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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을 맞은 올해 당시 시대상황을 그린 영화들이 쏟아질 예정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장훈 감독,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다룬 장준환 감독, 하정우 주연의 <1987> 등이 기대작으로 꼽히는 가운데 <보통사람>이 22일 개봉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잔잔한 가족 코미디 <히어로>(2013)를 만든 김봉한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이자 스릴러 애호가 손현주가 주연을 맡은 첫 시대극인 <보통사람>은 당시 노태우 후보가 대선 구호로 썼던 '보통사람'을 반어법으로 차용해 1987년을 '보통사람이 되기 힘든 보통사람의 시대'로 정의한다.
영화는 청각장애인 아내와 다리가 아픈 아들과 함께 평범하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형사 강성진(손현주)이 동네에서 수상한 남자 김태성(조달환)을 우연히 검거하면서 시작한다. 마침 안기부 실장 최규남(장혁)은 어수선한 시국에서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가짜 연쇄살인 사건을 만들어낼 계획을 꾸미고 있었고 이 일을 맡아줄 수족으로 성진을 택해 남산으로 부른다. 안기부의 기세에 눌린 성진은 아들을 수술시켜주겠다는 제안에 태성을 연쇄살인범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한다. 하지만 성진과 호형호제 하는 사이인 민완기자 추재진(김상호)이 조작 사건의 증거를 확보하면서 안기부가 그를 쫓고 성진은 아들과 재진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영화는 보통사람을 대변하는 성진과 전두환 정권의 앞잡이 규남이라는 가상의 인물 간 대결로 치열했던 1987년을 규정한다. 성진은 의식화된 대학생도 아니고, 정의감 투철한 애국투사도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시키는 대로 범인 잡는 공무원이다. 그는 귀한 바나나를 껍질까지 긁어 먹고, 아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에 눈감을 정도로 소심하고 평범한 가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보통사람을 시대의 공범으로 만든다. 성진은 처음엔 권력의 개가 되지만 나중엔 주인을 물어버리기로 결심한다.
영화에는 실제로 개가 세 번 등장해 성진의 심정을 대변해준다. 경찰서 앞을 지키는 개는 영화 초반엔 성진을 향해 짖어대지만 이후 성진이 안기부에 불려가 접대를 받은 뒤 다시 경찰서로 돌아올 땐 그를 알아보고 짖지 않는다. 나중에 재진이 실종된 뒤 방황하던 성진은 동료들이 복날 개를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고는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며 이렇게 외친다. "이제 여긴 누가 지켜!" 매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했던 개에 자신을 감정이입한 성진은 개의 죽음을 보며 보통사람이 보통사람으로 살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처럼 영화는 세련된 방식보다는 단순하고 투박한 상징으로 1987년을 묘사한다. 개를 통한 성진의 심리묘사와 더불어 규남이 즐겨 찾는 요정과 성진의 단골 소주집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라미란이 연기한 성진의 아내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청각장애인으로 설정돼 영화는 작정하고 철권통치 시대에 말을 잃은 소시민을 담겠다는 암시를 준다.
보통사람의 이야기니만큼 감독은 그 시절을 정교하게 묘사하는데 공을 들인다. 형사 버전으로 '응답하라 1987'을 만든다면 딱 이 영화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당시 시대상황을 꼼꼼하게 고증하는데 부족한 제작비 때문인지 스케일을 강조하기보다는 효율성에 기댄다. 우선 남산타워, 서울시청, 광화문 뒤 중앙청, 남산 안기부 등 당시 현대사의 굵직한 건물들을 컴퓨터그래픽과 세트로 재현하고, 지프카, 라이방, 운동화, 이발소 간판 등을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해 주목도를 높인다. 여기에 전두환이 호헌조치를 발표하는 뉴스화면과 두루마리 휴지를 던지며 6월 항쟁이 시작되는 장면은 실제 역사를 떠올리게 해 허구의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는다.
<보통사람>은 모두가 알고 있는 1987년을 소시민과 폭력권력의 대결로 도식화해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영화다. 스릴러와 복수극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당시를 살아온 관객이라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반가웠던 지점은 성진의 울분이 여느 영화들처럼 사적 복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이야기로 확장한다는 데 있었다. 성진은 분노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경찰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규남을 경찰서로 불러들여 추궁한다. 개인적인 억울함을 역사의 심판에 맡긴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들의 30년 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사족이 아니라 1987년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행복의 나라'는 그래서 더 아련하게 들린다.
PS) 영화는 원래 '공조'라는 제목으로 1970년대 김대두 연쇄살인사건을 다룰 예정이었으나 제작과정에서 배경을 1987년으로 바꾸고 김대두 사건은 모티프만 가져왔다.
보통사람 ★★★☆
30년전 보통사람의 꿈 아직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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