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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울었더니 딸 보기가 민망합니다. 그래도 한 번 더 보고 싶네요."


지난 6월초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나온 관객 반응 중 일부다. 당시 소셜 미디어에는 비슷한 감상 소감이 줄을 이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가히 '노무현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뒤늦게 영화관에 '노풍'이 불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고 할리우드 영화들 사이에서 관객 185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왜 노무현이었을까. 8년 전 서거한 전직 대통령의 어떤 점이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까? 영화 개봉이 2달가량 지나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은 지금, 필자는 '노무현 신드롬'의 이유를 다섯 가지로 분석해봤다.



첫째, 정치인 노무현에 가려진 인간 노무현의 재발견이다.


노무현은 퇴임 후 더 사랑받았던 최초의 전직 대통령이었다. 그는 봉하마을로 내려가 오리농법에 도전하며 평범한 농부로 여생을 보내려 했다. "대통령님 나와 주세요!" 그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요청에 그가 집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은 당시에도 큰 화제였다. 영화에서 유시민 작가가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사람을 끌어 모으는 사람"이었다.




이런 노무현의 모습은 그동안 재평가 받을 기회가 드물었다. 재임 기간에는 "대통령의 권위를 추락시켰다"며 한쪽에서 공격받았고, 서거 이후엔 노무현이라는 이름 자체가 일종의 금기어처럼 취급돼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노무현 이후 집권한 두 전직 대통령이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풍선효과처럼 그에 대한 향수는 커져갔다.


영화를 만든 이창재 감독은 "진영논리를 떠나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여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영화를 기획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영화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인터뷰이 39명의 회고를 통해 조명한다. 운전기사에게 깍듯이 인사하거나, 정치하면서 돈 때문에 펑펑 울었다거나, 아이를 향해 재미있는 표정을 짓거나, 안기부 직원도 그의 인성에 감복했다는 등의 일화는 노무현을 정치인 이전에 격의 없이 소탈했던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둘째, 노무현의 인생이 지닌 콘텐츠의 힘이다.


지금까지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모두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변호인'(2013)은 신인 감독의 영화임에도 '천만 영화'로 등극했고,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는 1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노무현의 인생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요소로 가득하다. 상고 출신의 비주류 변호사였던 그는 도전과 좌절, 고난 극복과 성공의 일대기를 써내려갔다. 그는 독재정권과 지역주의에 맞서 온몸으로 저항했고,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에도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새롭게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에 고무된 지지자들은 자발적으로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고 이 힘을 바탕으로 결국 그는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런 그의 인생사는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담과 흡사하다. 심지어 그가 비운의 죽음을 맞은 뒤 그의 정신이 부활하는 것까지 신화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각지의 문명에서 비슷한 영웅담이 수천 년 동안 구전되며 살아남은 것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런 이야기에 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효과를 알기에 ‘스타워즈’, ‘매트릭스’ 등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도 영웅담을 단골 플롯으로 차용한다. 노무현의 인생사가 폭발적인 흥행력을 갖춘 것은 이처럼 콘텐츠의 힘 그 자체에 있다.




셋째, 아직 구현되지 못한 노무현의 시대정신에 대한 재평가다.


정치권에 ‘노풍’이 불던 2002년, 사회학자 신광영 교수는 노무현 신드롬을 이렇게 분석한 적 있다. "노무현 후보는 사회적으로 젊은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외환위기 이후 서민들뿐만 아니라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대다수 유권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지역주의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탈지역주의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즉, 노무현은 젊은 정치, 탈기득권, 탈지역주의의 상징이었다. 모든 정치인이 비슷한 구호를 외쳤지만 진정성 있게 삶의 궤적으로 이를 보여준 정치인은 당시 노무현이 유일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단단해 그가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그가 지향하던 가치는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그의 서거 이후 노무현의 시대정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노풍과 닮은꼴로 등장한 오바마의 수평 리더십이 노무현을 다시 보도록 만들었고, 작년 말부터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노무현이 상징하던 가치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노무현이 심어놓은 씨앗이 어느새 훌쩍 자라난 것이다.



넷째, 편향적이지만 보편성을 잃지 않는 영화의 시선이다.


영화에는 감독의 주관이 개입돼 있고 다소 편향적이지만 그것이 보편성을 저해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는다. “나는 애초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었고 서거하기 전까지 그를 잘 몰랐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감독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추모했는데 이후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없다는 것이 이상해 그렇다면 나라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즉, 영화의 기획의도가 회한이나 복수심이 아니라 차분하게 그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는 데 있었고, 영화는 이에 충실하게 충분히 보편적이다.


사실 그동안 노무현과 관련한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관상’, ‘더 킹’ 등 인기를 끌었던 한국영화 속에는 어떤 식으로든 노무현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비유의 방식으로 노무현을 회고했다. 하지만 ‘노무현입니다’는 더 이상 비유가 아닌 직유로 그의 모습을 직접 스크린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르다.



영화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 과정을 따라간다. 지지율 2%에 불과했던 언더독 후보가 대세후보를 꺾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영화는 이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리면서 중간에 그를 추억하는 인터뷰들을 삽입하는데 그 의도는 이런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 실패하는 미래를 알고 있지만 한때는 그가 승리하던 과거도 있었다.


성공의 추억이 이후 닥칠 실패와 겹쳐지면서 그 부조화가 눈물로 승화된다. 정면을 응시하며 증언하는 인터뷰이의 모습, 인터뷰이가 눈물 흘릴 때 흘러나오는 감성적인 음악 등은 관객이 쉽게 영화에 빠져들도록 돕는다. 영화는 이런 극영화적인 방식을 통해 감정을 끌어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강요하는 시선까지는 가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안다.


빈 여백을 관객이 채우도록 슬쩍 팔꿈치로 찌르는 이 방식은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다는 사람들 중엔 애초 그의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사람도 꽤 많다.




다섯째, 새 정부 탄생 후 뒤늦은 추모와 작별인사다.


영화 개봉시기가 절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은 그가 계승하고 극복할 노무현 시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인간 노무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며 영화 흥행에 폭발력을 더했다.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영화 관람은 마음에 쌓였던 빚을 털어내는 추도식으로 여겨지는 측면이 있다. CGV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영화의 주요 관객은 30~50대로 집계됐는데 이들은 15년 전 ‘노풍’을 이끈 젊은 세대와 겹친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마음껏 표출하기 위해" 극장을 찾고 또 몇 번씩 재관람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보는 사람들의 누선(淚腺)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터뜨리는 이유는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이제 노무현에게 진정으로 고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직감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이 유례없이 성대하게 열리고 여기 참석한 문 대통령이 집권 기간 동안 다시 봉하마을을 찾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새 정부의 씨앗을 뿌린 노무현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전하고 싶은 지지자들이 극장에서 그를 떠나보내고 있는 것이다.


(전북 문화저널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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