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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홈커밍>은 스파이더맨이 마침내 마블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는 신고식이다. 귀한 자식 되찾아온 것을 반기듯 마블은 영화에 '홈커밍'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마블이 낳은 스파이더맨은 지난 15년간 소니의 품에서 자랐다. 마블은 9년 전부터 자사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슈퍼히어로 영화를 직접 만들어오고 있지만, 철모를 때 입양보낸 스파이더맨은 소니와의 영구계약 때문에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했다. 결국 의붓자식을 폼나게 키우는데 '어메이징'하게 실패한 소니가 양육권을 조건부로 넘기자마자 마블은 스파이더맨을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시켰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마블이 만든 스파이더맨 단독 주연의 첫 영화다. (스파이더맨 단독 영화의 배급은 계속해서 소니가 담당한다.)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과거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는 홀로 고군분투했다. 뉴욕 마천루 사이를 거미줄 타고 날아다니는 피터에겐 화려한 도시 소년의 고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말하던 삼촌 벤과 여자친구 그웬 등 그가 의지하던 사람들의 죽음은 그를 더 센티멘털한 영웅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피터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수다쟁이인 그에겐 단짝 친구가 있고, 짝사랑하는 여자도 있고, 함께 어울리는 다인종 과학영재들의 퀴즈 모임도 있다. 엄숙한 벤 삼촌 캐릭터는 삭제되고 그 역할은 유머러스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대신한다. 토니는 피터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그의 능력을 테스트하며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피터의 관심은 오직 어벤져스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어벤져스와 함께 일해본 그에겐 세상이 시시하다. 피터는 어벤져스 일원이 되기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다 내줄 기세로 적극 구애한다. 그는 자발적으로 동네 범죄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토니에게 잘 보이려 애쓴다. 그러나 '밀당'의 고수인 토니는 "슈트를 입으려면 자격을 갖추라"고 말하며 피터를 선뜻 어벤져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어른이 말할 땐 잘 들으라"며 그를 애 취급하기까지 한다.



타지를 떠돌다 돌아온 귀한 자식이 텃세 부리는 부유한 형에게 신고식을 당하는 이런 모양새가 기존 '스파이더맨'의 팬들에겐 아마도 달갑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언맨은 위기상황마다 보호자처럼 개입해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평가절하시키기까지 한다. 이럴거면 왜 스파이더맨 단독 캐릭터 영화가 필요한지 의문이지만, 마블에 왔으면 마블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것은 제아무리 마블 캐릭터 상품 판매량 1위인 스파이더맨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마블은 비장미로 개인기를 강조하는 영화보다 팀웍으로 가볍게 싸우는 영화를 선호한다. 스파이더맨은 소니에선 단독 히어로였지만 마블에선 수많은 히어로들 중 막내일 뿐이다. 따라서 막내 특유의, 어리광부리면서도 생존을 위해 경쟁심이 강한 성격적 속성이 스파이더맨 캐릭터에 이식됐다. 그나마 영화 막바지엔 성장을 통해 책임감을 깨달은 서민들의 영웅 피터가 억만장자 토니 앞에서 마냥 굽신거리지는 않으며 기존 팬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긴 한다.



어벤져스의 세계관으로 들어온 스파이더맨에게 눈에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슈트다. 업그레이드된 스파이더맨 의상은 기존 스파이더맨을 그저 쫄쫄이 의상을 입고 거미줄을 쏘던 재래식 영웅으로 격화시켜버린다. 새 슈트를 입은 피터는 지금까지 스파이더맨이 보여준 능력은 단지 초보 훈련모드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마디로 기존 다섯 편의 스파이더맨과 앞으로 나올 스파이더맨은 격이 다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슈트다.


인공지능과 첨단 무기로 무장한 새 슈트를 입은 스파이더맨의 능력은 마치 아이언맨을 닮았다. 거미 모양의 미니 드론을 띄워 정찰하고, 웹윙으로 가벼운 비행도 하며, 모니터를 통해 위치추적과 안면 인식, 신원 파악이 가능하다. 거미줄 발사에도 500여개가 넘는 옵션이 있고, 취조 모드, 전투 모드 등 상황에 맞는 빠른 최적화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기능을 음성 대화를 통해 조종할 수 있다. 인공지능 비서가 슈트의 막강한 기능 중 필요한 것을 추천해주고 피터는 상황에 맞춰 선택만 하면 된다.



그동안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고생해온 피터는 새 슈트에 당황하지만 곧 적응한다. 피터는 슈트가 귀로 전달하는 여성 목소리를 향해 "캐런이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물어보고 슈트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라고 답한다.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컴퓨터 OS '사만다'의 웨어러블 컴퓨터 버전이다. 과거 슈트가 단지 외형적으로 거미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새 슈트는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과 이를 컨트롤하는 두뇌까지 확장시켜준다.



마블로 돌아온 스파이더맨은 화려한 슈트를 차려입고 신고식을 치렀다. 캠코더를 들고 수다를 떠는 피터의 들뜬 모습은 낯설면서도 반갑다. 과거 외롭고 끼 많던 스파이더맨이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돈 못 벌어오는 영웅은 언제든 해지 가능한 계약직일 뿐이라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큰 돈 척척 벌어다주는 부유한 형제들과 함께 할 향후 시리즈에서 주눅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또하나의 캐릭터는 악당 '벌처'다. 마블코믹스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의 적이지만 공교롭게도 마이클 키튼이 연기하는 바람에 <버드맨>을 연상시킨다. 키튼은 <버드맨>에서 추락한 가상의 슈퍼히어로를 연기했는데 날개 달고 떠오르는 모습이 강렬했다. 한때 화려한 과거를 지닌 한물간 중년 슈퍼히어로의 귀환이라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또하나의 '홈커밍'이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

화려한 귀환 신고식. 가볍고 신나지만 왠지 허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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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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