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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과 여성혐오. 올해 한국영화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공통 키워드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변했지만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들의 마인드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온갖 방식으로 살해당하는 여성들이 즐비한 <브이아이피>를 만든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최재원 대표는 “앞으로는 영화인들이 자기검열하며 표현 수위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누군가 농담처럼 ‘이제 디즈니 영화나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는데 이는 ‘여혐’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자기 작품을 포르노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적절한 자기 검열은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데 필요하다”고 반박했고, 한 언론사 베테랑 기자는 “디즈니 영화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줄 아냐”며 “디즈니 영화는 관객 성향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질타했다.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군함도>를 만든 강혜정 대표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 영화가 250억원에 달하는 모험적인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어설프게 흥행코드를 집어넣느라 역사적 맥락에 소홀했다는 지적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처=이송희일 페이스북)


이송희일 감독은 페이스북에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의 포스터들을 모은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택시운전사>부터 <남한산성>까지 25편의 포스터에 등장한 주인공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가 남긴 코멘트는 이랬다. “누가 보면 한국에는 여자 배우가 아예 없거나 여성의 영화 출연이 금지된 줄 알겠다. 이젠 좀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여성이 포스터에 등장하는 영화는 <악녀> <장산범> <여교사>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역사왜곡과 여성혐오는 모두 윤리적 태도의 문제다. <브이아이피>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여성 캐릭터의 인생에 대해 조금만 더 고민했어도, <군함도>가 친일파의 내부 총질에 대해 조금만 더 사려깊게 접근했어도 이토록 논란이 과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이렇게 해도 문제가 없겠지 하는 안이한 태도가 시대정신과 부정교합을 일으켰다.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 240번 버스 사건, 퇴근 후 카톡 지시 금지, 직장내 성추행 폭로 등등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여러 사건들에서 보듯 지금은 크든 작든 정의롭지 못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시대다. 대중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고, 또 이를 요구하고 있다. 240번 버스 사건처럼 오해가 있던 사건도 결국 오해의 매듭이 풀리며 정리가 된다.


최근 한국영화가 잇달아 논란이 되는 이유는 영화 제작자들이 이런 사회 변화의 맥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훈정 감독처럼 “제가 잘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고민하겠습니다”는 답변은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꼰대’ 같은 제작자들이 한국영화계에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영화가 관객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라 되레 관객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시대에 기적처럼 한 편의 영화가 등장했다. 역사와 여성을 그리는 방식 모두에서 모범적인 이 영화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하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이야기다.



지금까지 위안부 소재 영화들은 희생자로서의 여성에 주목했다. 위안부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귀향>마저도 자극적인 장면을 전시해 박우성 평론가는 이 영화 역시 ‘여혐’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나옥분(나문희) 할머니를 단지 희생자로서만 그리지 않는다. 그녀의 첫 등장은 어느 동네에나 한두 명쯤 있을 법한 민폐 민원인의 모습이다. 그녀는 동네 정의를 수호한다는 일념으로 욕을 먹든 말든 제할 일을 한다. 역사의 희생자가 누군가에겐 가벼운 가해자가 된 이 아이러니는 옥분 할머니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녀는 더 이상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인 것이다.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다다를 때까지 옥분이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에서 옥분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무척 제한적이다. 윤간 장면은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옥분의 깊은 고통은 그의 자살 시도 단 한 번으로 상징적으로 처리된다. 그리고 관객이 그녀의 고통에 감정이입하는 데에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주저리주저리 자극적인 장면을 집어넣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피해 여성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다.


영화는 그녀의 고통스런 과거를 전시해 쉽게 억지스런 감동을 끌어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녀가 미래로 나아가려는 결심을 한 순간, 바로 이 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차곡차곡 새로운 드라마를 쌓아간다.


과거를 그리지 않는 대신 영화는 옥분의 미래를 보여준다. 한때 죽고 싶을만큼 힘든 과거를 견뎌왔겠지만 현재의 옥분은 더 이상 과거에 억눌린 나약한 여성이 아니다. 평생 자신의 과거를 숨겨온 그녀가 영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약해져가는 친구를 보며 이제라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영화의 소재인 ‘영어’는 그녀가 과거와 소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언어’가 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옥분은 용기를 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연설을 시작하는데 이때 쓰는 언어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다. 결국 영어는 옥분의 결심을 돕기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진정한 소통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역사에 대입했기에 영화는 역사의 무게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그동안 한국영화가 간과해온 윤리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요소를 더 살펴보자.



영화는 옥분과 박민재(이제훈)의 관계를 유사 할머니와 손자 관계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 관계다. 옥분은 민재에게 결핍되어 있던 가족애를 일깨워주고, 민재는 옥분에게 “말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어느 한쪽도 일방적이지 않다.


영화 중반에 옥분과 민재가 이태원 술집에서 내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민재는 옥분에게 외국 사람을 찾아가 5분동안 대화해 보라고 시킨다. 영어를 배우는 데는 실전연습이 중요하다는 게 이유다. 처음에 괴로워하던 옥분은 이 과제를 예상 외로 잘 해낸다. 짧은 영어로도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이 모습을 보고 민재는 놀란다.



이 장면은 옥분과 민재의 영어를 대하는 태도 차이를 드러낸다. 옥분에게 영어는 감춰왔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다. 반면 민재에게 영어는 토익 점수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우정이 쌓이면서 민재는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깨달아간다.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생큐, 앤드 유?” 이 입에 붙은 단순한 문답이 두 사람 사이에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의 도구가 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매우 사려깊은 방식으로 역사와 여성을 그리고 있다. 키워드는 ‘절제’와 ‘당당함’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감동을 줄 때는 시종일관 뻔뻔해 보였던 옥분에게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는 것이 언뜻언뜻 드러날 때다. 평생 고독에 단련된 그녀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옥분은 할 일 다했다며 만족하는 게 아니라 “아베 걔가 또 미친 소리 했더라” 라면서 파워 워킹을 한다. 그녀에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고 미래는 여전히 그녀의 앞에 펼쳐져 있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고연령대의 주인공인 그녀는 가장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다.


<아이 캔 스피크>가 한국영화의 분기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전까지 ‘창작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역사를 자극적으로 전시하고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영화를 만들어오던 관행이 이 영화에 영향 받아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자는 비단 김현석 감독과 영화사 시선, 명필름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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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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