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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는 오늘도 억만장자가 섬을 통째로 빌려 파티를 열어 즐기는 사진이 올라온다. 이 사진에는 ‘K’ 단위의 좋아요가 찍힌다. 꿀피부의 어떤 사모님은 명품숍에서 산 물건들을 인증한 사진을 올리고, 어떤 래퍼는 돈다발을 그대로 찍어 올리기도 한다.


브래드(벤 스틸러)는 이런 사진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47세의 중년남이다. 그의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잘 나가는 대학 동창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할리우드 거물 감독이 된 닉, 헤지펀드로 떼돈을 번 해츠펠드, 40살에 은퇴하고 섬을 사서 두 하와이 여인과 함께 사는 빌리, 베스트셀러 작가 크레이그 등 그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에 빠져 견딜 수 없다.



젊었을 때 브래드는 이상주의자였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비영리단체에 투신했고 지금도 소셜미디어 마케팅 업무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상이 바뀌기는커녕 그 자신이 바뀌었다. 그는 자신만 낙오된 것 같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는 기분전환 겸 아들 트로이(오스틴 아브람스)의 대학 탐방 길에 동행하기로 한다. 보스턴 대학가를 둘러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트로이가 하버드대에 갈 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인생에 실패한 것 같아 자괴감에 빠져 있던 브래드는 자기만 몰랐던 이 기막힌 반전에 화색이 돈다. 아들이 하버드에 가다니… 그는 아내 멜라니(제나 피셔)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들 하나는 참 잘 키웠어.”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영화가 아니다. 브래드의 중년 성장통은 계속된다. 그는 감정기복이 심하고, 과거를 끊임없이 후회하며, 미래를 부정한다. 자신보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아들에게 질투하기도 하고, 하버드대 입학사정관 면접이 좌절된 아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크레이그에게 하고 싶지도 않았던 부탁을 하기도 한다. 아들의 고등학교 선배 아난야(샤지 라자)와 마야(루이사 리)를 만난 뒤에는 이렇게 멋진 여성과 더 이상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데 자괴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아들이 잠든 밤, 술집을 찾아가 아난야를 만난 그는 홧김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버린다. “비영리단체의 꿈? 이상? 다 부질없어. 현실을 봐. 사람들은 기부하라고 조를까봐 나를 피해다녀. 차라리 빌 게이츠가 되는 게 더 나아. 가진 게 많으면 기부를 할 수 있지. 그게 세상을 바꾸는 길이야.”


브래드는 열정적인 대학생 아난야가 갖고 있던 환상을 깨버린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은 상대는 그녀가 처음이다. 하지만 아난야는 브래드에게 되레 이렇게 충고한다. “제가 살아온 인도에는 밥 굶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이 멋지지 않다면 도대체 뭐가 멋진 거죠? 브래드,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졌어요.”



그날 밤, 브래드는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아난야에게 한 방 얻어맞은 듯해 정신이 몽롱하다. 그는 방황하고 또 방황한다. 면접을 앞둔 아들에게 괜히 짜증을 냈다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10년 만에 크레이그를 만난 자리에선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가 괜히 무시만 당한다. 크레이그는 자신이 부러워하던 부유한 친구들에게도 죄다 문제가 있다며 험담을 늘어놓는데 브래드는 오히려 잘난 척하는 크레이그와 있는 시간을 더 견딜 수 없다.


그는 크레이그와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들을 만나 아난야와 마야의 클래식 공연을 함께 본다. 두 여성이 만들어내는 하모니 선율을 들으면서 브래드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로 위로해준다. “사랑해요.”


그 순간, 불현듯, 브래드는 깨닫는다. “세상을 소유할 순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



되고 싶은 내가 있고 거울 속에 보이는 진짜 내가 있다. 이 사이의 간극이 크다고 느낄수록 인간은 불행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그 간극은 더 벌어진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 차이를 받아들이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말 한 마디로 될 수 있을 리 없다. 차이를 받아들이라는 말은 곧 포기하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인생은 없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브래드는 괜찮지 않다. 영화는 그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브래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계속해서 관객에게 속삭인다. 관객은 그의 투정어린 목소리를 들으면서 때론 키득거리고 때론 공감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오늘도 인스타그램에서 마주친 타인의 삶에 위화감과 좌절을 느낀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줄 영화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

세상을 소유할 순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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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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