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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제(Ijé)>의 오모톨라 에켄데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만드는 나라는? 정답은 인도. 소위 '발리우드'라고 불리는데 연간 1170편 가량의 영화를 만든다. 최근 인도 영화 화제작들이 한국에도 많이 소개돼 친숙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영화를 많이 만드는 나라는?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아니냐고? 정답은 의외로 나이지리아다. 해마다 1천 편에 가까운 영화가 만들어진다. 유네스코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2009년 98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할리우드는 2011년 819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니 숫자상으로는 나이지리아가 세계 2위의 영화대국이다. 나이지리아의 영화산업은 할리우드에 빗대 '놀리우드'라고 불린다. 참고로 한국영화 제작 편수는 2013년 207편으로 세계 10위권에 속한다.
농업 다음 두번째로 큰 산업
아프리카에서 남아공을 제치고 가장 큰 규모의 나이지리아 경제는 2010년 이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2013년 GDP는 5226억달러(540조원)로 2010년 1694억달러에 비해 3배나 급증했다. 그중 영화산업의 규모는 51억달러(5조3천억원)로 GDP의 1%를 차지한다.
나이지리아의 영화산업은 농업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영화산업의 규모도 커지고 있어서 수도인 라고스에 영화학교가 속속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꿈을 좇아 영화계로 몰린다. 덕분에 1백만 개의 새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해마다 2억5천만달러(2500억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놀리우드의 성장 비결 중 하나는 영화를 게릴라식으로 재빨리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이다. 소규모 집단이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하는데 대부분 1만5000∼2만5000달러의 제작비로 2주 내에 뚝딱 만들어낸다. 이 정도 규모는 한국 영화학과 학생들의 졸업작품 제작비 수준과 유사하다.
놀리우드 영화가 수익을 얻는 루트는 극장이 아니다. 나이지리아는 영화대국이지만 극장 55개에 스크린 수는 100개에 불과할 정도로 극장 인프라가 열악하다. 1980년대 TV에서 외국 프로그램 검열이 강화되자 그 반대급부로 자체 프로그램 제작이 늘면서 영화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이지리아 영화산업은 극장이 아닌 홈비디오 위주로 성장했고, 그 때문인지 보통 TV 드라마로 분류할 만한 같은 제목의 시리즈 영화가 많다.
발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뮤지컬 장르이고 한류 드라마에 로맨틱 코미디가 많은 것처럼 놀리우드에도 인기 있는 장르가 있다. 바로 주술이나 신비주의가 섞인 권선징악형 멜로드라마다. 1992년 비디오공테이프 수입업자가 아프리카 토속적인 이야기를 담아 만든 <리빙 인 본디지(Living in Bondage)>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아류작을 양산했고, 나이지리아 시골청년이 런던에서 좌충우돌하는 코미디 <런던의 오수오피아(Osuofia in London)>는 DVD만 50만 장이 팔린 최고 흥행작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글래머 걸(Glamour Girls)>, <의식(Rituals)>, <모탈 인헤리턴스(Mortal Inheritance)> 등의 메가히트작이 있다.
리빙 인 본디지런던의 오수오피아
놀리우드 영화는 수입을 주로 DVD와 아프리카 위성TV에 판권을 판매해 얻는다. 나이지리아 영화는 수단부터 남아공, 멀리는 캐리비안해 인근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놀리우드 스타들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할리우드 스타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린다. 페트 에도치, 리즈 벤슨, 램지 노아, 레지나 아스키아, 케네스 오콘쿼 등이 빅스타로 꼽힌다. 이는 한류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유럽과 미국에서 아프리카 식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슈퍼마켓에 가면 흑인 이민자들을 위한 놀리우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서양의 아시아 마켓에서 한국 드라마를 쉽게 구해볼 수 있는 것을 떠오르게 한다.
게릴라식으로 만들어 아프리카 전역에 수출
나이지리아가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였던 때문에 영국 유학파 감독이 귀국해 영화를 만든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서 놀리우드 영화의 퀄리티 역시 점점 올라가고 있다. 300여편의 놀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인기 여배우 오모톨라 에켄데는 2013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놀리우드를 직접 보기 위해 라고스를 찾은 프리랜서 작가 일란 그린버그가 미국의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라고스 시내에서 영화 촬영 중인 팀들을 수시로 마주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디지털 캠코더와 형광등을 들고 게릴라식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장비가 열악하다고 해서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상팀과 분장팀이 연기자를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20대의 젊은 감독은 쉽게 오케이 싸인을 주지 않는다.
2010년 차이네즈 안옌 감독의 <이제(Ijé)>(영문명 The Journey)는 놀리우드 영화를 전과 후로 나누는 분기점인 영화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나이지리아 여자가 미국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발로 뛰는 과정을 담았다. 이 영화의 높은 퀄리티는 특정 감독과 배우에 대한 선호로 이어져 팬덤을 형성했다. 마치 한국영화가 박찬욱, 봉준호 등의 실력파 감독에 의해 한단계 붐업한 것과 비슷하다.
놀리우드의 성공 비결에 대해 유네스코 통계연구소는 영어로 만들어지는 영화가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한 점, 필름이 아닌 디지털비디오로 제작되는 영화가 저개발 국가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전세계 영화의 36%가 영어로 만들어지고 있기에 세계 각지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찍는 놀리우드식 제작방식은 아프리카 전체로 전파되고 있다. 놀리우드는 더이상 변방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세계 영화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영국 텔레비전 ‘채널4’는 “나이지리아 영화는 더 이상 안개 속에 가려진 아프리카의 고릴라가 아니라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는 큰 산업이 됐다”고 평했다. 2013년 만들어져 올해 북미 개봉한 <태양의 절반>은 세계화를 시도한 놀리우드의 야심작이다.
>> 세계 2위의 영화대국 놀리우드를 아시나요? (2) 놀리우드 야심작 <태양의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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