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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2주 만에 <감시자들>을 봤습니다. 영화가 잘 나왔다는 건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퍼시픽 림>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감시자들>은 어떨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을 나선 첫 느낌은 "무난하다" 였어요. 두 개의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느낌입니다.


<감시자들>은 도청과 CCTV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신입 여자 경찰의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원작은 2007년 홍콩영화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 했다고 밝히고 있죠. 스토리도 거의 똑같습니다. 지금까지 도청과 CCTV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개 '빅브러더'형 영화였습니다. 도청과 감찰은 모두 불법이었고 그 속에 사생활을 침해당하는 개인이 있었던 거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도청>과 피터 위어의 <트루먼 쇼>, 토니 스콧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물론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도 빼놓을 수 없겠고, 키에슬롭스키의 <레드>나 에로틱 스릴러 <슬리버> 같은 영화도 있네요. 지하 괴수 사무실(?)에서 온갖 괴수들을 풀어 놓고 CCTV로 통제하는 <캐빈 인 더 우즈>, 집 안에 CCTV를 설치해 초자연적 현상을 파운드 푸티지 영화로 만든 호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아예 작정하고 CCTV를 영화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영화죠. 이 영화들에서는 몰래 도청하고 감청하고 엿보는 데서 오는 쾌감과 서스펜스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시자들>은 어떤가요? 엿보는 쾌감이 있나요? 아닙니다. 극중에 황반장(송골매/설경구 분)이 하윤주(꽃돼지/한효주 분)에게 하는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아르고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이 100개 달린 거인. 눈깔이 100개나 있으니 절대 놓치는 게 없지. 난 모든 걸 보고 빠짐없이 기억하는 사람을 원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중점은 100개의 눈깔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그들은 경찰입니다. 엿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범인을 잡는 게 목적입니다. 즉, 이 영화에서 CCTV는 엿보는 장치가 아니라 범인을 잡기 위한 수단입니다. 범인은 CCTV의 사각지대로만 다닙니다. CCTV는 팀원들이 협업을 하는 근사한 수단이 될 뿐, 빅브러더형 서스펜스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시자들>은 <도둑들>과 비슷한 케이퍼 무비 혹은 하이스트 무비의 일종입니다. 케이퍼 무비가 도둑들의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경찰들의 영화라는 게 다를 뿐이죠. 자기의 역할을 프로페셔널하게 잘 해내는 팀원들이 있고 그들이 손발을 맞춰 전문적으로 일을 해내는 데서 오는 쾌감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인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멋진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캐릭터 무비인 셈이죠. <도둑들>이 팀원들을 제각각 깨알같이 부각시켰다면 <감시자들>은 고참인 황반장과 신입팀원 꽃돼지를 한 팀으로 묶어 두 사람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조직원들 간의 배신으로 복잡하게 꼬기 보다는 명백한 악당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화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감시자들>에는 감시하는 캐릭터와 CCTV를 피해다니는 캐릭터 사이의 추적 스릴러와 액션만 남았네요.


추적 스릴러로서 <감시자들>은 훌륭합니다. 추적 과정의 개연성도 있고 프로들 사이의 싸움이라고 느껴지는 긴장감도 있습니다. 큰 사건은 대개 작은 틈이 벌어지면서 터지기 마련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아주 작은 소음이 큰 사건으로 번집니다. 리드미컬한 편집은 쇼트들 사이의 긴박감을 만들어냈고, 직선으로 달리는 캐릭터들은 사연을 절제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감시자들>에서 아쉬운 점은 CCTV라는 소재를 사용했으면서도 그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또 경찰 성장 영화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신입팀원 꽃돼지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먼저인지 임무가 먼저인지를 놓고 두 번이나 갈등에 빠집니다. 마지막에 꽃돼지는 쓰러진 황반장을 놓고 이전과는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만 그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녀는 그저 범인을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것일까요? 구구절절 설명이 나올 필요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제임스(정우성 분)가 정통(김병옥 분)에게 보여주었던 것 만큼의 인과관계는 만들어 주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효주, 설경구, 정우성의 연기는 넘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절제한 설경구에게서 <공공의 적>의 강철중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악역을 맡은 정우성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배와 목의 경동맥 급소 두 방으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로서 냉혹한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효주는 특유의 털털한 이미지가 캐릭터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임에도 자칫하면 극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미녀 경찰로 갈 수 있던 캐릭터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차분하게 소화해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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