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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한 글은 블로그에서 자제하려고 했는데 돌아가는 사정이 답답해서 씁니다. 오늘 SBS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박 46% 문 38%로 더 벌어졌더군요. 문과 안이 함께 정치 이슈를 주도하던 11월만 해도 정권교체가 목전에 있다고 느꼈는데 아닌가 봅니다. 새누리당은 선거 9단이죠. 작은 것이라도 의혹 부풀리면서 네거티브로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저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만해도 느낌이 좋았는데 현실의 벽은 역시 높군요.


대통령 바뀐다고 생활이 달라지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 대통령 되면 여권신장에 좋은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말 들으면 이명박 정권도 견뎌왔는데 박근혜 정권이라고 못견딜 게 뭐가 있을까 생각도 들긴 하는데요. 그래도 과연 그렇기만 할 것인지 걱정이 더 큽니다. 이명박 정권의 인사와 박근혜 주변의 인사는 질에서부터 다르거든요. 이명박 정권이 최악의 사리사욕 정권이었지만 그래도 서울시에서 같이 일하던 인력풀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주변 인사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5공화국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이름들까지 나옵니다. 뭐 어쨌든 나라는 굴러가긴 하겠죠.


대선은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합니다. 1987년 노태우가 됐을 땐 아쉬웠지만 그래도 첫 직선제 대통령의 탄생이었죠. 1992년 김영삼은 군인 출신이 아닌 민간인 대통령이었고, 1997년 김대중은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를 이끌어냈습니다. 2002년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높였고 2007년 이명박은 어쨌거나 자산 버블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때의 시대정신은 "나도 부동산 부자 되고 싶다" 였고 이명박은 전과 14범이라는 사실이 묻힐 정도로 행운아였죠. 어쨌거나 2008년 전세계적으로 버블이 붕괴되면서 그런 시대는 다 지나갔습니다.


그렇다면 2012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수평적 리더십, 다함께 잘 사는 사회, 뭐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경제민주화니 복지국가니 하는 것이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공약들이죠. 그래서 문재인, 안철수 같은 사람이 재야에 숨어 있다가 국민에 의해 소환되어 야권의 후보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문재인, 안철수 만큼 저 시대정신에 걸맞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어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선거를 18일 앞둔 지금, 그 모든 과정들이 빚좋은 개살구처럼 보이네요. 물론 아직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구요.


자, 가정을 해봅시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역사는 박근혜의 당선을 어떻게 기록할까요? 그리고 한국의 바깥에서 중립적으로 바라본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장 먼저 "독재자의 딸, 대통령 되다" 라는 제목이 떠오릅니다. 박근혜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의 딸입니다. 한때 퍼스트 레이디 대리를 했던 사람입니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에 공동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인혁당 사건이나 수많은 고문사건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된 사과는 한 적이 없습니다. 아침에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 위로를 드린다"는 말을 하고 오후에 부산 내려가서 말춤을 추고 다녔습니다. 아마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옛날 생각이 나겠지요. 1979년 그날 이후 청와대에서 쫓겨났으니 34년 만에 다시 돌아가는 셈입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지금껏 오직 그 자리에 다시 오르기 위해 풍파를 견뎌왔습니다. 청와대에 다시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는 심정일 것입니다.


독재자의 딸이 출마해서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은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 케이코 후지모리를 떠오르게 합니다. 단, 알베르토는 2000년에 일본으로 도망간 반면 박정희는 34년 전에 피살당한 사람이라는 점이 다르죠. 선진국에는 없고 후진국에만 있는 일이라고 하는데 사실 선진국에는 독재자 자체가 없으니 비교 대상이 되지 않죠. 독일에서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발전을 이루어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독재자의 추억 속에 5년을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독재자를 잊지 못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더 열광합니다. 정말로 당시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지금은 노인이 된 그들이 그때는 젊었기 때문에 당신들의 젊음을 추억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한국처럼 노인들이 살기 힘든 나라가 없으니까요.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입니다. 10만 명 당 82명이 자살하는데 일본은 18명, 미국은 14명에 불과합니다. 그런 면에서 노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그들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대한 해바라기를 멈출 것입니다. 물론 그렇기 위해서는 복지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정권교체가 먼저 되어야 하는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힘든 문제네요.


