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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과 기차의 고장인 전남 곡성이 공포영화의 무대로 돌변했다. 11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세번째 영화 <곡성>에서다. 밀양, 파주, 해운대, 부산, 이리, 여의도 등 지금까지 실존 지명을 제목으로 한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공포영화의 무대로 사용한 것은 <곡성>이 처음이다. 초자연적인 이 영화의 소재를 감안할 때 실존 지명(현재 전남 곡성은 谷城이지만 고려시대 때는 영화 제목과 같은 哭聲으로 쓰였다)을 제목으로 택한 전략은 꽤 효과적이어서 관객은 곡성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기괴한 사건을 교차편집한 영화 속으로 빨려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2시간 36분을 내달리는 힘


‘교차편집을 통한 아이러니’는 <곡성>이 2시간 36분의 긴 러닝타임을 단숨에 내달리는 힘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서 영화는 계속해서 관객의 머리에 충격을 가한다. 토속신앙과 기독교 신부를 번갈아 보여주고, 한국인의 굿과 일본인의 샤머니즘을 교차해 보여주며, 무당이 기거하는 집과 현대과학의 병원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발생한 아이러니는 영화를 이끌고 가는 추진력으로 작용한다.


아름다운 시골마을에 연속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아이러니, 눈에 보이는 독버섯이 아닌 외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마을 주민을 미치게 만든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 병원의 현대과학보다 무당이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무당과 귀신이 서로 자신을 믿으라고 설득하는 아이러니, 악마를 잡으러 간 신부가 스스로의 믿음을 의심받는 아이러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이러니… 영화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아버지가 딸을 지키려는 마음뿐이지만 경찰이면서도 여느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계속해서 믿음이 흔들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나약한 주인공을 교차편집이라는 강력한 추진체에 태워 숨가쁘게 내달리면서 스토리는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이니만큼 가급적 스포일러를 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의 스토리를 좀 더 살펴보자. (그러나 보는 사람에 따라 스포일러라고 느낄 만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반전을 거듭하는 변종 스릴러


곡성의 한적한 마을에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이나 피해자들은 모두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고 있다. 뉴스에선 독버섯이 정신병 증세를 유발한다는 보도가 한창이다. 시골마을의 어수룩한 경찰 종구는 연이어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그는 저수지에 갔다가 낚시를 하고 있는 중년의 일본 남자(쿠니무라 준)를 발견한다. 가뜩이나 흉흉한 마을에선 이 남자가 부녀자를 강간했다느니 산속에서 발가벗고 다니며 고라니를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어느날 그의 딸 효진(김환희)이 피해자들과 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깜짝 놀란 종구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신부 이삼(김도윤)을 대동해 일본 남자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산 속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그가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종구가 일본 남자의 실체를 추적해가는 전반부와 그가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불러 딸을 위해 굿을 한 뒤 사건이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다. 전반부가 인과관계를 통해 미지의 범인을 추적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띠고 있다면, 후반부는 장르를 비틀어 (혹은 오컬트, 좀비, 악마, 심령 등 온갖 장르를 혼합해) 전반부에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그 추리가 과연 옳았는지 되묻는다.


의심과 숙명이 만든 비극


영화는 누가복음 24장을 인용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예수가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고 했던 구절이다. '의심'은 <곡성>을 독해하는 키워드다. 종구는 소문에 휘둘리며 일본 사람을 범인으로 의심하고 단정짓는다. 그러다가 후반부에서는 의심의 판이 커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그는 굿을 하다가 판을 뒤집더니 또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캐묻고 다닌다"는 묘령의 여인 무명(천우희)의 말을 듣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의심하며 판을 깬다.


그가 판을 깨는 과정은 인간의 원죄를 기록한 고대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을 빠져나오다가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는 바람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고,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한 롯은 의심하다가 소금 기둥이 됐다. 일본에도 죽음의 세계에서 데려온 여인이 뒤따라오는지 궁금해 뒤돌아봤다가 그 여인의 몸이 썩어 문드러졌다는 신화가 있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뒷부분에 동굴 속에서 일본 남자의 정체를 시각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이것이 시지프스의 무거운 돌덩어리처럼 반복되는 의심이라는 덫에 걸린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우화임을 드러낸다.



한 번 자라기 시작한 의심은 사라지지 않고 독버섯처럼 뻗어가기만 한다. 의심의 뿌리엔 무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을 의심하여 더이상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심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이 의심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종구가 엔딩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여기에 대해서도 영화는 중간중간 답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란 의심을 통해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종구가 맞이한 비극은 숙명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그에게 던져진 미끼를 덥썩 문 것이 단지 우연이었던 것처럼 그가 일광과 무명 중 한 쪽을 택한 것 역시 우연을 가장한 숙명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영화 속에서 토속신앙과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는 인간의 의심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강해져 의심을 뿌리치지 않는 한 종구는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각종 공포영화의 컨벤션(관습적 장치)을 사용해 심약한 개인을 묘사하는데 이는 인간이 스스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타협하지 않는 논란의 엔딩


