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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위플래쉬>에 대해 또 쓰는 건 시간 낭비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또 쓰고 싶다.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직 못 봤으면 꼭 보고, 한 번 봤으면 두 번 보라고. 이렇게 전율 가득한 시청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는 인생에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고.


세계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는 스승의 혹독한 지도 아래 손에 피가 나도록 스틱을 잡았고 매일밤 연습을 거듭했다. 그의 목표는 오직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꿈을 접었다. 세상에는 드럼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그는 영상학을 전공한 뒤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영화 감독 데미언 차젤의 이야기다. 그가 만든 두 번째 영화가 <위플래쉬>다.


“악기가 무기로 변하고 내뱉는 말들이 총만큼 난폭하지만 그 배경은 전쟁터가 아니라 리허설룸이나 무대인 갱스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차젤 감독이 설명한 이 기획의도는 영화 <위플래쉬>로 들어가는 열쇠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취향이나 미적 감각, 스타탄생 등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객관적 수치로 평가할 수 있도록 계량화된 것이다. 그래서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 강의실은 순위가 매겨지고 살벌한 경쟁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돌변한다. 악보에 템포가 400이라고 적혀 있다면 그 숫자에 맞게 정확히 연주해야 한다. 그게 기본이고 그게 실력이다.


폭군 같은 선생 플레처(J.K. 시몬스)가 있고 그에 못지 않게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은 학생 앤드류(마일즈 텔러)가 있다. 선생은 학생이 따라올 때까지 지도하고 학생은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한다. 그 과정에서 마치 갱스터영화처럼 욕설이 난무하고 유혈이 낭자한다.


‘위플래쉬(whiplash)’는 음악 학교의 스튜디오밴드가 연주하는 재즈곡의 제목으로 중간 부분 드럼이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독주하는 부분이 강렬하다. 원뜻은 '채찍질'이라는 뜻인데 플레처와 앤드류, 두 완벽주의자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그만하면 잘 했다는 말, 그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말이야.”


극중 플레처의 대사다. 한 가지에 몰두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남기고 쓸쓸히 사라지는 게 좋은 삶인가 혹은 적당히 격려하면서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혀가는 게 나은 삶인가. 우린 대부분 후자의 삶을 산다. 그러면서 전자의 삶으로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 주변의 ‘위플래쉬’들을 떠올려봤다. 발레리나 김주원의 울퉁불퉁 굽은 발, 골프선수 박세리의 새까만 종아리, 축구선수 박지성의 일그러진 평발 등은 영웅담 뒤에 가려진 그들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함축적으로 상징하고 있었다. 소설가 조정래의 어깨는 ‘태백산맥’을 쓰다가 내려앉았고, 이상화의 발바닥은 온통 노란 멍 투성이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의 손가락 끝은 동상에 걸린 듯 허물어졌다. 모두 지독한 연습의 증거들이었다.


작년 <끝까지 간다>로 대종상 감독상을 받은 김성훈 감독을 최근 만났는데 그의 사연 역시 또다른 위플래쉬였다. 그는 9년전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흥행 실패한 뒤 잊혀졌던 감독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첫 영화로 흥행실패한 감독이 두번째 영화를 찍을 확률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기조를 바꿀 가능성 만큼이나 희박하다. 대부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간다.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김 감독에게 지난 9년 간의 우여곡절을 물었을 때 눈물없이 듣기 힘든 사연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아직 내가 찍고 싶은 영화를 찍지 못했으니 그걸 찍고 되든 안되든 그때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는 하루 9시간씩 시나리오를 썼고 촬영장에서는 원하는 그림 이상이 나올 때까지 배우와 스태프를 거의 잡았다. 그때 그의 멘트도 <위플래쉬>의 유명한 대사와 똑같았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말, 그건 절대 내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물론 <위플래쉬>가 죽어라도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자기계발 영화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추천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플레처와 앤드류는 사회의 루저들이다. 앤드류는 가족과 친구를 잃고 플레처는 직장을 잃는다.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두 사람은 나중엔 독수리와 매처럼 호시탐탐 서로를 노린다. 그건 교감도 아니고 경쟁심도 아니다. 다만 나의 완성을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할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가해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벼랑 끝으로 몰고간 뒤 거기서 일말의 자비도 없이 밀어버린다. 준비가 됐다면 날아오를 것이고 미흡하다면 떨어져 죽을 것이다. 절박함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믿는 자만이 이 영화의 엔딩에 감동할 것이다. 영상과 음악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편집은 드럼 비트에 맞춰 관객의 심장을 뛰게 한다. 마지막 10분은 전율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누군가에게 인생의 영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두 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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