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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보았던 영화를 나이 들어서 다시 보게 되면 그때 미처 몰랐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지요. 오늘 <에이리언> 시리즈 1,2,3편을 연달아서 보았습니다. 1편은 감독판, 2편은 스페셜 에디션, 3편은 재편집판입니다. 예전엔 친구들과 막연히 무시무시한 괴물이 등장하는 SF 공포영화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봤어요. 물론 그 전제는 지금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너무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라서 그런지 마치 처음 보는 듯 생소한 장면들도 많았어요. 팬이 많은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다 알만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개인적인 생각 위주로 써보려고 합니다. 사실 리플리를 복제해내는 4편도 다시 봐야하는데 세 편을 연속해서 보느라 살짝 지쳤네요. 다음에 다시 보게 되면 이 글에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배경


1편의 배경은 2122년, 2편의 배경은 그로부터 57년 후인 2179년, 3편의 배경은 5년 후인 2184년입니다. 1,2,3편을 나누는 기준은 리플리(시고니 위버)가 동면장치로부터 깨어나고 다시 잠드는 시점입니다. 즉, 세 편의 영화는 모두 리플리가 동면장치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해 잠드는 것으로 끝납니다.



2. 회사


회사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입니다. 회사가 없었다면 이 시리즈도 없었을 것입니다. 1편에서 지구로 귀환중이던 노스트로모호가 광물을 나르는 상업용 운반선(commercial ship)이 아니었다면 태양계 밖 그물자리 제타2에서 경고 신호를 보내며 멈춰 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회사는 고용원들에게 지적 존재를 발견하면 반드시 조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 전액을 몰수한다는 조항을 집어넣어 그들을 생명체 탐사에 강제로 투입합니다. 회사의 이름은 Weyland-Yutani Corporation. 그들의 모토는 "Building Better World." <프로메테우스>에서는 Weyland사가 선발대원을 모집하죠. 그 영화가 <에이리언>의 프리퀄이니만큼 아마도 Weyland-Yutani가 합병하기 전의 회사가 아닐까 합니다. 1,2,3편에서 모두 회사에 고용된 인물(company man)이 등장합니다. 1편에서는 안드로이드 애쉬(이안 홈), 2편에서는 버크(폴 라이저), 3편에서는 비숍(랜스 헨릭슨)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에이리언을 산 채로 데려가기 위해 리플리를 회유합니다.


참고로 회사에서 만드는 안드로이드는 두 종류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하이퍼다인 시스템의 120-A2 모델인 애쉬, 또하나는 휴머노이드(Synthetic Humanoid)인 비숍(Bishop 341-B)입니다. 첫번째 모델이 인간을 배신하는 말썽을 일으켜 비숍은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중 1원칙인 '인간을 해치거나 인간이 해를 당하게 방치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도 Artificial Person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는군요. 비숍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아이 A.I.>의 데이빗 만큼이나 영화 사상 가장 매력적인 안드로이드 캐릭터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떠납니다.



