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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가 있다. 영화 <소수의견>은 2013년 6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일정을 잡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개봉이 2년이나 미뤄졌다. 개봉이 연기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있어왔고 그때마다 이유가 있었다. 영화의 완성도가 미흡하거나, 시사회 반응이 좋지 않아 배급사가 흥행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거나, 홍보와 마케팅에 쏟아부을 돈이 없거나 혹은 <연평해전>처럼 갑자기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가 터졌거나 등등이다.


그런데 <소수의견>의 개봉 연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유일한 추측은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였던 CJ E&M이 영화의 내용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었다.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면서 검사가 증인을 협박한다는 영화의 내용이 검찰을 자극할 수 있어 눈치보기에 나섰다는 의혹이었다. 결국 총제작비 30억 가량의 상업영화인 <소수의견>은 이미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 동안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제작상황판에서 ‘개봉예정작’으로만 분류되어 있었다. <소수의견>의 제작사 하리마오 픽처스는 <소수의견> 이후에 만든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작년에 먼저 개봉해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아무도 보지 못한 비운의 영화로 사라지는가 싶었던 <소수의견>이 2년 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개봉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CJ E&M이 끝내 배급을 포기하고 배급권을 시네마서비스로 넘긴 이후였다. 이 과정은 지난 2013년 8월 <감기> 개봉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요즘 메르스 사태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감기> 역시 CJ E&M이 투자배급권을 갖고 있던 영화였지만 비슷하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급권을 제작사인 아이러브시네마에 넘겼다. 당시에도 CJ E&M이 영화 속 정치적 이슈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8일 영화 <소수의견>이 언론에 공개됐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으로 세간의 관심이 커진 덕분인지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수의견>은 6월 24일 개봉예정작 중 <연평해전>과 <나의 절친 악당들>을 제치고 ‘가장 보고 싶은 영화’ 1위에 올라 있다.


영화 <소수의견>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국가를 상대로 무모한 소송을 벌이는 두 변호사의 법정드라마’다. 영화는 용산참사를 모티프로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어떤 개별적인 사건의 트라우마를 강조하기보다는 전관예우, 표적수사, 학벌지상주의, 동문챙기기, 증거조작 등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소위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에 만연한 구조적인 모순을 파고든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시스템이 제구실을 못하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볼 때 더 울림이 큰 영화다.


철거 반대시위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의 아들과 경찰관이 죽고 철거민 아버지가 경찰관 살해 혐의로 법정에 선다. 법원은 아버지에게 국선변호사를 배당하는데 얼떨결에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신문기자를 통해 이 사건의 배후에 권력의 개입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사건을 파헤치려 하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치게 되고 결국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에 이른다.


영화는 근래 한국영화 중 가장 진행이 빠르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감상적 접근보다는 지방대 출신 변호사와 검찰의 불꽃튀는 법리 대결로 러닝타임을 거의 소비한다. 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해 집중하지 않으면 도입부에 영화에 몰입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 빠져들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통해 권력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법정영화라는 점에서 1992년 미국영화 <어퓨 굿맨>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선악구도다. 현실에선 거의 멸종한 초식공룡 같은 변호사와 신문기자가 주인공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여기에 검사, 판사, 국회의원, 경찰청장, 로펌 대표, 용역업체 회장, 시민단체 실장 등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해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는 주장을 늘어놓는데 영화는 이들 모두를 조롱해 누구 하나 몸성히 스크린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관객 입장에선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이들이 사건에 개입하는 과정을 마치 퍼즐맞추듯 짜맞춰보는 재미가 있다.


주연을 맡은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 뿐만 아니라 이경영, 김의성, 권해효, 김형종, 오연아, 장광, 김종수, 박철민, 엄태구, 조복래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연기자들이 각종 직업군을 맡아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의 힘으로 밀고 가는 영화다.


다만 영화는 흥미진진한 법정대결이 계속되는 후반부에 비해 초반부에 발동이 늦게 걸린다. 법정용어, 언론계 은어 등이 별다른 설명 없이 혼재돼 있어 친숙하지 않은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또 애초 큰 사명감이 없던 국선변호사가 마음이 돌아서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 관객이 공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단점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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