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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론이냐 뒤집기냐. ‘친LA’냐 ‘친문’이냐 혹은 제3지대의 숨겨진 후보냐.
대선이 아니다. 바다 건너 아카데미상 이야기다. '친LA'는 라라랜드파, '친문'은 문라이트파.
어쩌면 올해 아카데미 트로피의 주인은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LA 찬가 <라라랜드>가 14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일찌감치 대세론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라이트>도 만만치 않다. 연말 연초 152개의 크고 작은 트로피를 휩쓸며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여기에 최근 떠오르는 제3의 숨겨진 후보로 <히든 피겨스>가 있다. 우주비행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인종차별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새 역사를 쓴 세 명의 흑인 여성을 조명한 영화다.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사랑하는 실화 기반의 휴먼드라마로 최근 미국에서 '라라랜드' 흥행 기록을 깰 정도로 관객 평가도 좋다. 그야말로 바닥 팬심을 다지며 급부상 중인 '잠룡'이다.
누가 금빛 트로피를 거머쥐게 될까. 미국의 영화 사이트 로튼토마토는 최근 영화평론가 150명을 설문조사했다. 이 글에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수상자를 예측해봤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26일(현지시간) LA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라라랜드 vs 문라이트
작품상 - 라라랜드 vs 문라이트
할리우드의 꿈을 향한 도전을 담은 뮤지컬 <라라랜드>, 흑인 소년의 성장과정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써내려간 시 <문라이트>. 미국 평론가들의 예측은 <라라랜드> 67%, <문라이트> 11% 비중으로 <라라랜드>가 압도적이다.
만약 이변이 발생한다면, 유리천장을 깬 흑인 여성의 투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히든 피겨스>, 가족을 잃은 고통을 찬찬히 응시하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금융위기 시대의 서부극 <로스트 인 더스트> 중 한 편일 가능성이 높다.
신선하고 진지한 SF <컨택트>, 종교적인 전쟁영화 <핵소 고지>, 인도 소년의 감동실화 <라이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흑인 버전 <펜시즈>도 놓치기 아쉬운 수작이다.
필자의 예측은 <라라랜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할리우드는 자신들의 꿈을 선택하지 않을까.
케이시 애플렉 vs 덴젤 워싱턴
남우주연상 - 케이시 애플렉 vs 덴젤 워싱턴
미국 평론가들의 선택은 케이시 애플렉 65%, 덴젤 워싱턴 18%로 애플렉에 무게가 쏠려 있다.
두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애플렉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뒤 황폐해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남자 리를 연기했다. 겉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지만 그는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맞아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해나간다.
반면 <펜시즈>의 덴젤 워싱턴이 연기한 트로이는 쉴새없이 말을 쏟아내는 남자다. 어릴적 야구선수의 꿈을 흑인이라는 이유로 접어야 했던 그는 자신의 좌절을 반복해 이야기하는데 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퓰리처상을 받은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워싱턴은 2010년 트로이 역할로 토니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두 배우의 연기에 비해 <라라랜드>의 로맨틱 뮤지션 라이언 고슬링, <캡틴 판타스틱>에서 자본주에 저항하는 무정부주의 아빠 비고 모르텐슨, <핵소 고지>의 외유내강형 군인 앤드류 가필드는 다소 무게감이 약해 보인다.
필자의 예측은 케이시 애플렉. 그는 비록 영화 촬영 중 여성 스태프 성추행 논란으로 이미지가 실추되긴 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고통스러운 심정이 전달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엠마 스톤 vs 나탈리 포트만
여우주연상 - 엠마 스톤 vs 나탈리 포트만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은 아마 지금쯤 수상소감을 연습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미아 역으로 이미 수많은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집으로 가져갔고 오스카 역시 가장 유력한 후보다.
하지만 미국 평론가들의 선택은 나탈리 포트만 39%, 엠마 스톤 29%로 오히려 포트만이 더 높다. 그는 <재키>에서 케네디 암살 당일 패닉 속에서도 용기 있게 장례식 절차를 진행한 34살의 영부인 재키를 연기했다. 포트만은 2011년 <블랙스완>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적 있어 이번에 수상하면 6년만의 영예가 된다.