다시 Weyland-Yutani사로 돌아와 봅시다. 도대체 이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일단 굉장히 큰 기업인 것은 분명합니다. 상업용 운반선 노스트로모호의 소유주이고, 우주 정거장도 운영하고 있으며, LA-426 행성에 Hadleys Hope 기지를 지어 민간인 158명을 이주시켰고, 강력 범죄자들을 위한 노동 교화소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대 기업이 왜 그토록 이 무시무시한 생명체를 산 채로 잡아오길 원하는 것일까요? 리플리와 컴퍼니맨들의 대사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괴물을 전투용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들은 바이오-의학 분야에 정통함은 물론, 사업의 한 분야로 전투용병을 키우고 있다는 말일테고, 그것은 곧 국가를 대신해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국가의 개념을 초월한 엄청난 규모의 대기업인 셈입니다. 지금에야 전투용병을 키우는 다국적 기업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 시리즈가 처음 나왔던 1979년에는 아무리 큰 기업도 국가보다는 크지 않았죠. 그렇게 본다면 국가를 뛰어넘는 대기업을 그려낸 것은 선견지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업의 힘이 거대해지면서 1986년과 1992년에 만들어진 2편과 3편에선 회사의 힘이 1편에서보다 훨씬 더 크게 묘사됩니다. 2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플리 일행은 해병대의 우주선(USS SULACO)을 타고 탈출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해병대는 미국방부 소속입니다만 회사는 거리낌없이 작전 과정에서 해병대원들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버크에게 명령합니다. 회사와 국가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설정이겠죠.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회사는 괴물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리플리는 막연하게 그들은 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데려가려 한다고 생각하죠.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돈만 되면 뭐든지 한다는 투입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돈에 눈먼 대기업들은 나쁜 짓만 골라가며 합니다. 시리즈가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회사가 괴물을 어떻게 다룰지 알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리플리가 지나치게 에이리언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번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트라우마로부터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고 하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태인들이 그 기억을 꺼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베트남전을 경험한 참전군인들이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6.25 전쟁을 경험한 노인들이 여전히 북한을 무서워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관객은 시리즈 내내 리플리의 시선으로 에이리언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에이리언이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위험관리 전략입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죠. 거대하게 성장한 대기업이 이미 노스트로모호와 LA-426 행성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과연 그만한 '리스크테이킹'에 대한 대비도 없이 에이리언을 데려오려 했을까는 의문입니다. 리플리의 시간으로 생각해보면 그녀는 1,2,3편 사이에 계속 동면을 취했으므로 그녀의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은 2122년에 멈춰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의 배경은 2184년까지 흘렀습니다. 깨어보니 자신은 늙지 않고 시간은 한참 지나있는 식이므로 늘어난 시간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했을 것이므로 그동안 에이리언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을 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영화는 그런 것들까지 보여주지는 않는군요.



3. 에이리언


영화 속에서 에이리언이 공식적으로 불리워지는 명칭은 지노모프(Xenomorph)입니다. 물론 'it', 'her' 등 대명사로 주로 불리지만 회사는 그것을 지노모프라고 부릅니다. 세 편의 영화에서 지노모프는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우선 1편과 2편에선 인간을 숙주로 생명을 얻습니다만 3편에서는 소를 숙주로 해서 태어납니다. (극장판에서는 소가 아니라 개였죠.) 또, 1편에서는 소수의 개체일 뿐이었지만 2편에서는 많은 개체로 불어났습니다. 개미처럼 여왕이 따로 있어서 그녀가 알만 낳는다는 사실도 밝혀지죠. 수많은 알의 둥지도 2편 후반부에 드러납니다.


반면 3편에서는 하나의 지노모프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마치 바퀴벌레 같습니다. 이리저리 재빠르게 뛰어다니기 때문일까요. 1,2편에서는 사람을 바로 죽이지 않고 애벌레처럼 가둬두었지만 3편의 에이리언은 사람을 곧바로 죽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3편의 에이리언이 1,2편보다 신비감이 덜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평범한 악당처럼 보였어요.


1편이 괴물을 쫓는 과정에서의 긴장감으로 공포를 만들어냈다면, 2편에서는 총을 들고 맞서 싸우는 화려한 액션으로 엔돌핀을 뽑아냈습니다. 그러나 3편에서는 2편에서 총탄을 남발했다고 생각했던지 감독은 원시시대처럼 무기도 없는 맨손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리플리와 죄수들은 협동작전을 통해 뛰면서 괴물을 가둡니다. 그 장면에서 통로를 훑는 스테디캠이 3편의 강점입니다. <샤이닝> 만큼이나 멋지게 쓰인 스테디캠입니다.


예전에 봤을 땐 2편에서 환풍구로 이동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데 다시 보니 그 장면에선 갑갑하고 좁다는 느낌이 그리 강렬하게 와닿지 않더군요. 그대신 2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플리가 로봇을 닮은 기계를 타고 에이리언과 1:1로 싸우는 장면이 근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아이언맨> 같은 슈퍼히어로물의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한편으론 <에반게리온>이 이 장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 구성


