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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액션 진수성찬 ‘존 윅’이 세 번째 시리즈로 돌아왔다. 1편에서 77명, 2편에서 128명을 저 세상으로 보냈던 돌아온 킬러 존 윅은 신작 ‘존 윅 3: 파라벨룸’에선 그 이상의 적들과 맞선다.


전편에서 국제 암살자 연합의 고위 임원을 죽인 존 윅에게 암흑 세계는 파문 결정을 내린다. 존 윅은 영화 시작하자마자 140만 달러의 현상금이 내걸리며 전세계 킬러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홀로 자신을 공격하는 킬러들에 맞서던 그는 파문 결정을 내린 암흑 세계의 절대자를 찾아 나선다.



2014년 첫 시리즈를 선보인 '존 윅'은 제작비 2000만 달러 대비 6배 이상인 1억 3000만 달러 수입을 거두며 라이언스게이트의 새 프랜차이즈 영화로 등극했다. 벨라루스 출신의 은퇴한 킬러가 복수를 위해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플롯에도 화려한 아날로그 액션으로 주목받았다. ‘47 로닌’ ‘스트리트 킹’ 등 잇따른 흥행 실패로 고전하던 키아누 리브스를 완벽하게 부활시킨 시리즈이기도 하다.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등 다른 스파이 스릴러 프랜차이즈들이 치열한 두뇌게임으로 승부를 벌인다면 ‘존 윅’은 트릭을 쓰지 않고 단순하게 힘 대 힘 승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컴퓨터그래픽 없이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힘든 요즘 할리우드에서 몸과 몸이 직접 부딪치는 날것 그대로의 액션은 이소룡, 성룡 영화에 열광하던 과거 세대의 향수까지 자극한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시리즈 3편을 모두 연출한 감독 채드 스타헬스키는 이소룡의 아들 브랜던 리와 스턴트맨 생활을 함께 했던 친구 사이로 브랜던 리의 유작 ‘크로우’(1994)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매트릭스’(1999)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스턴트 대역을 맡았던 그는 ‘존 윅’에 먼저 합류한 키아누 리브스로부터 처음엔 액션 연출만 제의받았으나 스튜디오에 적극적으로 영화 연출 의지를 밝힌 끝에 결국 스턴트맨 출신 스타 감독이 될 수 있었다.


전 편의 두 배 가까운 75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한 ‘존 윅 3’는 이 시리즈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정교한 액션 시퀀스, 강렬한 캐릭터, 우직하게 내달리는 스토리라인 등 영화의 만듦새는 시리즈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날렵하다. 영화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직접 부딪치는 액션 장인정신.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 이후 커트 분할하지 않고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싸움 장면이 액션 마스터들의 로망으로 떠올랐는데 ‘존 윅’은 주짓수 대결, 오토바이 추격전 등에서 수차례 긴 호흡의 액션 시퀀스를 만들어낸다. 존 윅이 싸우는 장면에선 그가 어디에 힘을 주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다. 또 책과 벨트마저 무기로 이용하는 상상력, 피해자의 시선에서 타격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찔함, 살육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절대고수에 대한 존경심에서 예의를 지키는 적들, 존 윅의 옛 파트너로 출연하는 소피아(할리 베리)와 두 마리의 말리노이즈 사냥개가 함께 선보이는 협공 전투, 총 기종에 따라 달라지는 사격 자세와 총알 갯수까지 신경 쓴 디테일 등 무술과 액션에 대한 장인정신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할리 베리


둘째 아날로그에 대한 애착. 디지털 시대를 비웃듯 영화는 아날로그의 우아함을 강조하고 있다. 암흑 세계의 행정은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고 이뤄지는데 20세기 초중반에서 온 듯한 여성 행정직원들이 구식 전화기로 명령을 전달하고 칠판에 분필로 현상금을 적는 과정은 암흑 세계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이들이 굳이 ‘파문’이라는 종교 용어를 쓰는 것도 디지털과 대비되는 구식 아우라를 창출해낸다. 호텔에서 클라이맥스를 준비하는 장면은 순교자의 행위를 닮았다.


