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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제주 바람이 분다. 이쯤되면 강풍이다. 매월 1000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삶의 터전을 제주도로 옮기고 있다. 통계청의 ‘연간 국내 인구 이동’ 조사에 따르면 제주도의 순유입 인구는 작년 1만명을 돌파한 이래 올들어 월 1000명 이상씩 늘고 있다. 특히 30~40대 젊은층의 이주가 활발하다.
장강명의 베스트셀러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한국에서의 삶이 싫어서 호주로 이민을 가는데, 이 소설에 빗대면 유행처럼 번진 제주행은 ‘서울이 싫어서’ 떠나는 제주 이민인 셈. 이효리, 이정, 김동률, 장필순 등 스타들의 연이은 제주행, ‘삼시세끼’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 역시 전원에서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에 대한 동경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데 소위 ‘제주드림’을 안고 제주 땅을 밟은 이들은 제주에서 원하던 삶을 살고 있을까?
“마침내 그들은 제주로 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 이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인생이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경제적 자립 어려움, 문화시설 부족, 자녀교육 문제, 외로움 등의 이유로 제주살이 적응에 실패해 다시 육지로 돌아오는 경우도 상당수다.
지난 2009년 일찌감치 제주로 내려가 농수산물 유통조합을 운영하고 있는 홍창욱 씨는 2012년부터 제주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보고 느낀 제주살이를 팟캐스트를 통해 알리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 졸업후 공익재단에서 일하다 나만의 인생을 찾고 싶어 아내와 함께 제주로 간 그는 “제주이민을 결심한 순간부터 제주는 로망이 아닌 현실”이라며, “제주이민이 성공하려면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개척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최근 제주 이민자 13명과 제주에서 나고 자란 6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 쓴 책 ‘제주, 살아보니 어때?’(글라 펴냄)를 펴냈다. 지난 5일 모처럼 서울을 찾은 그를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제주이민에서 실패하지 않기 위한 조언을 들어 봤다. 다음은 그가 전한 다섯 가지 팁을 정리한 것이다.
1. 평소 하고 싶던 일을 찾아라
제주로 내려온 이유는 저마다 다양해도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도시살이가 팍팍해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면 제주에 왔으니 평소 하고 싶던 일을 찾아서 하라. 꿈만 꾸는 것과 그 일을 실제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제주에서 어떤 일자리를 구하든 도시에서만큼의 소득은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씀씀이를 줄이고 돈에 대한 욕심을 줄인 만큼 다른 데서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게 사람들 만나 인터뷰하고, 글 쓰고, 팟캐스트 방송하는 일이었다. 크게 돈은 안 됐지만 재미있어서 계속 했더니 이렇게 책도 내게 되더라.
2. 내추럴 본 제주도민을 사귀어라
제주 사람들은 타지인을 배척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 서울에서도 당신은 앞집 이웃과 친하게 못 지내지 않았나? 호기심 많은 제주 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사람을 궁금해 한다.
내가 제주에 내려온 뒤 처음 사귄 제주도민은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아내가 미술치료 교육과정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 만나 내게도 소개해줬다. 그분에게 제주 정착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3.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제주도는 섬이지만, 인간은 고립된 섬으로 살 수 없다. 사람 없는 곳에서 소박하게 살고 싶어 제주에 왔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외로워질 것이다. 그럴 때 소셜미디어가 도움이 된다.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정든 친구와 작별하고, 학창시절부터 주입받아온 성공신화와 결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기존 친구들과 소통하면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정신적으로는 위안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제주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나 제주에서 작업한 캐릭터 디자인을 사줄 시장은 육지에 있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도 소셜 미디어는 효율적인 홍보 수단이다. 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제주에 있다보니 그들이 제주 여행을 오면 나를 찾더라. 느슨한 관계지만 소중한 관계기도 하다.
4. DIY에 익숙해져라
제주의 서비스는 서울과 다르다. 음식 배달? 택배? 안 되거나 비쌀 것이다. 예쁜 가구가 눈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배달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 예쁜 책상 못 사준 것은 지금도 아쉽다.
전기 기술, 목공 등 기본적인 작업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제주시내에서 전문가를 불러도 시골까지 잘 오지 않는다. 그들 역시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거리가 멀면 굳이 그 돈 벌러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내성을 키우고 스스로 직접 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5.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
믿을 건 가족뿐이다. 서울에서 살 때보다 시간은 많을 것이다. 서울에선 출퇴근길 이동에만 1시간씩 걸리지만, 제주에선 10~20분이면 간다. 약속 장소도 대개 가까운 곳으로 잡기 때문에 30분 걸리는 곳도 별로 없다. 그래서 시간이 많다. 그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라.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하라. 그러려고 제주에 온 것 아닌가?
홍창욱은...
본업은 농수산물 유통조합 무릉외갓집 실장. 필명 ‘뽀뇨아빠’로 제주에서의 육아, 살림 이야기를 각종 매체에 기고해왔고, 팟캐스트 ‘제주이민 인터뷰’를 통해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중이다. 책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썼고, [거침없이 제주이민], [제주도로 간 도시 남자들]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매일경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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