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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눈덮인 숲속에 사슴 두 마리가 노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사슴의 모습은 그러나 다음 장면에선 도축장의 소로 이어진다. 이미 죽은 소는 머리와 몸통이 분해되어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한다.


숲속의 사슴과 도축장의 소의 강렬한 대비는 곧이어 마주하게 될 러브스토리의 예고편이다.



죽은 소같은 중년 남자 엔드레(게자 모르산이)는 도축장을 운영한다. 그는 소아마비에 걸려 왼손을 쓰지 못한다. 세상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는 지독한 권태에 빠져 있다. 숲속의 사슴같은 젊은 여자 마리어(알렉산드라 보르벨리)는 도축장에 갓들어온 신입사원이다. 그녀에겐 모든 것이 낯설다. 그녀는 어른이 될 때까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래서 대화를 통째로 외우고 연습한다. 하지만 매번 소통에 실패한다.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은 그러나 같은 꿈을 꾼다. 숲속의 사슴이 되는 꿈이다. 사내 동물발정제 도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직원들 심리상담을 의뢰했다가 두 사람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엔드레는 마리어에게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리어 역시 마찬가지다. 꿈속에서 본 사슴 두 마리 중 하나가 그 사람이라니. 둘은 사내 식당에서 마주 앉아 꿈속에서 본 풍경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대화는 자주 삐걱거린다. 여자에겐 사람과 나누는 대화 자체가 도전이다. 그녀는 몇 마디를 나누고는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한다며 가버린다. 남자는 자신에게 먼저 말을 붙이는 젊은 여자가 이해되지 않기에 더 다가가지 않는다.


다음날 같은 식당에서 다시 마주앉은 두 사람. 엔드레는 마리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본다. 마리어는 휴대폰이 없다고 말한다. 남자는 이를 여자가 자신을 거절하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리어는 그를 거절한 것이 아니다. 정말 휴대폰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바로 휴대폰을 사러 간다.



마리어는 엔드레와 사랑에 빠졌다. 아니, 자신의 감정이 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그 남자가 계속 생각난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것들을 찾아본다. 야한 영화도 보고, 레코드샵에 들러 사랑 노래도 들어본다.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점원이 추천해준 한 곡만은 마음에 들어 음반을 구입한다.


마리어는 엔드레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 타이밍과 멘트는 참 어설프고 뜬금없기 짝이 없다. 밥 먹고 있는 남자에게 대뜸 다가가 “당신 참 아름다워요”라니… 엔드레는 갑작스런 여자의 고백이 당황스럽다. 그래서 넌지시 말한다. “저는 당신과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뜻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생애 처음 느낀 사랑에서 좌절을 경험한 마리어에게 그날 밤은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녀는 욕실에 들어가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긋는다. 동맥에서 피가 솟구쳐오른다. 그녀는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는 피가 쏟아지는 것을 지켜본다. 그런데 마침 플레이어가 고장나서 음악이 멈춘다. 죽는 순간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다니. 눈을 감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그 남자다. 전화번호를 아는 건 그 남자밖에 없으니까.


마리어는 욕실을 나와 허겁지겁 전화를 받으러 간다. 손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은 혹시 전화를 받지 못할까봐 사색이 되어 있다.



전화 속 엔드레는 용건이 있어서 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리어 역시 용건이 있어서 그의 전화를 기다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침착하게 통화하고는 있지만 발가벗은 채 피를 흘리면서 덜덜 떨고 있다. 안드레는 전화를 끊으려다말고 대뜸 사랑을 고백한다.

“저 사실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지금 보고 싶어요.”

“저도요. 그런데 잠깐 시간을 주세요.”


마리어에게 세상은 전화통화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전화벨소리는 그녀를 구원했다. 그녀는 이제 살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이제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마리어는 전화를 끊자마자 손목을 지혈한다. 비닐봉지든 뭐든 닥치는대로 손목에 붙이고 테이프로 둘둘 감는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소통에 서툰 여자와 소통이 지겨운 남자가 만난다.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뒤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섹스를 한다. 이때 카메라는 두 사람이 포개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남녀의 얼굴을 각각 따로따로 잡는다. 그리고 아침을 함께 맞이한다. 집 안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이제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남자가 묻는다.

“오늘 꿈을 꿨어요?”


여자가 대답한다.

“아니요. 오늘은 꿈을 꾸지 않았어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눈덮인 숲속에는 더 이상 사슴이 살지 않는다. 사슴 두 마리는 현실 속으로 빠져나왔다. 현실은 소들이 죽어나가는 도축장이다. 숲이 아닌 도축장에서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완전한 사랑은 어쩌면 꿈속에서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강렬한 이미지와 낯선 스토리라인의 헝가리 영화인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의 원제는 ‘육체와 영혼(On Body and Soul)’이다. 소와 사슴, 엔드레와 마리어는 각각 육체와 영혼을 상징한다. 소를 동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엔드레는 영혼이 마비되어 있고, 영혼에 상처를 입은 마리어는 육체마저 버리려 한다. 이처럼 서로를 갈구하지만 분리된 육체와 영혼은 엔딩에 이르러 마침내 합쳐지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도축장에서 숲속 이상향을 꿈꾸는 두 사람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육체가 있는 바로 그곳에 당신의 영혼도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야말로 진정 사랑의 힘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

소통에 서툰 여자와 권태에 빠진 남자의 러브스토리. 이토록 강렬한 엔딩.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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