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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1981년 뉴욕. 스탠더드 히팅 오일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남자는 아벨(오스카 아이작), 여자는 안나(제시카 차스테인). 처음엔 헷갈렸는데 이 회사는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아벨은 장인에게 회사를 물려받았고 안나는 갱스터 집안의 딸입니다. 안나의 아버지와 오빠는 갱스터고 그래서 안나 역시 보통내기는 아닙니다. 영화 <데어 윌비 블러드>에 보면 록펠러가 석유재벌이 된 과정이 나오는데 그는 무지막지하게 타인의 피를 빨아 부를 일구었죠. 굳이 회사 이름에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볼 때 그런 핏줄이 안나의 아버지에게서 안나에게로 연결됐다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아벨은 브루클린의 부두를 유대인으로부터 구입하는 계약을 맺습니다. 잘 나가는 사업가가 사업을 확장하려는 것이죠. 랍비는 아벨에게 판매 조건으로 한 달 안에 잔금을 치를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초반에 시간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 시간 안에 무슨 일이 꼭 일어난다는 뜻이죠. 자, 이제 앞으로 한 달 동안 아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지켜봅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나갑니다. 처음엔 흐름이 익숙하지 않아 적응이 힘들 수 있지만 1시간쯤 지나면 빠져나오기 힘들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영화에는 아벨과 안나 말고도 두 명의 중요한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검사 로렌스(데이빗 오예로워)와 아벨의 직원 훌리안(엘예스 가벨)입니다. 로렌스는 오랫동안 부패기업의 비리를 쫓고 있었습니다. 안나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스탠더드 히팅 오일은 그 표적이었죠. 주인이 바뀌었지만 로렌스는 이 회사를 16개의 부패 혐의로 기소합니다. 훌리안은 기름 트럭을 운반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강도를 만나 트럭을 빼앗기고 맙니다. 강도는 트럭의 기름을 다른 회사에 팔아넘겨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습니다.
검사에게 기소당해 법정에 서야 하고 누구 짓인지 알 수 없는 강도에게 기름을 빼앗겨 손해가 막심해지고. 아벨에게 악재가 겹치자 은행은 대출을 거절합니다. 그것도 잔금일을 이틀 앞두고 말이죠. 아벨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요?
<모스트 바이어런트>는 J.C. 챈더 감독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그의 전작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인도양에서 홀로 요트를 타고 폭풍 속을 항해하는 <올 이즈 로스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메릴린치에서 30년간 일해온 증권맨인데 덕분에 월 스트리트의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 <마진 콜>로 데뷔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하기 전에는 광고와 다큐멘터리를 15년 간 해왔다고 하는군요. 그의 영화는 묵직합니다. 그리고 화면 구도가 좋습니다.
오스카 아이작은 <인사이드 르윈>의 외로운 음악가, <엑스 마키나>에서 로봇을 만든 천재 회장 역에 이어 이 영화에선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려다 결국 현실에 쉽게 타협하는 야심만만한 사업가 역을 맡았습니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그렇듯 그는 그냥 그 사람 같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에 관한 영화입니다. 착실하게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한 아벨의 뒤에는 그의 부인의 집안이 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훌리안의 소원은 아벨처럼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좌절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벨이 기름트럭 도둑을 추격하는 장면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혔다가 빠져나오니 트럭은 전복되어 있고 범인은 달아나는 중입니다. 그전까지 계속해서 누가 범인일지 이야기를 통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다가 직접 행동에 나서는 장면인데요. 터널부터 지하철(1981년의 더러운 뉴욕 지하철)까지 이어지는 추격 장면은 대단히 섬세하게 연출되어 있어 이 장면 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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