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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배경은 2091년부터 2094년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후다. 인류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과연 80년 만에 인간이 저런 우주선이나 로봇을 만들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아바타>처럼 차라리 2154년 정도로 먼 미래로 했으면 어땠을까? 이 글의 도입부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몇 년 후 다가올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 2019년을 맞을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미래와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


프로메테우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타이탄 종족의 신으로 진흙에서 인간을 창조한 영웅이다. 또 높은 지식 수준과 인류의 구원자를 상징하는 존재다. Pro-Metheus(=Think)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리 생각하는 자', 즉 '선지자'를 뜻한다. 그는 무지몽매한 인간을 가엾게 여겨 어느날 신들의 의회 중심에 있던 불씨를 훔쳐 인간에게 전달함으로서 제우스를 배반하게 되고 그로 인해 형벌을 받게 된다.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는 그를 코카서스 산 정상에 묶어놓고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내린다. 불멸의 존재인 프로메테우스는 죽지 않기 때문에 독수리가 매일 간을 쪼아 먹을 수 있도록 제우스는 매일 그의 간이 재생되도록 한다. 한편에서는 먼훗날 형벌에 신음하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 영웅인 헤라클레스에 의해 풀려났다는 설화도 있다.


서양 전통문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오랫동안 인간이 이룩한 과학적 지식의 성취와 그에 따른 의도하지 않았던 위험을 동시에 상징해왔다.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일깨우려는 노력이 비극적 결과로 끝나버린 외로운 천재로 여겨졌다. 이를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 매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이 책에 작가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를 붙였다. 인간이 창조했으나 인간을 멸하려한 존재. 인간보다 인간을 더 꿈꿔온 존재.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이름이 없는 그 괴물은 여러 영화와 문학의 모티프가 되어왔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우주선의 이름과 그 운명은 이같은 배경에 맞닿아 있다. 머나먼 행성으로 인류의 기원을 찾아 떠난 우주선, 의도하지 않았던 위험, 그리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했던 우주선의 운명까지. 여기에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웨이랜드의 프로메테우스가 되어버린 안드로이드 데이빗과 엔지니어들의 피조물 에이리언까지 합세하면 영화는 창조와 존재를 논하는 철학의 장이 된다.


폐쇄공간의 SF


이 영화는 대작이지만 등장인물이 많지 않다. 광활한 우주가 배경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한정된 우주 공간에서 제한된 인원으로 벌어지는 공포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존 카펜터의 <화성의 유령들>, 브라이언 드 팔마의 <미션 투 마스> 같은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대원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뭔가 알 수 없는 근원적인 공포, 미지의 생명체가 그곳에 존재한다.


물론 이런 영화의 원조는 리들리 스콧의 1979년작 <에이리언>이다. 승무원 7명이 탑승한 노스트로모호가 우연히 생명의 신호를 포착하고 대원들은 혹성을 탐험하다가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폐쇄된 공간 속 SF호러 영화가 저예산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대작에서도 충분히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에이리언>의 대성공으로 제작규모가 커진 <에이리언 2>나 <에이리언 3>가 지구로의 귀환이나 노동 교도소 혹성 등을 통해 더 커진 스케일을 감당하려 했다면 <프로메테우스>는 그보다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는 방식으로 이 영화의 세계관을 관객들에게 납득시키려 한다. 그 방식은 매우 웅장하고 비주얼은 심지어 우아해서 <프로메테우스>가 <에이리언>의 프리퀼이었다는 사실마저 잊게 만들 정도다. 인류의 탄생이 신이나 진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계의 생명체, 일명 '엔지니어'에 의한 것이라는 설정은 새로우면서도 일견 황당해보이지만 이 영화의 비주얼팀이 이룩한 눈의 쾌감은 기어코 그 설정을 믿게 만든다.


