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켈리 레이차트 감독의 <웬디와 루시>는 가난한 여자 웬디와 개 루시의 이야기입니다. 2008년작인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불분명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로 유추해볼 때 금융위기 당시가 아닐까 합니다. 집도 전화도 없는 웬디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알라스카로 향하던 중 북서부 오레건 주의 작은 마을에서 차와 개를 잃고 완전한 빈털털이가 됩니다.


레이차트의 페르소나인 미셸 윌리엄스가 웬디를 연기하는데 가난의 고통을 차분하게 헤쳐나가는 모습과 공허한 표정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레이차트와 윌리엄스는 이 영화로 시작해 <믹의 지름길>(2010), <어떤 여자들>(2016) 등 서부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영화 <웬디와 루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웬디(미셸 윌리엄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개 루시와 산 속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루시가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찾고 보니 루시는 산 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있군요. 그들은 모두 직장을 잃고 일거리를 찾아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입니다. 웬디도 사정이 비슷해서 일거리를 찾아 머나먼 알라스카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알라스카로 가면 양식장에서 일거리를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웬디는 그것을 받아 적습니다.



웬디는 북서쪽으로 가던 중 차 안에서 잠들었다가 경비원(윌리 달튼)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납니다. 경비원은 사유지이니 차를 빼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웬디는 차를 밀어서 겨우 밖으로 빼냅니다. 사유지와 사유지가 아닌 곳은 영화 후반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루시 역시 사유지에 갇혀 있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거든요.


웬디는 차를 고치기 위해 정비소로 가지만 문이 닫혀 있습니다. 마침 개 사료도 떨어져서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식료품점으로 갑니다. 하지만 알라스카까지 가기에도 돈이 부족한 웬디는 음식을 사는 대신 훔칩니다. 운이 좋을 뻔도 했는데 점원 앤디(존 로빈슨)에게 딱 걸립니다. 경찰차 뒷좌석에 앉은 웬디는 식료품점 앞에 묶어둔 루시가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경찰서에서 진술을 한 뒤 버스를 타고 식료품점 앞으로 돌아온 웬디는 루시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 첫 장면에 이어 또 개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제 영화는 웬디가 루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마치 찰스 디킨스 소설처럼, 혹은 '플란더스의 개'처럼 영화는 가난이 소재이자 주제입니다. 웬디는 유기견 보호소를 전전하고, 산 속에서 쪽잠을 잡니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이 작고 평범한 마을에서 차와 개를 잃은 웬디는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무엇이 그를 멈추게 한 걸까요? 과연 그는 루시를 다시 찾아 알라스카로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많은 영화들이 가난을 묘사합니다. 가난은 질병과 함께 정서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이니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영화는 신파적인 정서로 가난을 묘사합니다. 가난을 곧 차별, 불쌍함, 눈물, 설움 등의 정서로 연결시킵니다. 하지만 <웬디와 루시>는 가난을 가장 가난한 방법으로, 또 세심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어쩌면 그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눈부신 장점이기도 합니다.


웬디는 직업은커녕 집도, 전화도 없는 여성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복대에 싸맨 꼬깃한 지폐 몇 장과 차와 개가 전부입니다. 웬디는 차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의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가난을 보여줍니다. 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빈 캔을 주워 작은 돈을 법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고 속옷을 갈아 입습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그 노래는 대형 마트에서 흘러나오는 BGM입니다. 이는 그가 마트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차가 멈춰선 그날,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발각되는 바람에 그의 일상은 변합니다.



영화는 관조합니다. 웬디의 사소한 행동도 길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가 가난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그의 삶은 느립니다. 가난하면 빠르기 힘듭니다. 잠 잘 곳을 알아보고 씻을 곳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릴 뿐더러 고장난 차를 견인하기 위해서도 협상해야 하며, 관공서 등의 행정 절차에서도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닙니다. 웬디가 쿠션을 들고 다니며 아무 데서나 잠자고 화장실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경찰서로 끌려간 뒤, 또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간 뒤에도 영화는 호들갑 떨지 않고 차분히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줍니다.


