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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2015), <도둑들>(2012)로 무려 2500만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최동훈 감독. 그는 2004년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한 이래 <타짜>(2006), <전우치>(2009) 등 3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요. 개성 있는 캐릭터, 박력 있는 전개, 화려한 액션 등 ‘최동훈 스타일’ 영화를 만들면서 흥행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갖춘 몇 안 되는 감독이죠.
그는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지만 걸어온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데뷔 전 시나리오 공모전에 수차례 떨어지며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고, 준비하던 영화가 연달아 엎어지며 돈이 없어 방황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지금의 최동훈이 된 걸까요? 그가 여러 인터뷰들에서 남긴 말을 바탕으로 그가 영화를 만드는 방법을 8가지 포인트로 정리해 봤습니다.
1. “중요한 것은 재능보다는 의지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보다 ‘하면 는다’는 말을 믿는다.”
최동훈 감독은 대학교 4학년 때 영화를 하기로 결심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씨네21]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 곳곳에 투고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뽑힌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계속 썼습니다. 떨어지면 좌절하지 않고 빨리 다른 걸 썼습니다.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기도 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실력이 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연출부일 때도 매일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죠. 최동훈 감독 역시 구로사와 감독처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0) 연출부 생활을 할 때도 매일 밤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그는 감독이 되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연출부 생활은 현장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야 하는, 그야말로 깡다구로 버티는 과정입니다. 영화촬영 현장에 가면 잠을 제대로 못 자 얼굴이 누렇게 뜬 젊은이 두세 명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연출부입니다. 그런데 최동훈 감독은 그럴 때도 매일 시나리오를 조금씩 썼습니다.
2. “나는 초고를 빨리 쓴다. 초고를 완벽하게 쓰려고 마음먹으면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묘사할 자신이 없는 신은 ‘이런 내용일 듯’ 하고 넘어간다.”
최동훈 감독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2004) 초고를 4개월 만에 썼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16고까지 고쳐나갔습니다.
그가 초고를 빨리 써서 일단 완성해놓고 보는 이유는 어차피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했죠. 정유정 작가는 초고의 흔적이 남지 않을 때까지 원고를 수정한다고 했고요. 따라서 나중에 수정에 공을 들이기 위해 일단 완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영화감독에게 미학적 고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체력 관리다.”
영화 촬영은 대부분 야외에서 이루어집니다. 세트 촬영이 많은 방송과 다르죠. 물론 종합촬영소에 세트를 지어놓고 찍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많은 감독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합니다. 야외에서 찍다보면 밤샘 작업도 많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체력은 필수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을 찍기 전 매일 한강변을 5km 뛰었고, <타짜>를 준비할 땐 집이 있던 약수동에서 충무로 사무실까지 모래주머니를 차고 1시간을 달려 출퇴근했다고 합니다. <전우치> 때는 운동을 게을리해 극심한 체력저하로 고생했는데요. 어쩌면 이 영화가 최동훈 감독 작품 중 유일하게 그저그런 평가를 받은 데는 감독의 체력이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도둑들>을 준비할 때는 부지런히 줄넘기를 하며 체력 관리를 했습니다.
4. “나는 촬영장에서 어떤 장면을 다시 찍을 때 ‘우리는 한 번도 안 찍은 거다. 마치 처음 찍은 것처럼 뇌를 속이자’라고 말한다.”
리허설을 하는 이유는 익숙해지기 위해서입니다.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엔 더 잘할 것이라는 암묵적 약속이 있는 것이죠. 익숙해지면 아무래도 긴장하지 않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리허설을 하지 않는 감독도 있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리허설 없이 곧바로 촬영하는 걸 선호합니다. 모두들 신경이 바짝 서서 긴장하고 찍는 첫 테이크가 가장 진실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는 철저히 준비하는 창작자입니다. 촬영 현장에도 매일 한 시간씩 일찍 가서 시뮬레이션 하고 촬영에 임합니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을 찍을 때는 충분히 괜찮았는데도 혹시 더 좋은 장면이 나올까봐 일부러 재촬영을 하기도 할 정도로 완벽주의자입니다.
재촬영이 계속되다보면 지나치게 익숙해집니다. 패턴이 생깁니다. 그러면 연기나 대사에 맥이 풀립니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 최동훈 감독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처음 찍는 것처럼 뇌를 속이자는 주문을 겁니다.
