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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오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은 한 중년 남자에게 일어난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일본 출간 당시 "마지막 5페이지에서 세계가 반전한다"는 카피 만큼이나 마지막 장면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데 사실 반전 소설의 묘미는 반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읽을 때 더 재미있을 것을 감안한다면 책을 보면서도 과연 어떤 반전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반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재미가 있었고('페이지 터너'로서 글솜씨가 훌륭하다) 주인공 남자의 심리에 빨려들어가면서 반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책의 분위기를 옮겨보자면, 가정보다 회사에 충성해온 잘나가던 직장인인 중년의 히라타는 어느날 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뺑소니 사고. 딸은 헤드폰을 끼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 딸의 죽음을 자책하던 히라타는 도쿄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한적한 시골마을의 편의점 보안감시 책임자로 발령받아 온다. 5년이 지난 어느날 딸과 생년이 같고 생일이 비슷한 아이가 편의점에서 절도하다 잡히고 가족이 없는 그 아이에게 묘한 연민을 느낀다. 중년 남자와 한참 어린 여자 아이의 만남은 소설과 영화에서 가끔 나오는 소재이고([로리타]처럼) 묘한 성적 스릴이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스릴은 스릴로만 끝나야 더 그럴듯한 법. 이 책에서 히라타와 스에나가 마스미는 우정과 유사 부성애 혹은 연민 관계로만 제한되고 그래서 소설은 뒷 부분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사실 엔딩은 약간 뜬금없이 시작되는데 그전까지 둘 사이의 관계가 질퍽거렸다면 전혀 효과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엔딩에서 제시하는 주제는 인간의 운명의 굴레 비슷한 것이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깨어난 로미오가 줄리엣이 죽은 줄로 오해하고 자결하는 것처럼 잘못된 예측과 섣부른 오해가 결국 커다란 비극을 잉태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제3자인 히라타의 고교후배이자 의사 오제키의 시선으로 제시되는 마지막 가설은 지금까지 직선으로 달려온 소설의 주제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진실을 알리는 것보다 기왕의 의도에 맞게 조작된 현실이 어쩌면 그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이미 줄리엣은 죽었는데 로미오에게 그것이 당신을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읽기 전엔 제목이 너무 거창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책장을 덮은 후에는 한 남자를 중심으로 잔잔하게 펼쳐지는 이야기가 계절의 변화처럼 갑작스러우면서도 필연적으로 다가왔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양장)
국내도서
저자 : 우타노 쇼고(Shougo Utano) / 권남희역
출판 : 도서출판비채 20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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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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