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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개봉작 중 이대로 묻히긴 아쉬운 영화 세 편을 골라봤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 주연이고, 여성이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24주>는 출산을 앞둔 여성, <아뉴스 데이>는 출산을 앞둔 여성을 바라보는 여성, <언노운 걸>은 죽어간 여성을 지켜주지 못해 자책하는 여성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성이 이야기의 주체이자 창작의 주체로 예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영화를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편씩 살펴보겠습니다.



24주 24 Weeks


꿈에 그리던 임신을 한 아스트리드(줄리아 옌체)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입니다. 그녀는 무대에서 당당하게 출산 계획을 밝힙니다. 무거운 배를 안고 무대에 오르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연일 화제가 됩니다.


어느날 아스트리드는 병원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뱃속의 아이가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90%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심장이 약해서 태어나자마자 장기간 심방을 꿰메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녀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합니다. 생방송을 펑크낼 정도로 그녀는 정신이 없습니다.




아스트리드는 마침 임신 24주차입니다. 병원에 따르면 24주가 지난 태아를 낙태하려면 염화칼슘으로 태아를 죽인 후에 출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죽은 아이를 낳는 방식으로만 아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자니 그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고, 아이를 낳지 않자니 뱃속의 태아를 죽여야만 하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영화는 고민을 거듭하는 아스트리드의 감정 묘사에 러닝타임의 거의 전부를 할애합니다. 관객은 그녀와 함께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지 계속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화는 대부분의 관객이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을 고통을 대리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아스트리드는 결국 한 가지 선택을 하고, 영화는 이를 묵묵하게 지켜봅니다.



영화의 배경인 독일은 1993년부터 낙태를 합법화한 국가입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낙태가 합법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한국영화라면 당연히 합법화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있겠지요. 영화는 그보다는 낙태가 이미 합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낙태로 이르는 과정에는 어마어마한 윤리적 고민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만든 앤 조라 베라치드 감독은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 <투 머더즈>(2013) 등 여성에 관한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감독입니다.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독일예술상, 독일영화상에서 베스트필름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24주>는 한국에서 지난 6월 15일 개봉했는데 관객 3751명을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 영화의 완성도에 비하면 참 아쉬운 스코어입니다. 우리는 대개 즐거움을 간접체험하기 위해 영화를 봅니다만 때론 고통을 간접경험하기 위한 영화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아뉴스 데이 The Innocents


‘아뉴스 데이(Agnus Dei)’는 라틴어로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뜻입니다. 영어 제목은 ‘순수’를 뜻하는 ‘The Innocents’입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군에게 성폭행당한 폴란드 수녀들의 비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12월, 적십자에서 일하는 프랑스 의사 마틸드(루 드 라쥬)에게 마리아 수녀(아가타 부젝)가 찾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마틸드는 수녀원에 가보고 깜짝 놀랍니다. 많은 수녀들이 임신 상태였고 몇몇은 출산을 앞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자이자 레지스탕스였던 마틸드는 수녀들을 도와주려 하지만 평생 순결을 중요시해온 수녀들은 이방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어느날 러시아군이 들이닥치고 이들로부터 보호자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뒤에야 비로소 마틸드는 수녀들로부터 신임을 얻습니다.



영화는 실제 사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전쟁 막바지 당시 독일군이 패퇴해 물러간 이후 무려 200만명에 달하는 폴란드 여성들이 러시아군에게 겁탈당했다고 합니다. 수녀까지도 희생양이 된 이 사건은 한국의 위안부에 버금가는 반인륜 범죄입니다.


마틸드의 모델이 된 프랑스 의사는 마들렌 폴리아크인데 불행하게도 그녀는 이 사건 이후 1년만에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사후 70년만에 조카에 의해 그녀의 일기장이 공개되며 수녀원에서의 비극이 밝혀졌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해 기사 훈장 레종 드 오뇌르를 수여했습니다만,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안부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와 참 비슷합니다.