유력 후보로 두 배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믿고 보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메릴 스트리프는 언제나 수상 1순위다. <엘르>에서 위페르가 맡은 배역은 무려 사이코패스 킬러의 딸이다. 그는 무표정함 속에 잔혹한 인생사를 조금씩 드러내는 믿기 힘든 연기를 펼쳐보였다. <플로렌스>에서 스트리프의 연기는 독보적이다. 배우 한 명이 영화를 어떻게 휘어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판 원작에서 느낄 수 없던 주인공의 외로운 감정까지 절절하게 묻어난다. 다만 그는 아카데미에서 이미 20번 후보 지명돼 3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적 있기에 이번엔 후배들에게 더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필자의 예측은 엠마 스톤. 오디션에서 온몸을 다해 노래를 열창하는 장면만으로도 ‘인생 연기’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만약 이번에 받지 못하면 그녀에게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른다.
데이미언 셔젤 vs 배리 젱킨스
감독상 - 데이미언 셔젤 vs 배리 젱킨스
감독상은 작품상과 마찬가지로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과 <문라이트>의 배리 젱킨스 양강구도다. 유태인과 흑인으로 두 사람의 정체성은 다르지만 모두 30대의 젊은 감독으로 이번 영화가 두 번째 장편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평론가들의 선택은 데이미언 셔젤 52%, 배리 젱킨스 22%로 셔젤이 우세하다.
최근 아카데미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서로 다른 영화에 주고 있지만 이 법칙이 매번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2015년 <버드맨>은 예상을 깨고 두 상을 동시에 가져갔다.
양강 구도를 깰 다크호스로는 <컨택트>의 드니 빌뇌브가 꼽힌다.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봤던 원작 소설을 직관적인 비주얼과 영리한 스토리 구조로 완성했다. 그가 왜 최근 가장 재능 있는 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지를 알게 해준 작품이다.
필자의 예측은 데이미언 셔젤. <위플래쉬>에 이어 <라라랜드>까지 그는 최근 미국 감독 중 가장 에너지 넘친다.
마허샬라 알리 vs 제프 브리지스
남우조연상 - 마허샬라 알리 vs 제프 브리지스
<문라이트>에서 어린 샤이론을 돌봐주는 키다리 아저씨 후안 역할의 마허샬라 알리,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은퇴를 앞두고 은행강도 사건을 추적하는 베테랑 보안관 해밀턴 역의 제프 브리지스,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시한부인생으로 죽음을 앞두고 전력을 다해 범인을 쫓는 경찰 바비 역의 마이클 섀넌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미국 평론가들의 선택은 마허샬라 알리 55%, 제프 브리지스 12%로 알리의 압도적인 우세다. 그는 <히든 피겨스>에서도 매력적인 중년 군인으로 등장하는데 43세의 나이에 데뷔 9년차인 이 흑인 배우를 앞으로 더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필자의 예측 역시 알리. 그에겐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운 면이 있다.
비올라 데이비스 vs 미셸 윌리암스
여우조연상 - 비올라 데이비스 vs 미셸 윌리암스
미국 평론가들의 선택은 <펜시즈>의 비올라 데이비스 52%,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미셸 윌리암스 23%로 데이비스가 우세하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가 맡은 배역은 모두 주인공의 아내다. 데이비스는 집에 펜스를 치는 덴젤 워싱턴의 아내 로즈 역, 윌리암스는 케이시 애플렉의 전처 랜디 역으로 영화 후반부에 쌓아둔 감정을 쏟아내며 오열하는 연기가 압권이다.
<문라이트>에서 마약 중독자 엄마 역을 맡은 나오미 해리스도 깜짝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라이언>의 니콜 키드먼과 <히든 피겨스>의 옥타비아 스펜서는 이름값에 비해 배역의 임팩트가 약하다.
필자의 예측 역시 비올라 데이비스. <펜시즈>의 유일한 트로피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남녀조연상 시상은 초반에 이뤄지기 때문에 만약 마허샬라 알리와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모두 수상한다면 이후 흑인 영화 쪽으로 분위기가 확 쏠릴 수도 있다.
라라랜드 vs 문라이트
각본상 - 라라랜드, 각색상 - 문라이트
역대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작은 대부분 각본상 혹은 각색상을 받아왔다. 그만큼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영화의 스토리를 중시한다. 이번에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면 각본상은 <라라랜드>, 각색상은 <문라이트>가 가져갈 확률이 높다. 만약 시상식 초반 둘 중 한 작품이 수상을 놓친다면 이후 시상식은 어쩌면 긴장하며 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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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그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메릴 스트리프의 트럼프 비판 발언이 내내 화제였다. 트럼프는 아랑곳 않고 반이민정책을 내놓으며 강경 일변도다.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세일즈맨>의 이란의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시상식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비슷한 수상소감이 줄을 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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