비트코인 시대지만 암흑가에선 실물 골드코인 하나면 계약이 이루어지고, 이 계약이 성립됐음을 보장하는 장치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살갗에 코인을 불로 지지는 것이다. 정보를 모으는 방식은 인터넷이 아니라 비둘기가 직접 물어오는 것인데 킹(로렌스 피시번)은 비둘기는 해킹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인터넷이라며 자랑한다. 반자동 권총이 예사로 등장하는 시대에 총격전 중간마다 창탄을 갈아 끼우고 총알을 채워 넣는 장면을 생략하지 않는 것도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방탄 장비가 발달한 것을 알게 된 존 윅은 매번 확인사살을 하며 영화가 얄팍한 트릭에는 관심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카리스마 넘치는 새로운 인물들. 가장 눈여겨 볼 캐릭터는 재판관으로 등장하는 아시아 케이트 딜론이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에 블랙 수트 차림으로 등장해 블랙코인을 내밀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그는 센 남자들을 압도하며 존 윅을 도운 자들에게 즉결 처분을 내린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서 백인 지상주의자로 교도소에 들어온 브랜디 엡스 역할로 얼굴을 알린 그는 북미 최초의 논바이너리(성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은)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드라마 ‘빌리언즈’에선 헤지펀드의 논바이너리 인턴을 연기하기도 했다. 참고로 딜론은 ‘빌리언즈’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는데 주최측은 그를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시켰다.


아시아 케이트 딜론(왼쪽)


존 윅에게 “우리는 죽음의 마스터”라고 말하며 끝까지 그를 뒤쫓는 제로 역할의 마크 다카스코스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계는 필리핀과 중국, 모계는 일본과 아일랜드 혼혈로 소년 시절 가라데와 쿵푸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무예를 익히며 자랐다. 성인이 된 후엔 무에타이, 카포에이라, 우슈까지 연마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길거리 캐스팅돼 연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 속에서 다양한 무술의 마스터로 등장했는데 ‘늑대의 후예들’ ‘크라잉 프리맨’ 등이 대표작이다. 온갖 무술의 대가인 제로와 존 윅의 마지막 대결은 호텔 속 비밀의 거울 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이는 명백히 이소룡의 걸작 ‘용쟁호투’에 대한 오마주다.


마크 다카스코스(왼쪽)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네 번째 시리즈를 예고한다. 감독은 3편을 촬영하기 전부터 4편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한 팬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밝힌 바 있다. ‘존 윅’의 세계관은 옆으로도 확장할 예정이다. 배급사 라이언스게이트는 스핀오프로 '발레리나'를 준비 중인데 킬러 훈련을 받은 발레리나가 가족을 죽인 암살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존 윅 3’에 발레 극단을 운영하는 대모(안젤리카 휴스턴)가 등장한다는 것이 힌트가 될 수 있겠다.



스타헬스키 감독의 절친인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의 히트작 '아토믹 블론드'의 샤를리즈 테론이 존 윅을 상대하는 기획도 준비 단계다. 레이치 역시 스타헬스키처럼 스턴트맨 출신이라는 점에서 남녀 최강 킬러의 액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팬들의 관심이 높다. 두 감독은 시나리오가 좋을 경우에만 영화를 만들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존 윅’은 한국과도 인연이 매우 깊다.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에 이어 이번엔 정병길 감독이 ‘악녀’에서 보여준 오토바이 액션 시퀀스를 뉴욕의 폐쇄된 다리를 배경으로 재현해냈다. 정 감독 역시 스턴트맨 출신으로 액션 연출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스타헬스키와 공통점이 있다.



북미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한 한국계 배우 김덕문(랜달 덕 김)이 1편에 이어 이번에도 의사로 출연한다. ‘매트릭스 리로디드’(2003)에 출연하면서 키아누 리브스와 맺은 인연이 이번 시리즈 출연으로 이어졌다.


영화의 부제인 ‘파라벨룸’은 영화 속에 대사로도 등장하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뜻의 라틴어 ‘Si vis pacem, para bellum’에서 따온 단어다.


존 윅 3: 파라벨룸 ★★★☆

우직하게 내달리는 아날로그 액션의 진수성찬.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9/06/25966/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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