영화의 감독은 <코코 샤넬>(2009)과 <투 마더스>(2013)의 안느 퐁텐입니다. 전작들과 결이 다른 영화입니다만, 실화를 모티프로 한다는 점과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한다는 점은 유사합니다. 그녀는 “실화를 영화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한 시대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닌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상처와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며 이 영화를 연출한 의도를 밝혔습니다.


영화는 끔찍한 비극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전쟁 이후 출산을 앞둔 수녀들의 절망스런 상황을 묘사함으로써 잔혹성을 짐작케 하는 영리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잔혹한 장면을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짐작만 하게 하는 영화가 더 무서운 것처럼, 단지 수녀들의 표정만 보여줬을 뿐인데도 이 영화는 무척 아픕니다.



끔찍한 비극을 차분하게 그린 이 영화의 엔딩은 다행히도 매우 희망적입니다. 여성 감독에 배우들도 90% 이상 여성인 이 영화는 여성들의 연대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영화는 세자르영화제 작품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지수 93%를 얻으며 호평받았습니다. 한국에선 지난 3월 30일 개봉했지만 관객 1만1611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는데요. 한국도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나라이니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재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언노운 걸 The Unknown Girl


이름이 없는 그 소녀는 진료 시간이 끝난 오후에 돌연 찾아옵니다. 인턴 줄리앙(올리비에 본나우드)과의 갈등 때문에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의사 제니(아델 하에넬)는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경찰이 찾아옵니다. 정체 불명의 한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됐는데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바로 제니의 병원이라는 것입니다.


제니는 죄책감이 시달립니다. 의사로서 본분을 망각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죄책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죽은 소녀의 이름을 찾아주기로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그 소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직접 탐문에 나섭니다. 그녀가 병원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 병원 근처에서 혹시 그녀를 봤을 수 있는 목격자를 찾아다닙니다.



마침 근로 조건이 훨씬 좋은 종합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오지만 제니는 가지 않는 것을 택합니다. 혹시 목격자가 나타날지도 모르고, 또 그녀가 병원 문을 닫음으로 인해 이름 모를 소녀와 같은 제2의 희생자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제니 자신밖에 알지 못할 것입니다. 죄책감이란 오롯이 주관적인 경험이니까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소녀지만 그녀가 한때 여기 이곳에 살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제니는 생각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또 실제로도 그렇고요.




제니의 추적에 따라 하나씩 소녀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온 불법 이민자였고,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이어오던 소녀였습니다.


이쯤되면 영화의 의도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름 모를 소녀는 최근 몇 십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로 떠오른 불법 이민자를 상징적으로 지칭합니다. 그들은 의료 혜택도,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안전 장치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제니가 돌보는 환자들의 경우에도 이름 모를 소녀와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은 제니가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해도 쫓겨날까봐 말을 듣지 않고 더욱 더 제니에게 매달립니다.


제니가 줄리앙에게 상처를 줄 때 한 말은 “의사는 감정을 누르고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니는 이름 모를 흑인 소녀의 죽음 앞에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자책합니다. 이 모순적인 상황에 대해 영화는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그저 한 번 더 생각해보기를 권할 뿐입니다.



영화를 만든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1999), <더 차일드>(2005), <내일을 위한 시간>(2014) 등 부조리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윤리적인 딜레마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언노운 걸>은 전작들에 비해 날카로운 맛은 덜하지만 그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관객 2만4870명을 동원했습니다. 전작 <내일을 위한 시간>의 4만2417명에 비해 아쉬운 숫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언노운 걸>을 통해 제니의 착한 딜레마에 공감하기를 바랍니다.


24주 ★★★☆

선택의 고통이 극에 달한 시간. 만약 당신이라면?


아뉴스 데이 ★★★★

전쟁 사각지대의 비극.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되풀이된 잔인한 역사.


언노운 걸 ★★★☆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미지의 선의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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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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