두번째로 박근혜의 당선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면죄부입니다. 이런 헤드라인이 떠오르네요. "국민은 안정적 정권 연장을 원했다" 그렇습니다. 대선은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어야 합니다. 잘했다 못했다를 유권자들이 판단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판단도 못할 거라면 도대체 선거는 왜 하며 다당제는 왜 필요합니까? 지금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은 조사도 잘 하지 않지만 가을께 20% 간당간당하며 역대 최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잘못한 정권에게는 심판을 내려야 하는데 박근혜 당선은 이명박의 안전한 퇴로를 보장합니다. 한편에서는 퇴임 후 서울에 본부를 유치한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에 들어가 면책특권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는 걸 보면 결국 이명박을 심판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이 사상 유례없는 총결집을 이루어냈습니다. 박근혜+이명박은 물론 이회창, 이인제에 호남의 한화갑까지 뭉쳤습니다. 그에 비해 야당쪽은 지지부진하지만 어쨌든 민주당+진보정의당에 안철수 세력까지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상 처음으로 정책에 따라 대결하는 첫 대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수+산업세력 대 민주+진보세력. 지금까지 이런 선거가 없었습니다. 김대중은 이인제가 표를 갈라주는 바람에 당선됐고, 노무현은 어쩔 수 없이 정몽준과 단일화 시도를 해야 했습니다. 2007년에는 말할 것도 없는 보수의 절정기였죠. 그때 이명박은 두가지 기록을 세웠습니다. 최저 투표율과 최대 표차가 그것입니다. 500만 표 가까운 차이로 이겼지만 결과적으로는 노무현의 득표 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과거와 비교해보면 지금 정치권에서 보수세력의 힘이 많이 약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5% 안팎인 박근혜의 지지율은 결국 보수세력이 총결집한 결과인데 사실 이중 상당수는 박근혜의 개인적인 인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지금 여론조사의 결과대로 박근혜가 당선된다고 해도 지지율의 확장성은 떨어질 것입니다. 박근혜가 국정운영을 잘 못한다고 판단되면 박근혜 거품은 빠질 것이고 결국 보수세력은 몰락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야권의 재정비가 필요하겠지요.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이제 마무리를 해봅시다. 대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한 표 한 표 모두 소중합니다. 선거시간 연장은 새누리당의 반대로 결국 안될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12월 19일 오후 6시에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게 되겠네요. 아참, 종편도 따로 출구조사를 하겠죠. 선거시간 연장이 이번엔 안되더라도 내년 선거부터는 꼭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이참에 미국처럼 조기투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겠네요. 지난달 치뤄진 미국 대선에서 조기투표율은 33%에 달했습니다. 선거일 이전에 편한 날짜에 미리 투표를 하는 제도죠. 오바마도 이 제도를 권장하기 위해 직접 조기투표로 투표했습니다. 그밖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인수위 기간을 없애 선거 후 곧바로 취임하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이 문제는 다음에 또 적도록 하죠.


어쨌든 이런 제도도 결국 의지가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정당성을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이런 걸 하겠습니까? 대통령 바뀐다고 달라질 거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방에 있는 큰 강에 한 번 가보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세종시에 가봐도 좋고, 제주도 강정마을에 가봐도 좋고, 덕수궁 앞 쌍용차 희망텐트에 가봐도 좋고, 인터넷으로 뉴스타파를 찾아봐도 좋습니다. 그게 다 나랑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제발 통장 잔고가 두둑하신 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뒤늦게 너무 후회할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결국 모든 게 돈 문제이고, 정치라는 것이 국민에게 거둬들인 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할 것이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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