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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USC 영화예술대학 건물 완공식에서 이대로 가면 영화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했죠. 관객이 줄어 극장이 속속 문 닫으면 미래의 영화는 브로드웨이처럼 돼 가격차별화가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즉 대작 영화는 비싸게, 작은 영화는 싸게 티켓 값이 책정된다는 말인데 아예 로맨스 드라마 같은 장르는 극장 보다는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직행할 것이라고 말했군요. 그래서인지 오늘 <맨 오브 스틸>을 최상의 음향시설을 갖추었다는 극장에서 3D로 보면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한 스펙터클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결국 이런 영화만 남게 되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슈퍼맨 이야기로 들어가 봅시다. 슈퍼맨은 배트맨과 더불어 DC코믹스의 대표적인 히트 캐릭터입니다. 그들은 2000년대 슈퍼 히어로들이 속속 영화로 돌아오면서 크리스토퍼 리브의 낙마사고 이후 중단된 이 시리즈를 되살리고 싶어했습니다. 2005년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2006년엔 <슈퍼맨 리턴즈>를 내놨죠. 그러나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결과는 배트맨은 돌아오고 슈퍼맨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슈퍼맨 리턴즈>는 <엑스맨>을 프랜차이즈로 만들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시점에서 본 슈퍼맨 이야기였죠. 맥지, 브랫 래트너 등 감독이 계속 바뀌더니 결국 브라이언 싱어로 낙찰됐는데 드라마는 독특했지만(슈퍼히어로가 불륜을 저지르고 아들도 있다니요!) 슈퍼맨에게 기대하는 액션이 약했습니다. 결국 흥행에서도 별볼 일 없는 성적을 내고 관심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주연을 맡은 브랜든 루스도 뜰 것 같더니 묻혀버렸죠.


그 사이 경쟁사인 마블코믹스는 <어벤져스>를 비롯한 대작 프로젝트를 속속 발표합니다. DC코믹스는 마블코믹스의 연이은 성공에 배가 무척 아팠을 겁니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이 구세주가 되어 준 배트맨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배트맨은 액션 영웅이라고 불리기엔 조금 무거운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마블코믹스의 엑스맨-스파이더맨에서 헐크-아이언맨-캡틴 아메리카-토르의 <어벤져스>로 이어지는 라인업을 따라잡기에는 구성원도 부족하죠. DC는 최근 몇 년간 <조나 헥스> <그린 랜턴> <와치맨> 등을 영화로 부활시켰지만 눈에 띄는 히트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슈퍼맨을 다시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트맨>이 성공한 방식 그대로 시리즈를 '리부트'하기로 합니다. 여기에 원더우먼과 플래시맨(배리 앨런)을 부활시켜 슈퍼맨을 리더로 하는 <저스티스 리그>를 선보인다는 거대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슈퍼맨 리부트 프로젝트는 DC에게 아주 중요한 영화입니다.


리부트 슈퍼맨의 칼 엘 역엔 '불운의 사나이' 헨리 카빌이 낙점됐습니다. 그가 왜 불운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냐면 수많은 대작 영화에서 캐스팅에 번번이 낙마했기 때문입니다. <슈퍼맨 리턴즈>가 맥지 프로젝트였을 때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가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을 맡으며 브랜든 루스에게 밀렸고,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 컬렌 역과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세드릭 역할은 로버트 패틴슨에게 뺐겼으며, <007 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 역할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도 크리스찬 베일과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배우가 바로 헨리 카빌입니다. 만약 헨리가 브루스 웨인이 됐다면 배트맨의 역사는 바뀌었겠죠.