1편과 2편의 구성은 아주 비슷합니다. 반면 3편은 많이 다릅니다. 물론 세 편 모두에게 공통적인 면도 있습니다. 고립된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죠. 정체불명의 괴물이 위협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각각 영화가 만들어진 1979년, 1986년, 1992년의 미국 시대상황과 맞물려 에이리언이 공산주의나 아시아 이주민들, 테러리스트들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을 대변한다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평론가 정성일 씨는 2편을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로 상징적인 해석을 한 적도 있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데요. 아마도 그때는 영화의 상징에 대한 그런 다양한 해석이 독특하다고 인정받던 시기였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비슷한 1편과 2편의 플롯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괴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가기 싫어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곳으로 가게 되죠. 1편에서는 보너스를 못받는다고 투덜대는 승무원들이, 2편에서는 에이리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리플리와 자신만만한 해병대원들이 미지의 장소로 향합니다. 1편의 승무원은 고작 7명인 반면, 2편에서는 14명으로 늘었습니다. 고전적인 공포영화의 공식은 가장 말 많고 용감한 척하는 자들이 먼저 죽는 것이죠. 반면 조용했던 사람들은 비교적 오래 갑니다. 그 공식대로 그들은 고군분투하지만 하나씩 죽어나가고 결국 주요 등장인물만 살아남습니다. 1편에서는 리플리 혼자 남고, 2편에서는 리플리와 뉴트, 힉스 상병(마이클 빈)과 비숍이 남습니다. 끝난 줄 알았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에이리언이 공격하고 결국 리플리는 괴물을 우주 밖으로 던져 버리고 우주선을 타고 탈출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에이리언>이 개봉됐을 당시 1975년작 <죠스>와 비교하는 평이 많았는데 <스타워즈>의 세계에 <죠스>를 옮겨놓았다는 리뷰가 있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죠스>처럼 되려면 1편과 2편을 합쳐놓아야 합니다. 1편은 얼떨결에 상어(에이리언)에게 물린 이야기이고, 2편은 본격적으로 상어(에이리언)를 잡기 위해 사냥꾼들이 나선 영화니까요.


반면 3편의 플롯은 다릅니다. 3편은 기존 공포영화의 플롯이라기보다는 영웅 스토리의 플롯입니다. 무지몽매한 백성이 사는 마을에 어느날 영웅이 등장합니다. 그는 백성을 이끌고 괴물에 맞서 싸웁니다. 백성들은 합심해서 영웅을 돕습니다. 결국 영웅과 백성이 괴물을 무찌르고 승리합니다. 영웅이 그곳에 있는 것을 알게 된 제국의 보스가 뒤늦게 나타나지만 영웅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스스로 최후를 맞습니다. 무지몽매한 백성이 사는 마을이 수도승 같은 25명의 죄수들이 살고 있는 광석 제련소이자 Y염색체 이상범죄자들의 노동교도소로 바뀐 점이 특이합니다. Y염색체를 강조한 걸로 봐서 분명히 남성-여성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부분은 뒷부분에 다시 적겠습니다.