<곡성>은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영화 문제작이다. 그저그런 영화만 즐비했던 최근 한국영화 흐름에서 모처럼 뛰어난 완성도에 풍부한 텍스트를 지닌 걸작이 탄생했다. 마치 관객을 향해 미끼를 던지는 것 같은 첫 장면으로 시작해 엄청난 서스펜스로 미끼를 문 관객의 심장이 조여들도록 현혹시키더니 곧이어 솜씨 좋은 낚시꾼처럼 관객을 끌고다닌다. 그러다가 엔딩에 이르러서는 알아서 잘 살아보라며 휙 내팽개친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정신이 얼얼해 객석에서 바둥거릴 수밖에 없다. 단편영화에서는 이처럼 강렬하고 실험적인 엔딩이 드물지 않지만, 장편 상업영화에서 이런 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그만큼 2010년 <황해>의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 이후 나홍진 감독은 칼을 갈았고, <곡성>을 온전하게 감독 자신의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은 고립된 공간에서 점점 메말라가는 심신을 가끔 유머를 섞어가며 리드미컬하게 연기했다. 소심한 주인공을 연기한 곽도원은 관객이 영화를 그의 시점에서 받아들이도록 세밀하게 조율하는데 마치 송강호를 보는 것 같고, 황정민은 자신이 가진 조폭 이미지를 살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무당 연기를 보여준다. <손님>에 이어 다시 한 번 묘한 분위기의 여성을 연기한 천우희와 에너지 소모가 큰 연기를 해낸 아역배우 김환희도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지독한 연기는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이 해낸다. <지옥이 뭐가 나빠>의 야쿠자 두목,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인자한 할아버지 등 천의 얼굴을 가진 이 노장 배우는 한국으로 건너와 첫 출연작인 이 영화에서 고라니를 잡아 먹고 폭포물을 맞으며 수련하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등 거의 <레버넌트>급 연기를 선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2015년 2월 촬영을 마친 후 1년 4개월이라는 오랜 후반작업 기간을 거쳐 개봉했는데 아마도 칸 영화제 출품을 기다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서양철학의 명제를 오리엔탈리즘이 강한 토속신앙의 비주얼 속에 녹여넣었기 때문에 마케팅적으로는 외부의 시선에서 전해질 뜨거운 호평을 기반으로 국내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엔딩이 불친절하기 때문에 영화 <곡성>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는 극단적으로 갈릴 것이다. 혹자는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칠 테지만 혹자는 “이게 뭐야?”라며 티켓을 찢어버릴 지도 모른다. 나약한 주인공을 끝까지 나약하게 유지함으로서 ‘의심과 숙명’이라는 주제를 강조한 나홍진 감독의 승부수가 과연 공감을 얻을지는 관객 반응을 지켜볼 일이다.



20세기 폭스의 언더독 전략


마지막으로 배급사에 대해 한 마디. 영화 <곡성>은 한국영화로는 낯설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20세기폭스사의 팡파레로 시작한다. 20세기폭스는 한국영화가 한국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는데 자극받아 직접 한국영화를 제작, 배급하고 있다. 2013년 <런닝맨>을 시작으로 2014년 <슬로우 비디오>, 2015년 <나의 절친 악당들>에 이어 네번째 작품으로 <곡성>을 택했다. 산업 논리로 말하자면 영화도 현지화 전략을 쓰는 셈인데 이런 전략으로 폭스는 일본, 대만 등에도 진출했고, 인도에서는 <내 이름은 칸>(2010)을 투자, 배급해 전세계적으로 큰 흥행 수입을 올린 바 있다.


단 세 편으로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엿볼 수 있는 폭스의 전략은 ‘언더독’의 자세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 방송시장에서 tvN과 JTBC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이 전략은 도전자임을 인정하고 능력있는 창작자를 데려와 그들의 권리를 최대한 인정해주는 것이다. 로맨스가 없다며 지상파에서 반려된 <미생>과 <시그널>이 이들 채널에서 방영되며 대박을 터뜨린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한국영화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CJ나 쇼박스, 롯데, NEW였다면 과연 현재 <곡성>의 엔딩이 담긴 시나리오가 온전히 통과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아마도 힘들지 않았을까? 할리우드 거대 배급사 20세기 폭스의 직접 진출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우려가 많았지만 관객 입장에선 외부의 자극 덕분에 천편일률적 한국영화 흐름에서 벗어나 좀 더 풍요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됐으니 아직까지는 실보다 득 아닌가.



곡성 ★★★★☆

던져진 미끼에는 이유가 없다. 의심은 인간의 업이다.



PS) 나홍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라고 말했다. 일본 사람을 찾아 산속으로 간 종구와 마을 청년들이 박춘배(길창규)를 만나 우물가에서 벌이는 싸움 장면이 웃기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 <추격자> <황해>보다 유머러스한 대사가 더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물가 장면이 진정 B급 정서의 웃음을 유발하려한 것이었다면 그 장면이 삽입된 상황 자체에 좀 더 여유가 있어야 했다. 사실 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데드 얼라이브>나 <트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영화들이 떠올라서 웃을까 말까 망설였지만 극장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아서 그냥 진지하게 보는 쪽을 택했다. 아마도 이 영화가 흥행한다면 이 장면에 대한 코믹한 패러디가 쏟아지지 않을까 싶다.


>> 뜨거운 영화 <곡성> 못다한 이야기 셋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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