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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시작하는 날 보기 좋은 영화는 따로 있다. 새로운 다짐을 하게 만들거나 기분 좋은 여운을 간직하게 하는 영화. 간절하게 소원을 빌어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이 바로 그런 종류의 영화다. 이 영화의 일본어 원제는 그냥 '기적'이다. 영어 제목은 I Wish. 이 제목들에 비해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한국 제목은 훨씬 기막히다. 미로비전의 네이밍 센스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그저 '기적'이라고 썼을 때는 뭔가 평이해보이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 텅빈 마음을 한 문장으로 채워주었다.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에서 설레는 동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2011년말에 한국에서 개봉했으니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어린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아닐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촬영한 카메라나 리듬감이 탁월한 연출력은 물론 아이들의 뛰어난 연기까지 흠잡을 데가 거의 없다.


특이한 것은 이 영화가 작년에 개통한 규슈 신칸센의 홍보물로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전체가 일종의 PPL인 셈인데, 사실 영화 보면서 그런 점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굳이 가고시마와 후쿠오카 사이의 신칸센이 언급되고, 꼭 그 장소에서만 상하행선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긴 했지만 그것은 영화가 홍보물로 기획됐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뒤늦게 갖게 된 생각일 뿐이다. 사실 영화에서 신칸센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신칸센이든 아니든 혹은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였어도 상관없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감독이 기차를 너무 좋아하고 어릴적 가고시마 화산 근처에 살았던 경험이 이 영화의 창작 배경이었다고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가 버려진 아이의 우울한 성장담이었다면 <공기인형>을 찍고난 뒤에 만든 이 영화는 <걸어도 걸어도>처럼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한 번은 따뜻하게, 한 번은 우울하게'가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컨셉트 같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연찮게도 고레에다 히로가즈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따뜻함과 차가움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차갑다고 분류된 영화의 엔딩은 따뜻하고, 따뜻하다고 분류된 영화의 엔딩은 대단히 현실적인데 어쩌면 감독에게 인생은 냉온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사건이 없이 잔잔하게 일상성을 풀어내다가 그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영화들은 관객들이 사건없는 일상에 동화되지 못하면 지루해하기 쉽고, 그래서 후반부까지 힘을 비축해가기 쉽지 않은데, 고레에다는 그런 점에서 참 탁월한 연출가다. 작은 일상 속에서도 어떤 부분에 힘을 주어야 하고 어디를 생략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안다. 한 마디로 영화의 리듬감을 유지하는데 귀신 같다. 아이들 세계를 둘러싼 어른들 역으로 오다기리 조, 오오츠카 네네,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가사와 마사미 등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연하고 있는 점도 감독이 일본에서 얼마나 신뢰받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형, 인디가 무슨 뜻이야?" "그건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말이야."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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