3편은 기존 1,2편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1,2편에 익숙했던 관객들은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무척 어리둥절했습니다. 감독은 3편을 통해 이 시리즈를 장렬하게 끝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20세기 폭스는 이 시리즈를 끝낼 마음이 없었던 것 같긴 하지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3편의 플롯을 이렇게 가져간 것은 득보다 실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2편에서 힘들게 살려놓은 10세 소녀 레베카 뉴튼(캐리 헨)을 영화 시작부터 죽인 것은 너무했습니다. 기존 시리즈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1,2편에서 리플리가 각광받았던 것은 그녀가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괴물을 처치하고도 끝내 살아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녀가 돋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3편에서는 리플리를 순교자로 만들었습니다. 2편에서 뉴튼을 구하기 위해 지하로 뛰어들었던 그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데요. 물론 순교하는 장면이 장엄하긴 했지만 그 한 장면을 위해 다른 모든 부분이 희생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5. 여성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을 만들때 페미니즘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는 <델마와 루이스>라는 페미니즘의 기념비적인 걸작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일종의 우연이었다고 하죠. 그러나 어쨌든 <에이리언>은 최초로 영화 속에서 여전사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였고 여성이 이렇게 주체적으로 등장한 영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리즈를 다시 보면서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전사라고 보이는 것은 리플리가 유탄발사기와 화염방사기를 들고 퀸 에이리언에 대반격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딸을 구하려는 모성본능의 일종으로 구현된 자기방어와 폭력성입니다. 전반적으로 리플리는 여성으로서는 상대적으로 타자의 입장에서 객체화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1편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1편에서 리플리는 부함장입니다. 그녀는 함장 델라스(톰 스케릿)가 죽기 전까지 함장은 물론 대원들에게도 무시당합니다. 영화에서 이유가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녀가 여성이어서 당시 관객들에게 그런 설정이 무리없이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괴생명체가 머리를 감싼 케인(존 허트)을 우주선으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그녀의 명령은 너무나 논리적인 것입니다만 그녀의 명령은 가볍게 무시당합니다. (컴퍼니맨 애쉬가 문을 열어줍니다.) 결국 우여곡절끝에 홀로 살아남은 리플리. 그녀가 살아남은 것은 그녀가 무엇을 해서라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녀는 우주선 폭파장치를 가동시킨 뒤 다시 정지시키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버려 실패합니다. 이 부분을 보면 1편에서 그녀는 여전사라기보다는 갈팡질팡하는 소심한 여성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결국 구명정에 오르지만 그곳에서 에이리언을 발견하고 겁에 질려 드레스룸으로 숨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상당히 에로틱합니다. 리플리는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 속옷만 입은 상태입니다. 당시에 파격적이었을 골반이 드러나는 짧은 팬티를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가 동면에 들어갈 침실 옆을 살살 문지르는 에이리언의 손을 보여줍니다. 마치 애무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다음 장면은 우주복으로 다리를 집어넣는 리플리의 모습입니다. 그녀는 두꺼운 흰색 우주복으로 온몸을 꽁꽁 싸맵니다. 마치 강간하려는 에이리언에 맞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해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3편입니다. 3편에서 리플리는 아예 퀸 에이리언을 임신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가 의사인 클레멘스(찰스 댄스)와 동침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배 속에 에이리언의 아이가 들어있다니요. 이것은 클레멘스의 아이가 아니라 1편의 마지막에서 그녀를 강간하려 했던 에이리언의 아이가 틀림없습니다. 3편의 배경 FIORINA "FURY" 161 행성을 마치 수도승이 사는 행성처럼 설정한 것이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그곳의 수도승들에게서 임신이라는 단어는 전혀 연상되지 않고 오히려 불경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3편의 마지막 장면이 1편의 마지막에서 리플리가 자신이 노스트로모호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녹음했던 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도 그녀가 노스트로모호에서 유일했던 것은 아닌 셈이고, 그 사실은 다음 시리즈를 위한 암시가 됩니다.


2편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리플리에게 가족을 선물합니다. 리플리는 기지에서 한 여자 아이를 만납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아이는 도망다니다가 그녀의 친절에 결국 마음을 열게 되죠. 상징적인 남편 역할은 힉스 상병이 합니다. 신중한 성격의 그는 대장이 죽고난 후 해병대를 지휘하는데 리플리의 캐릭터 강화를 위해 상당히 비중이 축소된 역할입니다. 비숍이 구조선을 데리고 온 뒤 리플리가 뉴트를 구하러 지하로 내려갈 때 힉스가 그녀에게 아이를 꼭 구해오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마치 세 사람이 한 가족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부상당한 아빠 대신 엄마가 중무장을 하고 딸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려가는 것이죠.


한편 마지막 우주선에선 힉스가 아닌 비숍이 바람에 쓸어내려가려는 뉴트를 붙잡아주는데 그 장면에선 비숍이 아이의 아빠처럼 보입니다. 비숍은 엄마를 향해 이렇게 말하죠. "인간 중에선 제법 괜찮은 인간"이라고요.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뉴트는 리플리를 향해 "엄마!"라고 부르며 안깁니다. 그동안 그녀를 "리플리"라고 불렀던 것에 비하면 뜨악할 설정인데 당시에도 너무 직접적이어서 논란이 되었던 대사였죠.


이렇게 제임스 카메론은 리들리 스콧이 만들어놓은 '스스로를 지키는 여성'과 '괴물에게 강간당하는 여성' 사이의 여성상을 '가족을 지키는 전사로서의 여성 가장'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안정적인 회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에 비하면 데이빗 핀처는 제임스 카메론식 가족 이데올로기를 다 버리고 리들리 스콧이 제시해놓은 여성상을 극단으로 밀어부친 셈이죠.


PS) 데이빗 핀처는 <에이리언 3>를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빼고 싶어합니다. 스튜디오가 지나치게 간섭해 자신이 찍은 장면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라죠. 재편집판도 감독의 의도가 아니라 제작에 참여했던 스탭들이 다시 편집한 버전이라고 하니 영화를 다시 볼 분들은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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