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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앞둔 어느날, ‘왕따’인 11살 소녀 이선(최수인)은 전학생 한지아(설혜인)를 만난다. 둘은 단짝 친구가 돼 즐거운 방학을 보낸다. 그러나 개학 후 보라(이서연)와 친해진 지아는 선이를 멀리한다. 선이는 지아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선이 왕따인 것을 알게 된 지아는 선이 불편하기만 하다.
11살 소녀들의 이야기인 ‘우리들’은 편견, 두려움, 용기에 관한 영화다. 친구를 만들고 싶지만 관계 맺는데 서툰 선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로 왕따가 되어 있다. 집안이 부유하지 않은 그는 보라를 중심으로 한 무리에 섞이지 못하다가 배척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옛 학교에서 왕따였던 지아는 선이가 학교에서 왕따였다는 것을 몰랐을 땐 스스럼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보라를 통해 선이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 지아는 행동이 달라진다. 자신 역시 또다시 왕따가 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에 스스로 문을 걸어잠근다.
영화는 이대로 끝날 수도 있었다. 선이는 계속해서 ‘왕따’로 11살을 통과하고 5학년이 되면서 선이, 지아, 보라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이들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게 우리들 인생 아니던가.
하지만 감독은 마지막에 용기를 낸다. 이 영화의 ‘심스틸러’인 선이의 동생 이윤(강민준)을 통해서다. 허구헌날 친구에게 맞고 다니면서도 실실 웃는 윤이에게 선이는 너도 때려야지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자 윤이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때리기만 하면 언제 놀아? 나는 같이 놀고 싶은데.”
인간은 화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우리들/너희들 이렇게 구분하면서 살아도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나이 든다. 하지만 누군가 용기 내어 먼저 손 내미는 순간, 인생은 더 풍요로워진다.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선이 동생 윤이도 안다. 선이도 이제 그걸 알게 됐고 그래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지아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민다.
영화는 편가르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피구 장면을 앞뒤로 배치하는데 마지막 장면의 피구는 처음과 다르다. 처음엔 선이 혼자 고립됐지만 이젠 지아도 함께다. 아이들이 지아를 밀어내려는 순간 선이가 용기를 낸다.
“내가 봤는데 지아가 금 안 밟았어.”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야만 희망의 빛이 보인다. 어쩌면 판타지적인 결말이지만 꽉 막힌 현실에선 판타지야말로 꼭 필요하다. 아직 아이들이기에 가능하다고? 어른들에게는 모두 아이가 들어 있다. 아이가 아니었던 어른은 없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작은 울림을 주는 멋진 마무리다.
돈, 나이, 이념, 성별, 계급, 인종, 학교, 직업에 따라 갖게 되는 편견. 구체적으로는 노인, 동성애자, 장애인, 범죄자, 정신질환자, 가난한 자, 부자 등등. 이처럼 사회는 편견 덩어리다. 우리가 모두 서로 다르고 그 차이가 점점 커지면서 편견의 위험은 우리 주위에 항상 잠재돼 있다. 오죽하면 독일의 교육철학자 프레데릭 마이어는 편견을 ‘인류의 재앙’이라고 했을까.
편견은 비이성적 사고를 하게 하고, 획일성을 강요해 다른 의견에 침묵하게 하며, 권위의식을 강화해 개방성과 관용성이 설 자리를 무너뜨린다. 또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줘 세상을 적자생존의 장으로 만들며 그 결과 사람들을 일렬로 줄세운다. 질서, 청결, 법치주의, 의무감 등을 유난히 강조하는 자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인류의 진보와 문명의 적이다.
영화 ‘우리들’은 편견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인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공을 맞은 사람(피해자)이 반대편으로 넘어가서 공을 던지는(가해자가 되는) 피구라는 경기는 편견이 어떻게 꼬리를 물고 전염되고 순환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다. 편견이 자리잡기 전, 선이와 지아가 함께 찬 커플 팔찌는 이들이 편견의 늪에서 빠져나올 마지막 보루다.
선이가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과 매니큐어는 서로 섞이지 못하다가 결국 손톱이 자라고서야 모두 사라진다. 봉숭아물이든 매니큐어든 편견없는 새로운 만남이 시작될 시간은 이처럼 모든 투쟁이 끝난 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우리들 ★★★★
편견을 부수는 것은 언제나 용기.
PS)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세 소녀들의 섬세한 연기 앙상블에 박수를 보낸다.
세 배우의 놀라운 연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는 윤가은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어 링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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