그의 강점은 잘 생긴 얼굴과 탄탄한 근육입니다. <신들의 전쟁>의 테세우스 역을 할 땐 식스팩을 넘어 에잇팩 근육을 자랑합니다. <맨 오브 스틸>에서도 역시 그의 근육이 화제가 되고 있군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헨리의 얼굴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너무 정형화된 미남이라고 할까요. 브랜든 루스도 그렇고 너무 잘 생겨서 외모만으로도 이미 슈퍼히어로입니다. 빈틈이 없어 보여요. 크리스토퍼 리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슈퍼맨' 캐릭터가 갖는 상징성이 이런 완벽남을 떠오르게 하나 봅니다. 슈퍼맨이 클락으로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그가 폭발하는 구조선에서 인명을 구조할 때입니다. 철근 구조물을 온몸으로 부여잡고 바다에 빠진 그가 물 속에서 떠오르는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이 마치 예수처럼 보입니다. 고결한 외계인 선각자에 최근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지구 영웅. 다른 슈퍼히어로들과는 태생부터가 다르니 완벽남을 쓸 수 밖에 없나봅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리브가 활동했던 1980년대와 지금은 남성상이 다르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유쾌한 남자나 크리스찬 베일처럼 우수에 찬 남자가 영웅에 더 잘 어울리는 시대입니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이 크리스토퍼 리브처럼 엄청난 반향을 몰고 올 수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돋보였던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마이클 섀넌을 말하겠습니다. 에이미 애덤스, 러셀 크로, 다이안 레인, 케빈 코스트너, 로렌스 피쉬번 등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합니다만 사실 큰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조드 장군 역을 맡은 마이클 섀넌 만이 깊은 인장을 새기고 있습니다. 짧은 머리에 강인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끝까지 칼 엘을 압도했습니다. 마지막에 허무하게 끝나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슈퍼히어로계의 가장 인기 있는 기자인 로이스 레인 역의 에이미 애덤스는 <줄리 & 줄리아> <마스터>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 출연했던 당차고 사랑스런 여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초반에 멋지게 등장해 극을 끌고 가다가 나중에는 슈퍼맨이 이동한 자리에 장식처럼 나타나는 이상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당찬 여기자에서 칼 엘과 사랑에 빠지는 수동적인 여자가 됐는데 첫키스를 하고 난 뒤 그녀가 하는 대사도 참 어색합니다.


<슈퍼맨 리턴즈>가 액션에 약했다는 평가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맨 오브 스틸>의 물량공세는 정말 대단합니다. 시종일관 부수고 또 부숩니다. 내러티브가 점프컷으로 뚝뚝 끊어져 있는데 크립톤인 전사 라라의 액션 역시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뚝뚝 끊어집니다. 그런데 그 액션이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강렬합니다. <300> <서커 펀치>를 만든 잭 스나이더 감독은 액션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죠. <300>에선 고속촬영의 극단적인 맨몸 액션을 선보였고, <서커 펀치>에서는 내러티브를 무시하고 게임을 영화로 옮기는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슈퍼맨이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대비되는 장점은 두 주먹을 뻗어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슈퍼맨이 날아오르는 장면의 속도감은 로케트에 비견할 바가 아닙니다.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 등 하늘을 나는 다른 어떤 캐릭터보다 빠릅니다. 마치 만화 <드래곤볼>을 볼 때 느꼈던 파워와 속도감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빨려들어갈 것 같은 엄청난 속도감을 제대로 표현해낸 영상 덕분에 액션 씬을 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그러나 액션에 비해 드라마는 참 약합니다. 러닝타임이 143분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 구성도 참 허술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도 여기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너무 길고 액션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겹치는 장면을 없애면 러닝타임을 2시간에 충분히 맞출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야기상에 허점도 상당한데 군인이 갑자기 크립톤 행성을 대사로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크립톤족을 수호하라고 보낸 칼 엘이 결국 크립톤족을 멸종시킵니다. 신문사 편집장은 뭔가 역할을 할 것 같더니 후반엔 슈퍼맨에 감탄하는 리액션 쇼트에만 등장하죠.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뿔테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클라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클라크도 계약직 기자로 입사하는군요. 이런!) 이런 논리적 오류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 실망한 이유는 유치한 대사 때문이었습니다. "감히 우리 엄마를 위협해!" 아마도 최악의 대사 어록에 두고두고 오를 대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크립톤 행성에서 지구로 보내진 칼 엘은 지구 입장에서 보면 민폐 캐릭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를 왜 지구로 보내서, 또 성인이 된 칼 엘은 왜 조드 장군에게 발각돼서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나요? 그러면서 본인은 인간을 돕는 자라고 주장합니다. 수많은 건물들을 부숴놓고 결국 지구인을 도왔다는 건데요.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회상으로 보여주면서 양부모의 영향으로 악 대신 선을 교육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브루스 웨인처럼 선과 악을 고민하는 캐릭터로 보이기 보단 지구인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엑스맨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사이클롭스를 닮았어요.


화려하고 볼 거리 많은 스펙터클에 감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영화가 어색했을까 생각해 봤더니 드라마가 허술했던 것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네요. 바로 슈퍼맨에게 기대했던 전통적인 요소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존 윌리암스의 빰빠밤~ 하는 음악이 사라졌고 특유의 빨간 팬티를 입지 않았습니다. 빨간 팬티야 촌스러워서 세련되게 바꿨다고 해도 주제가를 바꾼 건 두고두고 아쉽네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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