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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쪽으로 25km 거리에 있는 차르스코예 셀로(푸시킨)에 가면 표트르 대제가 둘째 부인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해 지어준 궁전이 있습니다. 러시아 고유의 양식과 서유럽식 왕궁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합니다.


기차 내부.


이날 저는 백야나라 일일투어를 신청해 비쩹스키 역에서 가이드 안나를 만나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안나는 20대 초반의 러시아 여성인데 한국어를 독학으로 배웠다고 합니다. 한국 드라마의 팬이고 한국에도 서울 연남동에서 열흘 정도 머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성격도 밝고 인기 있는 가이드더라고요.


기차를 타고 30분을 달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20분가량 이동해 푸시킨 시에 도착했습니다. 예카테리나 궁전 앞에 도착한 시간은 8시 45분. 아무도 없더군요. 개인 티켓은 12시부터 판매합니다. 시간당 입장 인원에 제한이 있어 미리부터 줄을 서 있기 위해 일찍 왔습니다만 너무 일찍 왔나봅니다. 안나는 자기가 줄을 설테니 2시간 동안 정원 산책을 하고 오라고 합니다. 원래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서요. 안나를 혼자 남겨두기 미안했지만 시간이 돈이니 움직여야죠.



예카테리나 궁전.


예카테리나궁 앞에는 대규모 정원이 있습니다. 규모가 워낙 커서 한 번 길을 나섰더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정원은 영국식 정원, 프랑스 베르사유식 정원, 폴란드식 정원 등으로 구분됩니다. 영국식 정원은 예카테리나 1세의 취향, 폴란드식 정원은 표트르 대제의 취향을 반영해 지은 곳이라고 합니다. 베르사유식 정원은 당시 러시아 귀족들의 로망이었고요. 지금부터 잠깐 예카테리나궁과 정원이 지어진 배경을 살펴볼까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도시로 만든 사람은 17세기의 표트르 대제입니다. 그런데 애초 표트르 대제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형 이반 5세가 병약해 타의에 의해 왕이 될 자질이 있다고 여겨졌을 뿐이었죠. 표트르 대제의 자질을 눈여겨보며 질투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이복누나 소피아입니다. 소피아는 권력을 잡은 뒤 잠재적 위협자인 표트르와 생모를 수도원으로 귀양보내버렸습니다.


당시 14살이던 표트르는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권력 기반을 쌓아나갑니다. 위협을 느낀 소피아는 표트르가 17세 된 어느날 자객을 보내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표트르는 암살단을 체포한 뒤 그 길로 모스크바로 진격합니다. 소피아가 실각하고 표트르는 그녀를 역으로 수도원에 가둡니다. 이제 표트르 대제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예카테리나 궁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를 강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바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공격해 소치 아래 흑해 인근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흑해는 쓸만한 바다가 아니었죠. 다시 눈을 서쪽으로 돌린 그는 스웨덴에 빼앗겼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공격해 정복했습니다. 스웨덴 상대 첫 승리였기에 러시아 제국은 의기양양해졌습니다. 영토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요새 같은 성을 지었는데요. 여름궁전과 겨울궁전이 바로 그곳입니다.


표트르 대제에겐 첫번째 아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복사업을 펼치는 남편에게 적합한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남편의 적과 내통하며 표트르 대제를 배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정교회에선 이혼을 금지했기에 표트르 대제는 이혼한 첫 번째 러시아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트비아 출신의 둘째 부인 예카테리나 1세는 호방한 여장부였고 표트르 대제와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별로 예쁘지는 않더군요). 표트르 대제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구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에게 이미 남편이 있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물러설 황제가 아닙니다. 그는 남편을 찾아가 만찬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부탁이 있소. 당신 아내를 내게 주면 어떻겠소?” 남편은 승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르미타주.


예카테리나궁은 표트르 대제가 예카테리나(영국식으로 캐서린)에게 결혼 선물로 준 땅에 지은 성과 정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정원의 끝에는 에르미타주가 있습니다. ‘에르마티주’란 ‘혼자 있기 좋은 방’이라는 뜻의 건축물입니다. 황제가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농노가 밧줄을 잡아당겨 2층으로 테이블을 올려주었고, 그러면 황제는 그곳에서 혼자 사색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황제가 종이에 써서 아래로 내려보냈고 그러면 농노가 물건을 밧줄로 올려주었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에르미타주엔 밧줄 시설이 보존돼 있습니다. 작동은 되긴 하지만 이젠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가이드 안나.


정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 안나와 수다를 떨었습니다. 비정상회담을 열심히 보고 있다고 하네요.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들의 로망인가 봅니다.


드디어 12시가 되자마자 궁전으로 들어가 1등으로 티켓을 구입했습니다. (이게 뭐라고...) 내부에는 그룹투어가 한창 진행중이었고, 우리팀은 안나를 따라다니며 방마다 설명을 들었습니다.


