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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두 명. 하루키와 봉준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9월 1일까지 35만 부가 팔리며 전작 [1Q84]의 판매 추세를 뛰어넘었고 <설국열차>는 900만 명이 관람하며 무한궤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인은 왜 두 작가와 사랑에 빠졌을까. 성실함이 트레이드마크인 하루키와 외모부터 창의력으로 똘똘 뭉친 봉준호.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람.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이 만든 이야기가 스스로 말을 걸게 하는 솜씨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필자의 경험에서 유추해보자면, 어릴 땐 신선한 아이디어가 있는 영화에 열광했고 주제나 문체가 새로운 책을 주로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꽉 짜여진 이야기에 끌렸다. 복선과 주제가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 퍼즐을 짜맞추는 듯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를 보면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좋은 이야기란 그것이 독자나 관객들에게 풍성한 아이디어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 이야기의 이야기인 메타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런 이야기일수록 완벽하다기보단 어딘가 느슨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설국열차>가 바로 그런 종류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만든 방식은 두 사람의 스타일 만큼이나 전혀 다르다.


하루키가 이야기의 뼈대를 구성해놓고 꼼꼼하게 늘려가는 스타일로 글을 쓴다면, 봉준호는 완벽하게 밑그림을 그려놓은 뒤 그중에 취사선택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다자키 쓰쿠루가 여백이 많은 인물이라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일으킨다면 <설국열차>에는 감독이 못다한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 같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는 스타일은 미리 단편을 써본 뒤 그 소재가 장편에 어울릴 만하다고 생각되면 장편으로 이야기를 늘리는 방식이다. 당연히 문체가 늘어지고 이야기가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툭툭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원래 짧았던 이야기를 늘렸기 때문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경우에도 원래 단편으로 기획했다가 장편으로 늘려 쓴 것이다. 반면 봉준호는 머릿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뒤에야 영상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마더>를 보라. 그 단순한 이야기에도 하나도 버릴 장면이 없다. 감독은 싫어한다지만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봉 감독은 현장에서는 비교적 여유롭다. 머릿속에 그림이 다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봉테일'은 현장에서 사소하고 꼼꼼한 데까지 신경써서 붙은 별명이 아니라 프리프로덕션 작업이 철저하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결과물의 아우라는 닮았다. 두 작품 모두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설국열차>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화로만 읽는 것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를 왜곡된 역사에 대한 메타포로만 읽는 것만큼이나 일차원적이다. 두 이야기 모두 '결'이 많은 이야기들이다. 즉,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설국열차>는 인류의 탄생설화가 되기도 하고 <괴물>과 비슷한 재난영화가 되기도 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집단과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상실의 시대]에 열광했던 독자들에 대한 후일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자 입장에선 자신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나름의 인사이트를 가져갈 수 있다.


결국 두 작가는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던져놓고 각각 개별적인 그릇으로 담아가라고 한다. 이것이 풍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이야기의 조건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에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다자키의 후배인 하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아버지는 그 이상한 이야기를 이상한 이야기 그대로 받아들였을 거예요. 뱀이 입에 문 먹이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천천히 삼킨 다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화시키듯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독자와 관객으로서 좋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닐까.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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