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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할 것 같다. 겉표지에 색채가 너무 많다. 물론 여기에도 검정색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제목에 부합하는 독서라고 본다.


사실 처음엔 하루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는 허세 작렬이라 생각했다. 재즈, 위스키, 거침없는 섹스... 20대 초반의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하루키를 다시 읽기 시작한 건 한 친구 때문이었다. 지금 대중문화 평론을 하고 있는 그는 [태엽감는 새]의 광팬이었다. 우리가 자주 갖던 모임에서 그는 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하루키와 [태엽감는 새]를 이야기했다. 물론 <매드맥스> 시리즈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위대함을 칭송하고난 뒤의 일이긴 했지만. 내가 프랑스 영화를 말하면 그는 그런건 다 쓰레기라고 했다. 나도 구로사와 아키라가 좋았지만 내가 좋아한건 <7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이키루> 같은 영화였다. 결국 우리의 접점은 스탠리 큐브릭에서 찾아졌고, <시계태엽 오렌지>는 당시 우리들에게 최고의 영화가 됐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 P.244

어쨌든 나는 대화에 끼기 위해 그 책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태엽감는 새]를 읽은 뒤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게 됐다. 당시 가장 친한 친구가 [빵가게 습격사건]의 광팬이어서 함께 거의 모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나에게 최고의 하루키 책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그리고 [태엽감는 새]다. 나는 우물에 갇히거나 스스로 침잠하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작은 이야기를 맛깔나게 부풀리는 글솜씨도 물론 좋았다. 그뒤 각자 제갈길을 가는 동안 하루키도 시들했다가 30대 중반에 [1Q84]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분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세계의 끝...]이나 [태엽감는 새]가 스스로 갇히는 이야기라면 [1Q84]는 갇힌 존재가 밖으로 나와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였다. 세월의 힘이 만들어낸 정반대의 이야기. 은둔하는 줄 알았던 작가가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기분이랄까. 그러나 2권 3권을 읽으면서는 다시 망설여졌다. 한겨레 토요판의 무라카미 하루키 특집 기사('작가 하루키는 없고 그에 대해 말하는 우리만 있다')에서 김봉석 평론가가 말했던 "이걸 내가 왜 읽고 있지" 하는 감정이 딱 내 기분과 같았다.

"난 이렇게 생각해. 사실이란 모래에 묻힌 도시 같은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쌓여 점점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모래가 날아가서 그 모습이 밝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기억을 감출 수는 있어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어." P.229

그리고 몇년 뒤 등장한 긴 제목의 하루키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땐 줄리안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올바르다고 믿었던 기억에서 왜곡된 역사를 찾아가는 방식이 비슷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은 [상실의 시대]의 후일담처럼 느껴졌다. [상실의 시대]가 띄엄띄엄 찾아낸 기억 속에서 허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과거를 찾아가 왜곡된 역사를 이불 개듯 차곡차곡 개어놓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그때 그 책'을 뒤늦게 다시 읽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뭔가 더 책임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P.51

하루키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한국에서 하루키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하루키의 책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문화 현상이다. 하루키를 읽는다는 것은 하루키의 세계를 읽는다는 말과 동의어다. 위스키를 홀로 조용히 마시고, 외모는 괜찮아 여자들이 제법 따르지만 본인은 정작 큰 관심이 없고, 재즈와 클래식을 듣고, 생계에 고통받지 않는 적당한 전문직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남자. 집단에 잘 속하지 못하는 개인주의자. 90년대에 쿨하게 느껴졌던 이런 스타일이 2013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들이 함께 나이를 먹으며 추억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하루키와 함께 읽었던 무라카미 류나 요시모토 바나나가 하루키만큼 되지 못한 이유는, 시대가 공유할 캐릭터를 창조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능이란 말이야, 육체와 의식의 강인한 집중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기능을 발휘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나사가 하나만 빠지거나, 아니면 육체의 어딘가 연결선 하나만 툭 끊어지면, 집중 같은 건 새벽 안개처럼 사라져 버려. 예를 들어 어금니 하나가 욱신거리기만 해도, 어깨가 심하게 결리기만 해도, 피아노는 제대로 칠 수가 없어. 사실이야." P.104