5. “나는 잘했건 잘못했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뭔가 잘 안 풀리는 걸로 괴로워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안 되는 일로 계속 발목 잡히지 말고 때론 덮어버리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최동훈 감독은 낙천적인 편입니다. 그는 데뷔 전 거의 4년 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흩트러지지 않고 성실하게 일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영화 만드는 기계라고 할 정도로 집과 사무실만 오가는 성실파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0) 연출부 때는 1년 일하고 110만원 받았습니다. 그래도 밥 사주고 술 사주니 좋아하며 일했습니다. 집에선 110만원 받는다고 하니 월급인 줄 알고 기특해 하셨다고요. 굳이 연봉이라고 바로잡진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을 준비할 때 캐스팅이 되지 않아 몇 달 동안 대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캐스팅이 되지 않으니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았죠.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개의치 않고 계속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러다가 엎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불안해하던 어느 날 마침 박신양이 캐스팅되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풀립니다. 결국 걱정해봤자 안될 일은 안 되고, 될 일은 됩니다.
6.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 영화를 볼 때 끝나기 전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 말은 최동훈 감독이 스티븐 킹을 인용해 한 말입니다. 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노벨문학상을 받고 싶은 꿈은 없다. 다만 독자가 LA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다 읽을 때까지 뉴욕에 도착 안 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것이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어떻게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놓고 관객들과 게임을 벌이는 것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설득돼야 관객도 설득시킬 수 있고 작가가 스스로 재미있어야 관객도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영화감독들이 시나리오까지 쓰는 게 일반화되어 있죠. 글을 쓸 줄 모르면 제대로 된 영화감독이 아니라는 인식도 팽배하고요. 많은 감독들이 이를 부담스러워합니다.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도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이 쓰고 연출만 했으면 좋겠다고 종종 말합니다. 하지만 최동훈 감독은 시나리오를 써서 욕먹고 고치는 과정의 연속을 즐깁니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영화 완성까지 보통 2년 반 걸리는 긴 시간 동안 그를 지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은, 관객을 어떻게 스크린에 붙잡아둘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이 일을 내가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는 자기확신에서 나옵니다.
7. “소설책 한 50권만 어디로 가져가서 조용히 읽고 싶다.”
이 말은 최동훈 감독이 영화 <암살> 개봉 전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시나리오 첫 줄을 쓸 때부터 시사회하는 날까지 2년 반 동안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웃풋만 있던 시간 인풋에 대한 갈증, 또 하나는 소설에 대한 애정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국문과 출신입니다. 물론 선동률 방어율 수준의 학점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는 학창 시절부터 소설을 좋아했고 또 많이 읽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수학책 밑에 김주영, 이문열, 이청준의 소설책을 놓고 읽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최동훈 감독의 독서법 특징은 빨리 읽는다는 것입니다. 소설책 한 권을 4시간이면 다 읽는다고 하네요. 날을 새서 아침까지 책을 읽은 뒤 자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잡은 책을 끝까지 다 안 읽으면 잠을 못 자는 게 어릴 때부터 버릇이 됐습니다.
그렇게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소설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된 것은 소설가에 비해 영화감독은 더 활동적인 일이고 그것이 더 적성에 맞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랍니다.
8.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일단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원래 대부분의 20대는 바보 같고 거지같다. 아직 당신에게 진짜 인생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최동훈 감독은 서강대 국문과 졸업 후 영화아카데미 연출 전공 15기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커리큘럼과 무관하게 생활했습니다. 성적은 들어갈 땐 1등, 나올 땐 꼴등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커리큘럼 대신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그것이 자산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으로 데뷔 전 시나리오 한 번 팔아본 적 없고, 주목받은 단편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단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만 있었으니 어쩌면 운좋게 첫 작품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겐 데뷔작을 찍을 때 자격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사를 지내던 날 돼지머리에 절을 하고 돈을 꽂아주는 투자자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 불쌍한 사람이다. 도대체 뭘 믿고 나와 이 영화에 투자하는 거지?”
그는 현장에서도 아마추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이크를 한 번 더 갔다고 하네요.
첫 영화가 성공하고 <타짜>로 호평을 받은 뒤에도 그는 현장에 가면 늘 긴장했습니다. 그가 영화 만들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도둑들> 때부터입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영화는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이라고 말했는데 그전까지는 무슨 배부른 소리인가 했는데 그때야 비로소 그 의미를 처음 알게됐다고요.
원래 처음은 다 어렵습니다. 하나씩 알게 되면서 길이 보이고 삶이 보이는 거죠. 이제 45살이 된 최동훈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이드는 게 좋다. 맨 처음 서른 살이 됐을 때 너무 좋았고, 계속 또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참고문헌: 한국영화감독조합 지음, 주성철 엮음, [데뷔의 순간], 푸른숲,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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