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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Z> <스타트렉 다크니스> <잭 리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더 브레이브>의 공통점은? 바로 SKYDANCE의 영화라는 점. SKYDANCE는 파라마운트를 통해 주로 영화를 배급하는 제작사. 언젠가부터 Paramount 로고 다음에 SKYDANCE 로고가 나오는 게 낯익게 느껴졌다. CEO는 오라클 래리 엘리슨의 아들 데이빗 엘리슨으로 83년생이다. 배우 경력도 있으나 영화 제작이 주경력.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SKYDANCE를 창업 수 년만에 영향력 있는 제작사로 키웠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월드워Z>는 맥스 브룩스의 2006년작 [세계대전Z]를 영화화했다. 맥스 브룩스는 미국판 SNL의 방송작가 출신으로 2003년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다룬 소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세계대전Z]는 아마존에서 무려 50주 동안 1위를 지킨 초대형 베스트셀러이니 그는 좀비 전문가 중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닐까. 영화 판권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피안웨이 프로덕션과 브래드 피트의 플랜B 엔터테인먼트의 대결이라는 세계적인 뉴스를 양산해내면서 결국 브래드 피트에게 팔렸다.


브래드 피트와 데이빗 엘리슨은 감독으로 마크 포스터를 선택했다. <몬스터 볼>로 흑진주 할리 베리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기고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라는 재기발랄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다. 대작 영화로는 <007 퀀텀 오브 솔라스>와 <머신건 프리처>를 만들었는데 대체적인 평가는 '무난하다'는 것. 액션 장면은 괜찮았지만 전반적으로 튀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대형 액션 영화들이었다. <월드워Z>는 좀비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가족영화 소재로 끌어들인 첫번재 영화다. (세상에 좀비영화가 '15세 관람가'라니!)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B급 액션이었고, <나는 전설이다>가 비슷한 변종인류를 다루긴 했지만 스케일이 이렇게 크지 않았던 점을 감안할 때 좀비가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영화는 <월드워Z>가 처음이다. 그래서 제작자는 뮤직비디오 출신이나 자기 색깔이 강한 감독보다는 무난한 완성도로 영화를 뽑아내는 마크 포스터를 선호하지 않았을까.



멀리 보면 1968년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좀비의 탄생을 알린 혁명적인 호러영화였고, 가깝게는 2002년 대니 보일의 <28일후>가 좀비의 부활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그동안 B급 호러영화의 자극적인 소재에 머물렀던 좀비는 <28일후> 이후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더 빨라지고 더 무서워짐과 동시에 세상은 묵시록이 되었다. 마침 경제위기와 맞물리며 인간은 결국 자본주의의 좀비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철학적인 성찰 마저 담겨 있었다. 조지 로메로가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를 백화점에 집어넣으며 자본주의의 그늘에 가린 생각을 지배당한 인간군상의 상징으로 그렸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28일후>의 성공 이후 좀비라는 소재는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속편인 <28주후>를 비롯해 <새벽의 저주>, <새벽의 황당한 저주>,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좀비랜드>, <하우스 오브 데드>, <레버넌트> 등의 영화가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이웃집 좀비>, <미스터 좀비> 같은 시도가 독립영화계에 있었다. 스티븐 킹의 [셀], 김중혁의 [좀비들],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가상 역사물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등의 소설이 쓰여진 것도 2000년대다. 좀비가 인기를 끌면서 좀비의 내면세계(?)를 그려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아이작 마리온의 [웜 바디스]에서는 꽃미남 좀비가 로맨스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고, 강풀의 웹툰 [당신의 모든 순간]은 모두 좀비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와 좀비가 된 가족의 휴먼 드라마를 그리기도 했다.


첫 가족용 좀비영화이다보니 원작소설 [세계대전Z]에 비해 영화 <월드워Z>는 상당히 안정된 각색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좀비영화의 공식인 '미확인 바이러스 발견->좀비 첫 발생->전염->대혼란->쫓기는 주인공->마비된 도시에서의 사투(대형마트 꼭 등장)->백신 발견->새 사회 건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좀비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진부한 스토리일 수도 있겠지만 좀비가 낯선 관객들에게는 좀비 입문영화로서 안정적인 내러티브인 셈이다. 기존 좀비영화들에선 피 튀기고 팔 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쯤은 예사였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피를 자제했다. 눈알 뒤집어지고 무작정 달려드는 정도로만 좀비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또 무시할 수 없는 차이나 머니의 할리우드 공습을 의식한 듯 원작에서 비중있게 다뤄진 중국 부분도 사라졌다. 중국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대만에서 시작됐다고 하더니 급기야 한국의 평택에서 좀비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다고 말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필라델피아, 평택(!), 예루살렘, 카디프 등이다. 좀비가 지배하게 된 세상에서 중국 의사, 범죄조직원, 미군, 한국 국정원 직원(!) 등 생존자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UN 조사관을 따라가는 전형적인 어드벤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좀비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UN 소속 제리 레인은 마치 제임스 본드나 이단 헌트처럼 훈련된 전문가 같은데(영화에서는 그가 UN 조사관을 그만 둔 배경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다빈치 코드>의 랭던 교수, <인디아나 존스>의 인디아나 존스 교수처럼 추리력도 갖춘 인물이다. 그런데 액션 영웅과 지식 영웅의 사이에 있는 탓인지 사실 조금 카리스마가 약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세 씬을 꼽고 싶다. 우선, 영화 초반 필라델피아에서 레인 가족이 처음으로 좀비와 맞딱뜨리는 장면. 그 장면은 컷 바이 컷으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교과서적으로 잘 만들었다. 교통체증이 일더니 오토바이가 사이드미러를 치고 지나가고 트럭이 달려오고 이윽고 좀비가 등장한다. 순차적으로 강도가 세지더니 어느 순간 확 낚아챈다. 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키는 스릴러의 기본적인 공식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거대한 담을 기어오르는 좀비들. 높은 담을 넘기 위해 좀비들은 스스로를 짓밟고 오른다. 사실 이것은 좀비들끼리 협동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전략인데 영혼이 사라진 그들이 협동심을 갖게 된 계기나 고찰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스펙터클로서 이만한 장면은 여태껏 좀비영화에 없었다. 셋째, WHO 연구소 B윙 건물에서 펼쳐지는 서스펜스. 좀비도 눈으로 인식한다는 것에서 착안해 마치 <미션 임파서블>에서 줄타기 액션을 하는 장면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신분 노출 위험을 무릎쓰고 침투하는 장면, <에이리언 2>에서 괴물의 위치를 피해 움직이는 장면 혹은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이 주인공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장면처럼 숨죽이게 한다. 스릴러 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후반부에 배치되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악당(좀비, 경찰, 나찌, 공룡, 에이리언 등)이 얼마나 포악한 놈인지 관객이 알면 알수록 서스펜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웨일스 WHO 연구실 건물에서의 긴박감 넘치는 클라이맥스에 비해 영화의 엔딩은 다소 허무하다. 갑자기 모든 상황이 너무 쉬워보인다. 이것은 <컨테이젼>, <칠드런 오브 맨>, <아웃브레이크> 같은 전염병 영화의 한계를 답습한 것인데 영화는 깜짝 반전으로 속편을 예고하던 다른 블록버스터와 달리 고전적인 방식으로 끝맺고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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