경찰서에 도착한 웬디는 범죄자용 사진을 찍고 지문을 스캔합니다. 한 경찰관은 지문 찍는 기계가 망가졌다며 한숨을 쉬고 서무 담당자는 50달러를 내면 갈 수 있다고 사무적으로 말합니다. 현금이 없으면 신용카드도 받는다고 덧붙입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도 카메라는 트래킹 숏으로 유기견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비춥니다. 그들은 모두 버려진 신세입니다. 웬디와 개들의 신세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들에겐 쉴 곳이 생겼군요.


문닫은 정비소를 한참 동안 들락거린 웬디가 마침내 정비사를 만날 때도 영화는 정비사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장면을 굳이 길게 보여줍니다. 차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던 웬디는 정비사가 다른 전화를 받는 바람에 멈춰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웬디의 일상입니다. 같은 일도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가난입니다. 그의 편은 없습니다. 아니, 그런 진부한 선과 악의 이야기이기 전에 가난은 곧 일상에서 찾아오는 불편함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웬디의 가난이 그녀 스스로 잘못해서 생긴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웬디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서로 왜 가난하게 됐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저 일자리를 찾아 어디론가 떠날 뿐입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직업인 경비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들 무슨 일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어."


삶이 힘들어도 웬디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영화에는 웬디의 가족을 암시하는 장면이 딱 한 번 나오는데 그가 형부와 통화할 때입니다. 하지만 형부는 언니의 눈치를 보며 웬디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신도 먹고 살기 바빠서 챙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다들 팍팍하고 살기 힘든 시대인 것입니다. 동생이든 누구든 호의를 베풀기 힘든 그런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디는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습니다. 그는 힘들 때마다 화장실로 들어가서 몸을 닦습니다. 세수를 하고 나면 정신이 듭니다. 절망스럽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유기견 보호소에 전화를 하고 또 정비소를 찾아갑니다. 루시를 찾고, 차를 고쳐 알라스카로 가야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요. 알라스카는 흔히 척박한 땅으로 알려져 있지만 웬디에게만은 마음 속 낙원입니다.


식료품점 점원 앤디는 웬디가 좀도둑질 하는 것을 잡은 뒤 점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규칙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이는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대사일 것입니다. 웬디를 가난하게 만든 것은 이런 식의 기계적 공정함이 쌓인 결과일 테니까요. 기계적 공정함은 웬디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사유지에서 쫓아내고, 빈 캔 환불을 위한 긴 줄 서기를 포기하게 만들고, 폐차와 돈 많이 드는 수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합니다.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에게 가장 잔인한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만큼이나 이를 정당화하는 레토릭이 아닐까 싶습니다.


켈리 레이차트 감독


웬디를 미약하게나마 도와주는 유일한 사람은 경비원입니다. 12시간 동안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직업인 그는 웬디에게 집 같은 존재가 되어 줍니다. "집 주소나 전화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 나는 어차피 여기 있잖아. 필요하면 내 전화번호를 써도 돼."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호의지만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대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떠나가기 전에도 웬디를 찾아와 꼬깃꼬깃한 1달러짜리 지폐 2장과 5달러 지폐 1장을 쥐어줍니다. 가난을 알아보는 사람은 역시 가난한 사람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웬디는 차와 루시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지만 찾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가난은 이처럼 선택의 순간에도 망설이게 합니다. 웬디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둘을 포기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쿠션과 담요와 배낭만을 들고 길을 떠납니다. 그는 기차 화물칸에 올라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마지막 장면은 오랫동안 잔상을 남깁니다. 웬디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웬디와 루시 ★★★★☆

멈춰 서니 더 잘 보이는 가난. 세심하고 사려깊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