황금이 너무 흔해 어디를 가도 화려함의 극치인 예카테리나궁 안에는 특히 더 화려한 연회장이 있습니다. 옛날 왕가에선 반드시 무도회를 열어 사람들을 초청해야 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르 1세가 나폴레옹을 무찌르고 귀환했을 때 엄마인 마리아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그를 맞이했다고요.


표트르 대제의 초상.

예카테리나 대제의 초상.


여름궁전에선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하게 했는데 예카테리나궁에선 내부 촬영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호박방’이 있습니다. 방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곳입니다.


표트르 대제는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호박방을 보고 반해 러시아에도 호박방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독일 프리드리히 1세가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표트르 대제에게 선물로 호박방을 떼어다가 보내주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호박을 싹 긁어가며 훼손했고, 지금 이 방은 그중 일부를 복원한 것입니다. 일부는 복원하지 않은 채로 남겨둔 곳도 있습니다.



솔랸카.


예카테리나 궁전 관람을 마치고 30분을 걸어 마을로 나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부대찌개 비슷한 수프인 솔랸카, 작은 물만두 펠미니, 꼬치구이 샤슬릭 등을 주문했고 맛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다시 움직여야죠. 버스를 타고 푸시킨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파벨롭스크로 이동합니다. 파벨롭스크에는 예카테리나 대제(예카테리나 2세)가 아들 파벨 1세를 위해 지은 성이 있습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아들을 미워해 그 손자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지만 기대는 가끔 현실을 배반하는 법이어서 예카테리나 대제가 급서하자 파벨은 자연스럽게 왕위에 올랐습니다.


파벨롭스크 궁전.


파벨은 지극히 사랑했던 첫째 아내가 죽자 재혼을 거부했는데 엄마인 예카테리나 대제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그가 다시 여자를 만날 수 있도록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녀는 첫째 아내가 죽기 전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처럼 속여 파벨이 그녀를 잊도록 했고 이 작전이 통했습니다. 파벨은 다시 여자에 관심을 갖고 둘째 아내 마리아를 맞이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10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중 2명만 생존했다고 하네요.


파벨롭스크 궁전은 예카테리나 궁전에 비해 규모는 아담합니다. 파벨이 왕이 될 거라고 여겨지지 않던 시절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왕이 된 뒤 파벨은 이 궁전을 확장해 일부 방의 규모는 옛날 방의 세 배 크기에 달하기도 합니다. 이 성에는 고서들이 비치된 도서관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파벨롭스크 궁전을 관람하고 나오니 숲으로 이어집니다. 파벨의 둘째 아내 마리아는 당대의 화가들을 불러모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가장 아름다운 숲을 그려오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림 속 여러 정원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그녀는 어떻게 했을까요? 네, 그녀는 이번엔 전국의 건축가들을 불러모아 이 그림과 똑같이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죠? 그 결과가 지금 이곳 파벨롭스크 숲입니다. 전나무, 소나무, 자작나무들이 빽빽히 우거져 북유럽의 기운이 물씬 풍깁니다.


숲을 빠져나오니 기차역입니다. 기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비쩹스키역에 내렸습니다. 안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성 미카엘의 성을 보러가기로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근처에 내리니 저녁 노을이 드리워 강물에 아름답게 반사되고 있네요.


성 미카엘의 성.


다리를 건너 서커스를 지나 녹색 지붕에 핑크색 건물인 성 미카엘의 성에 도착했습니다. 하루 종일 걸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힘을 내서 그림과 조각들을 감상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련 시대 작가들, 과학자들의 초상, 그리고 1986년, 1989년, 1991년 등으로 이어지는 TV 영상이었습니다. 역사적 격변의 시기에 소련의 TV 뉴스는 이를 담담하게 보도하고 있었군요. 정치인들 사이로 빅토르 최와 타르코프스키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마말리가 식당.

타차푸리.


성 미카엘의 성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마말리가'라는 식당을 찾아갔는데요. 웰컴 음료로 빨간 빛깔의 블랙 커런트를 주네요. 그래서 첫 인상은 좋았습니다. 치킨 버섯 수프와 피자 '타차푸리'와 볶음밥 비슷한 음식과 송아지 스테이크를 시켰습니다. 타차푸리의 양이 너무 많아서 송아지 스테이크를 주문한 것을 나중엔 후회했지만요. 맛은, 음... 역시 별로였습니다. 러시아에선 맛있는 음식이 너무 그립네요.


(7회로 계속)



푸시킨으로 가는 기차



예카테리나 궁전과 정원



예카테리나 궁전 내부


2차대전 때 폐허가 된 예카테리나 궁전 모습.

복구하는 기술자들.

파베르지 달걀.



파벨롭스크 궁전


왼쪽에서 봐도 쏘고.

오른쪽에서 봐도 쏘고.


파벨롭스크 궁전 앞 정원



성 미카엘의 성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풍경




마말리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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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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