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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가장 이해하기 쉽고, 희망 가득한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농도 짙은 동성애 묘사나 사도마조히즘적인 장면들은 관객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박찬욱은 늘 그런 식이었다. 어떤 묘사도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항상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해왔다.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려면 총, 칼 대신 꼭 망치나 펜치를 들었고, 인간 존재를 탐구하려면 죽지 않는 흡혈귀를 등장시켰다.


그는 이번엔 억압받는 여성의 해방을 그리기 위해 레즈비언 섹스를 화면에 담고 파렴치한 남성들과 대비시켰다. 그가 30~40대에 만든 영화들에 폭력적인 묘사가 많았다면 50대가 넘어선 그의 영화들엔 점점 성에 대한 묘사가 늘어가고 있다. 오시마 나기사, 로만 폴란스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 대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가난한 사기꾼인 숙희(김태리)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부잣집의 하녀로 들어간다. 그녀는 백작(하정우)과 짜고 상속녀인 히데코(김민희)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유산을 가로챌 음모를 꾸미고 있다. 영화는 원작소설인 새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처럼 3부로 나뉘어 1부는 하녀의 관점, 2부는 아가씨의 관점, 3부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일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원작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따라가던 영화는 그러나 2부와 3부에선 전혀 다른 길을 간다. 원작에서 반전의 키를 쥔 여성을 거의 지워버린 대신 남성에게 억압받는 여성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여성끼리 싸우다가 파국을 맞는 유사한 스릴러들의 흐름을 깨고 영화는 2부에서 지금까지 이야기를 뒤집으며 남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린 히데코(조은형)와 이모(문소리)가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앞에서 책을 읽을 땐 그전까지 고상한 취미라고 여겨졌던 이모부의 책 수집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는지 단박에 드러난다. 이 장면엔 한정된 공간에서 고리타분한 틀을 섬세한 터치로 깨뜨리는 박찬욱 감독의 특기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흐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헐거워진 1부와 2부의 틈새는 복선 가득한 대사들이 메운다. "밤만 되면 생각나는 얼굴", "시체와의 교접" 등 똑같은 대사의 의미들이 2부에선 다르게 해석된다. 1부에서 쑥맥인 히데코는 2부에선 성에 통달해 있다. 이는 남자들이 여자에 대해 갖고 있는 두 가지 편견 즉,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처녀 혹은 창녀라는 오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3부에서 이 편견들을 깨뜨리며 여성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찾아 떠난다.



<아가씨>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겉과 속이 다른 '남근주의자'들이다. 영화 속 남자들은 변절해 돈을 좇거나 밀실에 틀어박혀 춘화에 탐닉하는 변태 성욕에 빠져 있다. 요즘 한국사회에 대입하면 이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여성 혐오자들'이다. 남자들에게 짓눌린 여자들은 미쳤거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간다. 우연치 않게 만난 두 여성이 연대를 통해 남자들의 세상(춘화로 상징되는)을 찢어발기고 이들을 벗어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동성애를 그린 영화라는 점에서 <아가씨>는 파격적인 레즈비언 섹스 장면이 등장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두 여성의 감정선을 섬세한 터치로 따라간 <캐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두 영화 속 여성들과 달리 <아가씨>의 두 주인공은 남성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 이들은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그저 서로의 몸을 미숙하게 탐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두 여성의 베드신은 성적 긴장감이 넘친다기보다는 이제 막 시작하는 커플의 수줍은 설렘이 더 많이 묻어 있어서 귀엽고 사랑스럽다. 두 여성의 살이 부딪칠 때 농염함보다 친밀함이 더 강조되는데 이는 영화가 변태적인 남성들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여성을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일본영화 <감각의 제국>(1976)을 떠올리게 하는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군인들이 화면을 가로질러 가고 아이들이 뒤따른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이 작품은 섹스에 탐닉해 남성 성기를 자르는 여성을 통해 군국주의를 비판한 문제작이었다. 박 감독은 남자들의 성기를 자르지는 않지만 이와 유사한 행위(손가락을 자르는!)를 함으로서 이 영화를 은유한다. 이를 통해 감독은 <아가씨>가 노리는 지점이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여성들의 통쾌한 복수임을 드러낸다.



<아가씨>는 음담패설 가득한 대사들의 상찬이지만 한국어와 일본어 문장이 기막히게 뒤섞여 음담패설마저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어부 아내의 꿈' 등 우키요에 슌가(춘화)들이 등장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본과 영국풍을 조화시킨 저택 외관과 세트 미술은 어쩌면 천박해보일 수도 있었던 이 영화를 우아하게 이끌고 가는 힘이다. "단 한 끼를 먹더라도 가격표 보지 않고 최고급 포도주를 곁들여 먹겠다"는 백작의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 박찬욱 감독은 항상 아름다운 미장센에 집착해 왔고, 이 영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가씨 ★★★★

가격표 보지 않고 차린 최고급 음담패설의 상찬.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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