이 책의 첫 문장은 아주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는 왜 죽음만을 생각했을까. 왜 대학교 2학년이며 왜 7개월 동안일까. 첫 문장만 읽고도 내용이 궁금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시작이다. '죽음'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지배하는 주제인데 책에서 쓰쿠루가 즐겨 듣는 프란츠 리스트의 'Le mal du pays'라는 피아노 곡의 음침한 선율처럼 책은 쓰쿠루의 여정을 무겁고 느리게 중계한다. 이 느린 이야기가, 하루키식 예의 그 꼼꼼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히는 것은 하루키가 깔아놓은 미스터리한 복선 덕분이다. 어릴 적 백설공주처럼 하얗고 예뻤던 시로의 강간과 피살은 시종일관 궁금증을 자아내며 쓰쿠루의 여정에 추진력을 실어준다.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건 자기 육체를 벗어난다는 말과 같아요. 자기 육체라는 한정된 우리를 벗어나 사슬을 벗어던지고 순수하게 논리를 비약시키는 거예요. 논리에 자연스러운 생명을 주는 거죠. 그것이 사고에서 자유의 핵심입니다." P.83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고등학생 시절 네 친구들이 있었다.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 서로 다른 재능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나고야에서 자고 나란 그들은 항상 함께였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네 친구들이 모두 색깔이 있는 이름을 가진 반면 쓰쿠루에게는 색채가 없었다. 그래서 쓰쿠루는 자신은 이 팀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원래 완전한 사각형이 자신 때문에 어색한 오각형이 된 거라고 믿었다. 하루키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그도 팀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각형의 균열은 쓰쿠루가 도쿄의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찾아왔다. 처음에 쓰쿠루는 나고야에 남은 네 사람과 잘 지냈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 7월' 그는 그룹에서 버림받았다. 왜 제거되었는지 영문을 알려주지 않은 채 친구들은 그를 피했다. 그 이후 쓰쿠루는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무려 16년 동안 피상적인 관계 밖에 맺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쓰쿠루는 알고 싶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 P.129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때, 시간이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신화는 깨어지고 믿음은 배반한다는 사실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한 사상도 없으며 완벽한 역사도 없다. 그런 것은 애당초 존재할 수 없다. 완벽해 보이는 것은 다만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화에 다름 아니다. 설화가 구전되듯이 시꺼멓던 속이 새하얀 눈덩이를 만나 굴러가면 사람들은 그 속에 원래 시꺼먼 속이 있었다는 것을 모른 채 하얗고 커다란 눈덩이만 보게 될 것이다. 그토록 완벽해 보였던 다자키 쓰쿠루의 옛 친구들도 사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약한 아이들이었다. 그때 그들이 쓰쿠루를 제거했던 것은 결국 보호본능이 희생양을 찾은 것이었다. 제각각의 핑계가 16년의 시간을 뭉개왔던 것이다.

여전히 말은 나오지 않았다. 쓰쿠루는 그저 입을 다물고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호수로 눈길을 주었다. 그때 했어야 할 말이 떠오른 것은, 나리타행 직항편을 타고 좌석 벨트를 맨 다음이었다. 적절한 말은 왠지 항상 뒤늦게 찾아온다. P.386


하루키는 다자키 쓰쿠루가 느끼는 마음의 변화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들여다본다. [상실의 시대]와 다른 점이 문체에서도 발견되는데 예전에 은유하며 거리를 두었던 것에 비해 이번엔 꼼꼼하게 설명한다.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듯이. 지금 역에 들어온 기차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잘 기억해달라는 듯이.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리스트의 곡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음악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의 정서처럼 (혹은 시로처럼) 우울해지기엔 이 책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상실의 시대]와 확연히 다르다. 지금껏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갈망한 적 없던 쓰쿠루는 새벽에 계속 여자친구인 사라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를 원한다고 지금 당장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하루키의 책에서 이토록 적극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쓰쿠루의 눈앞에는 그가 걸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생을 살아온 한 여성의 건강한 육체가 있었다. 쓰쿠루는 그 무게를 절절히 느꼈다. 16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만 한 무게를 갖는지 그녀를 앞에 두고 비로소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서만 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P.333

책에는 세 명의 여자가 나온다. 현재 여자친구인 자유분방하고 현명한 사라와 옛 친구들인 시로와 구로. 시로는 심약한 미소녀였고 구로는 한때 쓰쿠루를 좋아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전혀 색채가 다른 이 세 명의 여자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쓰쿠루를 성장시킨다. 말하자면 이 책은 쓰쿠루가 세 명의 여자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 어떻게 성장했는가에 대한 보고서인 셈이다. 쓰쿠루는 지난 16년간 성적인 꿈을 꾸었다. 그의 꿈속에 등장했던 두 여자인 시로와 구로. 한 여자는 놀랄 만큼 예뻤고 다른 여자는 가슴이 컸다고 기억했던 두 여자. 현재 두 여자는 모두 먼 곳으로 떠났지만 16년 전 버림받았던 쓰쿠루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쓰쿠루가 떠난 순례는 꿈속의 두 여자를 찾아 떠난 순례였다. 속에서 그가 사정했던 시로는 자신에게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며 마음의 병을 앓았고 왠지 모르게 사정하지 않았던 구로는 핀란드로 떠나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었다. 16년간 마음을 열지 못했던 쓰쿠루는 '순례의 해'를 지나 이들의 비밀을 알고난 후에야 비로소 이들이 등장하는 성적인 꿈을 멈추고 현재의 여자친구인 사라를 갈구할 수 있게 됐다. 마치 오래 머물고 있는 기차가 떠나야만 다른 기차를 플랫폼에 세울 수 있는 기차역처럼.

아버지는 그 이상한 이야기를 이상한 이야기 그대로 그냥 받아들였을 거예요. 뱀이 입에 문 먹이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천천히 삼킨 다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화시키듯이. P.118


어쩌면 쓰쿠루의 이야기는 소설의 초반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쓰쿠루의 후배인 하이다가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처럼 '이상한 이야기'로 남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여자를 잊고 쓰쿠루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살았던 거야." 감추어진 역사가 밝혀지면 뭔가 거대한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결국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쓰쿠루에게도, 우리에게도.


사람의 마음은 밤의 새다. 조용히 뭔가를 기다리다가 때가 오면 일직선으로 그쪽을 향해 날아간다. P.308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내게 하루키 최고의 책으로는 남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이 책은 그저 [상실의 시대]의 다른 해석판으로만 기억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하루키 그 자신에게는 꼭 필요했던 책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은 든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지금껏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상실의 시대] 속으로 그는 기꺼이 다시 들어간 것이다. 더구나 60이 넘은 작가에게 이런 감수성이 남아 있다는 것은 하루키와 함께 20대와 30대를 살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 더 설렐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이어서 기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상실의 시대
국내도서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양억관,유유정역
출판 : 인터파크 200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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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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