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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에 가면 버킹엄 궁전 근처에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이 있다. 두 사람의 컬렉션을 기증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인데 주로 의상과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무료 입장이 가능한 박물관이라 관광객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인데 들어가보면 그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특히 알버트 공의 컬렉션은 광범위해서 그가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재위한 1839~1861년 사이에 문화 발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1851년에는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첫 만국박람회를 개최할 정도로 문화와 산업 발전을 선도한 영국의 최전성기였다.


너무 잘 나가기만 해도 드라마가 되기 힘든 법. 명성에 비해 빅토리아 여왕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는 그다지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다지 드라마틱한 상황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했을 법한 빅토리아가 재위에 오르기 직전과 직후의 알버트 공과의 러브 스토리에서 소재를 찾았다. 18세에 삼촌 윌리엄 4세가 죽자 왕위에 오른 그녀는 권력을 넘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엄마와 애인 존 콘로이는 빅토리아의 왕위 계승이 예고된 어릴 때부터 섭정을 하고자 교육을 시키지 않았고, 빅토리아의 사촌인 벨기에의 레오폴드 국왕은 독일의 왕자 알버트를 빅토리아에게 소개시켜주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왕권에 대한 위협을 위기로 인식했던 빅토리아는 그들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지킨다. 알버트는 처음엔 의도를 갖고 접근했지만 곧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면서 빅토리아의 호감을 얻는다. 빅토리아는 인정받기 위해 정치력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궁전을 버킹엄으로 옮기고, 당시 휘그당과 토리당으로 양분된 정치지형에서 보수당인 토리당에 우호적이었던 왕실 관례를 깨고 자유적인 휘그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로 인해 당시 총리와 갈등을 빚게 되고 여왕이 되자마자 위기에 직면한다. 이제 빅토리아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독일의 알버트 왕자 뿐. 두 사람은 결혼을 한 뒤 권력을 나누며 위기를 하나씩 헤쳐나간다.


어쩌면 영화는 이 과정을 궁중 암투와 계략이 난무하는 스릴러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대신 여왕에게 닥친 위기를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가는 장치로만 활용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유려하고 엔딩마저도 단순하다. 아마도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여왕'으로 남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64년간 대영제국의 여왕이었던 빅토리아는 알버트와의 사이에 9남매를 두었고 그들을 유럽 각국 왕실에 시집 장가 보내면서 '유럽의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알버트가 42세에 장티푸스로 죽은 후 충격을 받아 평생 검정색 옷만 입었을 만큼 사랑이 깊었으니 드라마로서는 적격인 소재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무척 심심한 영화이기 때문에 빅토리아를 다루었다는 희소성 외에는 그다지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다.


감독은 대영제국의 여왕이 여전히 화폐에서 군림하고 있는 캐나다인 장-마크 발레. <카페 드 플로르>를 상당히 인상깊게 봤던 터라 그의 전작이 궁금해 찾아본 <영 빅토리아>에서는 그러나 <카페 드 플로르>의 흔적을 그다지 느낄 수는 없었다. 의상과 세트 디자인에 정성을 기울인 것과 일관되게 유려함을 유지하는 연출력 정도가 비슷하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빅토리아와 알버트 사이의 감성적인 장면들만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의 '줌 인 트랙 아웃'은 몽환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알버트가 편지를 낭송하는 장면에서 알버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백조의 호수'는 무척 감미롭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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