 


새로운 기술


SF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들은 지금까지 현실 세계의 기술 발전을 선도해왔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태블릿PC와 우주정거장이 그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홍채 인식 기술과 동작을 인식하는 3D 컴퓨터가 그랬다. 물론 <매트릭스>의 가상현실이나 <A.I>의 로봇, <아바타>의 홀로그램 같은 경우 아직 현실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상상이 구현된 영화 속 신기술은 우리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프로메테우스>에도 몇몇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우선, 어떤 수술도 가능한 로보틱 메디컬 포드가 눈에 띈다. 장거리 우주여행은 부상이나 질병을 유발할테고 그에 따라 만능 수술장비가 필요해질 것이다. 장거리 수면용 캡슐처럼 생긴 이 고가의 기기는 원하는 수술 방식을 미리 입력해놓으면 그에 맞추어 기계가 외과 수술을 진행한다. 국소마취 후 레이저로 살을 절단하고, 꿰매는 대신 압축핀으로 살을 붙인다. 단, 남성용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여성용 수술은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ㅠㅠ) 속편에서는 산부인과용 기구도 나와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퍼피'라는 애칭으로 불린 매핑 볼은 미지의 장소를 돌아다니며 모선으로 입체영상을 전송하는 작은 공이다.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빨간색 레이저를 쏘아대는데 아마도 우주를 탐험하는 시대에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필수 장비가 될 것 같다. 혹은 군사용 장비로 개발될 수도 있겠다. 또, 한결 가벼워 보이는 우주복과 둥근 LED 헬멧도 있다. 우주복은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 실용적이고, LED 헬멧은 영상 녹화 및 전송이 가능하고 조명까지 장착돼 있어 유용해 보인다. 다만 여전히 뭉툭하게 둥근 디자인으로 외관상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실망스럽기는 하다.


비주얼에 가린 스토리


SF 영화의 팬들에게 리들리 스콧은 그 자체로 기대감에 벅차오르게 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한동안 SF를 떠나 있었고 또 이미 74세가 된 노감독이라서 솔직히 이 영화의 제작소식을 듣고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이 영화가 <에이리언>의 프리퀼임을 부정했다. 그 대신 인간의 근원을 탐구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혹시 철학에 매몰된 나머지 비주얼의 상상력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공개된 영화는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영화의 만듦새는 아주 훌륭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다만 비주얼에 압도되었지만 이 영화의 플롯에는 다소 흠이 있어 보인다. 가령, 메레디스 비커스(샤를리즈 테론)의 존재 이유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그녀의 아버지가 피터 웨이랜드임이 드러나고 그러면서 뭔가 폭넓은 드라마가 펼쳐질 것 같았지만 별 일이 없다가 결국 어처구니 없이 우주선에 깔려 죽고 만다. 너무 아쉬운 캐릭터다. 또, 자넥(이드리스 엘바) 함장과 영화 내내 줄곧 돈 내기만 하던 두 승무원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 짧은 시간에 결단을 내리고 외계인의 우주선으로 돌진해 자폭한다.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벤 애플렉을 밀쳐낼 때의 닭살이 다시 한 번 돋을 것 같았는데 최대한 자제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 장면을 꼭 그렇게 유치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숭고한 방식으로 그렸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 영화의 각본에는 TV시리즈 <로스트>의 데이먼 린델로프가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러나 <로스트>의 분위기는 그다지 느낄 수가 없었다.


 


창조자와 피조물


<프로메테우스>의 스토리를 이해하는 열쇳말은 '창조자' 그리고 '피조물'이다. 사실 스토리 자체가 아주 어렵거나 복잡하지는 않다. 다만 인물들의 관계를 분석해보면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세계다.


