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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선의 이름은 아폴로 11호입니다. ‘아폴로’는 ‘머큐리’, ‘제미니’에 뒤이은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젝트명이고, ‘11호’는 11번째로 발사한 로켓이라는 뜻인데요. 이름에서 보듯 아폴로 11호의 놀라운 성과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전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그 과정에 숨겨졌던 세 명의 작은 영웅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1960년대 초입니다. 당시 NASA에선 우주선을 지구 궤도 밖으로 보내기 위한 머큐리 프로젝트가 한창이었죠. 수학 천재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NASA에서 단순 계산 작업만 해야 했던 캐서린 존슨, 메리 잭슨, 도로시 본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단단한 고정관념의 벽을 뚫고 원하는 것을 하나씩 쟁취해 나아갑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한 획기적 아이디어가 요즘엔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이라며 칭송받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세 흑인 여성의 도전 역시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을 뛰어넘는 대범한 생각이라는 의미에서 또 다른 ‘문샷 싱킹’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숨겨진 영웅은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영화 속 세 장면을 통해 이들의 방식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직장생활에서 현실의 벽에 부딪힌 당신에게 도움이 되어줄 것입니다.
#1 캐서린 존슨, 화장실 차별에 분노를 표출하다
계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은 알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이 이끄는 스페이스 태스크 그룹에 계산원으로 합류합니다. 백인 남성들로 가득 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존슨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 지경이죠. 그녀는 긴장을 풀기 위해 화장실에 가려 하는데 건물 내 화장실에는 모두 백인용 간판이 붙어 있네요. 할 수 없이 존슨은 흑인용 화장실을 찾아 800미터를 달려갑니다.
1960년대 초 미국에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인종차별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백인 남성용, 백인 여성용, 유색인 남성용, 유색인 여성용으로 구분돼 있었고, 버스에도 백인 좌석과 흑인 좌석이 따로 있고, 도서관도 백인용과 유색인용이 따로 있어 흑인은 정해진 책 외에는 공부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요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아니라, 그야말로 ‘콘크리트 천장’이었습니다.
매일 한참 동안 자리를 비우는 존슨을 해리슨은 탐탁찮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만은 높이 사 백인 남성 부하직원보다 존슨을 더 자주 부르죠. 어느 날 존슨은 또 장시간 자리를 비우고 이에 근무 태만이라고 여긴 해리슨은 그녀를 공개적으로 꾸짖습니다. 그러자 존슨은 그동안 참아왔던 화장실 사용에 대한 불만을 온 직원 앞에 토해냅니다. 존슨의 이유 있는 분노에 공감한 해리슨은 스스로 앞장서서 건물 내의 ‘백인용’이라고 적힌 화장실 간판을 부숴버리는데 이 장면은 무척 통쾌하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첫 걸음은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제기가 합당하다면 공론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나는 우군을 얻게 되겠지요.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존슨처럼 그 조직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입니다.
#2 메리 잭슨, 재판장을 설득하기 위해 법정에 나서다
메리 잭슨(자넬 모네)의 꿈은 엔지니어입니다. 하지만 NASA에 흑인 여성 엔지니어는 전례가 없습니다. 엔지니어에 지원하기 위해선 백인 고등학교의 물리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인종차별이 심한 버지니아 주는 흑인의 백인학교 등록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 길이 원천봉쇄 돼 있는 것이죠.
동료들은 잭슨에게 포기하라고 말하지만 잭슨은 꿈을 꺾지 않습니다. 그녀는 버지니아 주 법원에 소송을 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녀는 재판관 앞에 나아가 이렇게 설득합니다.
"판사님이 오늘 맡은 사건 중 100년 후 이 나라를 바꿀 결정이 있습니다. 판사님이 결정하면 저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될 수 있습니다. 판사님의 이름 역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최초로 남을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잭슨의 말투는 부드럽지만 단호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시할 때 이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지를 함께 설명함으로써 ‘윈윈’하자고 설득합니다. 차별받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상대방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한 것이죠.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승리하는 이 방식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합니다. 결국 그녀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상대방을 설득해야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잭슨의 이 방식을 응용해보면 어떨까요?
#3 도로시 본, IBM 컴퓨터실로 몰래 잠입하다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은 매니저가 되고 싶어 합니다. 흑인 여성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워 맏언니 역할을 하는 그녀는 정식으로 NASA의 관리자 직함을 받고 싶지만 상부에선 석연치 않은 이유로 계속해서 승진을 누락시킵니다.
1962년 IBM이 만든 세계 최초의 컴퓨터가 NASA에 들어옵니다. 해리슨은 컴퓨터가 업무 효율을 높여줄 거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이 기계를 본 적도 없고 써본 적은 더더욱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IBM 직원조차 사용법을 몰라 쩔쩔 맬 정도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황당하죠? 방 하나를 다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컴퓨터는 그대로 방치됩니다.
본은 이 기계가 언젠가 자신이 관리하는 흑인 여성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리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그녀는 직원들과 함께 몰래 컴퓨터실에 잠입해 작동 방법을 익히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해리슨은 컴퓨터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책임자를 물색합니다. 이때 짠~ 하고 본이 나섭니다. 본은 자신을 컴퓨터실의 관리자로 채용하는 조건으로 다른 흑인 여성들도 이전시켜달라고 요구합니다. 결국 그녀는 한 팀으로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관리자 직에 오릅니다.
본이 컴퓨터라는 거대한 기계를 본 순간, 그녀는 미래가 도착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느낌으로 파악하고 만 것이 아니라 그녀는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아무도 컴퓨터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 본은 과감하게 새로운 기계를 공부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차별의 벽에 꽉 막혀 있는 기존의 승진 루트가 아닌 전혀 새로운 길을 뚫을 수 있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길은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니라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주위를 잘 둘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SK하이닉스 하이라이트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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