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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저자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100여년전 아들러 심리학, 지금도 유효"
용기 있는 제목의 책 한 권이 올해 한국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올해 2월부터 무려 35주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책 [미움받을 용기]다. 이는 34주간 1위였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기록을 깬 것이다.
이 책에는 세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알프레드 아들러,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아들러는 프로이트나 융에 비해 우리에게 생소한 19세기의 심리학자이고,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의 이론을 연구한 일본의 심리학자이며, 고가 후미타케는 이치로의 연구를 풀어 쓴 스토리텔러다. 즉, 이 책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고가 후미타케가 기시미 이치로에게 배우는 과정을 이야기로 꾸민 것이다. 책은 청년이 철학자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고가 후미타케가 청년, 기시미 이치로가 철학자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고가 후미타케는 1973년생으로 더 이상 청년은 아니다.)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거가 어쨌든 지금 현재를 살아라,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고 타인과 나의 과제를 분리하라, 열등감을 자신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승화시켜라, 인간은 변할 수 있으니 스스로 답을 찾아라.
남들과 비교해 자신의 행복을 판단하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의 메시지는 울림이 컸다. 책이 일본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일 것이다.
책의 두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한국을 찾았다. 두 사람은 10월 22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6회 세계지식포럼에서 MBN 김주하 앵커의 사회로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에게 책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은 이날 세 사람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라"
-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기시미 이치로(이하 기시미):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육아였다. 30대 때 어느날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내 뜻대로 기르는 게 힘들다는 걸 느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친 거다. 그런데 아이는 그 자신을 온전히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를 보면서 아들러가 맞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또 얼마 후에 큰 병에 걸렸다. 생사를 넘나드는 병이었다. 그때 절망 속에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부한 아들러를 책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 책의 메시지는 과거와 사회에 영향받지 말고 나 자신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도 큰 병에 걸리면서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 내가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기시미: 때론 통제할 수 없는 시련이 닥친다. 부모의 죽음, 큰 병 등 그런 것들은 컨트롤할 수 없다. 하지만, 시련은 새가 하늘을 날 때 필요한 공기저항 같은 것이다. 새는 진공에선 날 수 없다. 공기가 있어야만 날 수 있다. 시련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아들러의 생각이다.
- 고가 후미타케 씨는 언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나?
고가 후미타케(이하 고가): 1999년에 기시미 선생이 쓴 다른 책을 보고 아들러를 알게 됐고 감명받았다. 그 뒤 2년반 동안 이 책을 어떻게 쓸지 궁리했다.
- 책은 청년과 철학자가 나누는 대화로 되어 있다. 청년은 다혈질이고,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청년과 선문답을 하는 것 같다. 책의 메시지는 타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상대방을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라는 것인데, 청년 입장에서 읽게 될 독자에게 이런 형식은 메시지와 일견 모순되지 않나?
고가: 청년이 화를 내는 건 철학자를 설득하기 위한 도구다. 하지만 철학자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설득하기 위해 감정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것은 상하관계가 아닌 도구의 차이다. 청년은 아직 감정을 쓰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 아마도 아들러가 다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아들러를 반박하는 내용을 책에 싣을 생각은 없었나?
고가: 초고를 쓴 뒤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이 많은 의견을 내놨고 그중엔 비판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반론을 청년의 입을 빌어 이야기에 녹였다.
기시미 이치로
"미래 목표를 세우고 사는 삶보다 지금 두근거리는 현재가 더 중요"
-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기시미: 아들러는 인간은 과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비관주의자와 낙천주의자는 반댓말 같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우리는 낙천주의자와 낙관주의자를 구분해야 하는데 낙관주의자는 "어떻게든 되겠지"가 아니라 "어떻게든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 낙관주의자가 되는 방법은 뭔가?
기시미: 아들러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째,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 것. 둘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것. 셋째,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라며 가정하지 말 것. 실현된 것이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전부다. 뭔가 이뤄지기를 기다리면서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1870년에 태어난 아들러의 심리학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유용하다. 아들러를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이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인생을 바꿀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기시미: 너무 높은 이상을 두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면 스트레스가 생긴다. 그것이 심하면 열등감이 된다. 열등감을 향상심으로 승화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 열등감을 극복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기시미: 큰 병에 걸렸을 때 나는 내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때 한 친구가 찾아와 내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기여 혹은 공헌하는 일일 수 있겠더라. 그게 중요한 포인트다. 돈을 많이 갖거나 유명대학을 다니는 건 행복과 관계없다. 기여하고 공헌할 때 스스로를 넘어설 수 있다.
- 스스로를 넘어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기시미: 타인을 보지 말라. 현실은 이상과 전혀 다르다. 영점을 정해놓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플러스가 되면 기쁨이다. 경쟁을 염두에 두지 말고, 나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내 삶에 플러스가 되면 그 순간에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고가 씨는 아들러 심리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고가: 아들러 심리학에서 '지금을 산다'는 것은 향락주의에 빠지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가 새로운 오늘이고, 오늘은 어제에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미래 목표를 세워 놓고 이상을 향해 걸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이라면 지금으로부터 3년 후 입시를 위해 계획적으로 사는 것보다 당장 오늘 하루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 계획하기보다 오늘을 살아라, 머리로는 알겠다. 하지만 미래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 역시 과거이지 않나?
고가: 그건 인생을 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이 아니라 점들의 연속이다. 시점 자체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매일 오늘 하루를 인생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
"미움받을 용기는 미움받으라는 게 아니라 미움받을 만큼 자유롭게 살라는 것"
- 한국과 일본에서 책의 인기엔 현대인의 심리를 한 마디로 짚어낸 제목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일본판의 제목 역시 한국판과 같다.) 제목을 어떻게 지었나?
고가: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 용기는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인 개념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부분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정되지 않은 부분은 모두 가능성으로 남는다. 여러가지 용기 중에서도 미움받을 용기야 말로 가장 힘든 용기라고 생각해 제목으로 지었다.
- '미움받을 용기'라는 건 어떤 용기인가?
기시미: 타인의 눈을 신경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얼굴 보며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하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못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상황에서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하면 그는 미움을 받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미움받을 용기란 미움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그걸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힘든 인생이다. 미움받는다는 건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명이다. 자유롭게 살기 위한 대가다.
기시미 이치로, 김주하, 고가 후미타케(왼쪽부터)
- 독자들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기시미: 책의 내용을 일부라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대로 행동한다면 세상은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아들러는 모든 대인관계는 대등한 수평관계라고 했다. 이는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사실 일상에서 실천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흔히 깔보고, 꾸짖고, 칭찬하는데 이는 전부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행위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충분히 설명하면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다. 아들러는 이를 실천해 나아가면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질 거라고까지 생각했다. 아들러의 이상을 조금이라도 삶에 적용하길 바란다.
- 요즘 한국에선 '헬조선'이란 단어가 자조적으로 쓰인다. 남을 비하하고 나도 깎아내린다. 이것 역시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해서인가?
기시미: 한국 상황을 잘 모르지만, 나라와 자신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내가 직면해야 하는 과제로부터 회피할 구실을 찾으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이 나라의 좋은 점을 찾아봐라. 만약 나의 불행이 개인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의한 것이라면, 방치하지 말고 바꾸기 위해 과감히 도전하고 혁신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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