우선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빗(마이클 파스벤더)을 보자. 그는 틈틈히 인간이 만든 영화를 본다. 감정도 없고 늙지도 않으니 남는 게 시간이다. 고대 언어 10개를 습득하고 자신을 만든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첫 부분에서 그는 영화 속 대사를 따라 반복해 읊조린다. "트릭은, 사실 뜨겁지 않다고 믿는 거야." 데이빗은 스스로 밝히는 대로 인간이 부자연스럽게 느끼지 않을 일을 행하도록 설계되었다. 그 말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척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와 데이빗의 처지가 참 비슷하다. 데이빗은 대화하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척 하고, 산소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주복과 헬멧이 필요없지만, 그것들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믿는다. 사실 이 영화에서 데이빗 만큼 변화하는 캐릭터가 없기 때문에 데이빗을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에피소드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이 상태로는 갑작스럽게 찰리 할러웨이(로건 마샬 그린)를 죽이는 데이빗을 사실 잘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웨이랜드가 그런 명령을 왜 내렸는지도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를 <블레이드 러너>처럼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안드로이드로 바라볼 것인지 혹은 창조주 아래에서 스스로 호시탐탐 독립을 꿈꾸는 피조물로 바라볼 것인지 결론내리기 쉽지 않다.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데이빗과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의 관계는 피조물과 창조주라는 것이다. 웨이랜드 스스로 가장 놀라운 발명품이라고 했던 로봇 데이빗. 그래서 데이빗은 인간이 왜 자신들의 창조주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데이빗은 자신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를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라는 것은 "만들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이다. 그냥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들었을 뿐이다.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에게 무심코 내뱉은 창조의 이유다. 그렇다면 인간의 창조주라고 크게 다를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슨 거대한 이유를 갖고 인간을 만들었을까. 그런 면에서 데이빗은 시니컬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데이빗은 찰리에게 묻는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냐고. 찰리와 엘리자베스는 인류 창조의 해답을 얻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는 이미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데이빗은 그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깨닫고는 스스로 피조물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를 창조한 웨이랜드가 사라져야 했다. 데이빗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자식은 없다." 자신의 창조주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데이빗은 웨이랜드를 마지막 남은 인류의 창조주에게 데려간다.


인류의 기원


영화의 첫 장면에 엔지니어가 등장해 폭포수 앞에서 액체를 마시고 폭포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이 장면은 마치 인류의 기원 설화처럼 보인다. 외계인의 DNA가 물과 합쳐서 인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의 은하계를 그린 별들의 위치가 담긴 그림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즈텍, 마야 등지의 벽화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미지의 행성에서 엔지니어들의 사체를 탄소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엔지니어들은 2천년 전에 이미 지구로 오려고 준비중이었다. 그들의 우주선에는 인류를 멸망시킬 만한 액체가 담긴 수많은 항아리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던 중에 엔지니어와 파충류(?) 사이에서 에이리언이라는 돌연변이가 등장해 엔지니어들을 몰살시켜버렸다.


그렇다면 엔지니어들은 왜 인간을 만들고 또 인간을 없애려 했을까? 그것은 마치 로봇을 만든 인간이 그 위험을 알아채고 다시 로봇을 없애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그런 측면에서, 마지막 장면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파스)와 데이빗이 인류의 창조자에 관해 나누는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엘리자베스는 묻는다. 왜 자신이 만든 종족을 다시 죽이려고 했는지 그들을 찾아가 그 이유를 묻고 싶다고. 데이빗은 대답한다. 그 이유 따위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피조물의 숙명 사이의 충돌이다. 하지만 그들은 둘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다. 로봇은 제대로 된 이유를 듣지 못했고, 인간은 꼭 확인을 해야 실망하는 존재인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속편으로 넘긴다.



PS) <에이리언>이 인기를 끈 요인 중 하나는 히로인 시고니 위버의 섹시한 여전사 이미지에 있었다. 탄탄한 몸매의 그녀는 짧은 팬티 바람으로 에이리언에게 쫓겨다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밀레니엄: 용 문신을 한 소녀>의 여전사 누미 라파스는 시고니 위버 만큼이나 섹시한 여전사에 어울리는 배우로 기대됐었는데 생각보다는 비중이 약했다. 하지만 결국 홀로 살아남았으니 속편에서는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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