가게의 점원이었다. 가사가 예쁜 콜 포터의 노래가 나오는 오래된 축음기를 매개로 만난 적 있던 그녀. 두 사람은 콜 포터와 비오는 파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걷는 두 남녀 뒤로 다시 색소폰 연주가 시작된다. 영화의 첫 장면이 추억이었다면 이번엔 현실이 된 판타지다.



이 영화의 캐스팅은 보면 볼수록 참 적확하다. 배우이자 작가이기도 한 오웬 윌슨은 자살 기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우울증 기질이 있는데 젊은 우디 앨런이 적역이었을 길 펜더 역할에 어울리는 몽환적인 인상을 가졌다. 길의 약혼녀로 지극히 현실적인 여자로 나오는 레이첼 맥아담스는 우디 앨런 영화에서 늘상 속물로 표현됐던 중상류층 가정("Cheap is cheap"이라는 엄마의 대사를 떠올려 보라)의 딸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전작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도 시간여행을 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이었다.


길이 한눈에 반해야 하는 아드리아나 역의 마리옹 꼬띨라르는 사실 다른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 역할에 딱이다. 우아하게 아름다운 파리지엔느로 낭만을 갈구하면서도 쿨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 유명인사 중에서는 살바도르 달리 역의 애드리언 브로디, 거르트루드 스타인 역의 캐시 베이츠, 스콧 피츠제럴드 역의 톰 히들스톤, 그리고 어네스트 헤밍웨이 역의 코리 스톨이 기억에 남는다. 모두들 상상했던 이미지와 비슷하다. 특히 대머리인 코리 스톨에게 가발을 얹혀 터프가이를 만들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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