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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이 찍고 있는 유럽 관광시네마의 세번째 작품.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스페인, <미드나잇 인 파리>의 파리에 이어 이번에는 로마입니다. 물론 <맨해튼>을 뉴욕, <스쿠프>를 런던을 관광하는 영화라고 본다면 이 영화는 우디 앨런 도시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영화가 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제목은 무척 007스러운 <투 로마 위드 러브>. 파리가 낭만적인 사랑이고 스페인이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로마는 순박한 여자를 꼬셔내는 바람둥이 같은 사랑이랄까요. 아마도 로마 여행을 가본 분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로마 시내 회전교차로의 교통안내원이 로마에서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에는 네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우선, 길을 물어보다 이탈리아 남자 미켈란젤로와 사랑에 빠져버린 미국인 관광객 헤일리(앨리슨 필)와 그의 가족 이야기, 여자친구의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미국인 유학생 잭(제시 아이젠버그)이 미래에서 온 자신(알렉 볼드윈)에게 충고를 받는 이야기, 시골에서 신혼여행 온 커플이 우연히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 예측가능한(Mr. Predictable)'으로 불리며 규칙적인 삶을 사는 중년의 가장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가 어느날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는 이야기. 네 가지 이야기는 겹칠 법도 한데 의외로 서로 만나지 않고 따로따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래서 영화가 약간 중구난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네 가지 이야기는 모두 교훈이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최근들어 우화처럼 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달까요.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래도 교훈이 멋지게 포장됐던 작품이었습니다. "당신이 꿈꿔오던 아름다운 시절은 누군가에게는 바로 지금이다." 아주 근사하고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투 로마 위드 러브>에서는 그 방식이 좀 지나칩니다. 교훈을 주입식으로 퍼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령 미국인 유학생 잭의 미래 모습인 알렉 볼드윈이 잭을 따라다니며 해주는 충고는 그다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살다보면 그때 그 사랑이 나에게 어떤 과정이었는지 나중에 알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것마저도 그의 인생입니다. 바로 그 여자를 포기하라고 옆에서 종용하는 건 참 맥빠지는 일입니다. 누구도 한번 뿐인 인생을 완벽한 루트로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또, 레오폴도가 유명해졌을 때 운전수였던 남자는 레오폴도의 인기가 식은 뒤에 노천카페에서 갑자기 일어나 레오폴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부유하고 유명한 편이 더 낫습니다." 글쎄요. 공감이 가시나요? 이렇게 등장인물이 갑자기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장치들이 우디 앨런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건 알고 있고 또 그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런 장치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 지겹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가지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신혼부부 이야기였어요. 신부 밀리(알레산드라 마스트로나르디)는 시댁 모임에 가기 전 미장원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맙니다. 로마는 골목이 많아서 참 길 잃기 쉬운 곳이죠. 또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주 쉽게(?) 대답합니다. 가령, 직진 했다가 오른쪽 골목으로 가서 다리 건너서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나온다는 식이죠.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저만 느꼈던 감정은 아니었나보네요. 결국 밀리는 호텔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맵니다. 그리고는 거리의 영화 촬영장소에서 이탈리아의 스타들을 만나게 되죠. 평소 스타들을 동경해오던 시골 소녀였던 밀리. 결국 대머리 섹스심벌 아저씨는 밀리를 꼬셔 호텔로 데려갑니다. 한편 호텔에 홀로 남은 신랑 안토니오(알레산드로 티베리)에겐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가 들이닥칩니다. 배달사고(?)가 난거죠.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집안 어른들이 호텔방에 들어옵니다. 임기응변으로 안토니오는 안나를 밀리라고 소개합니다. 콜걸이 신부가 되고 진짜 신부는 바람둥이 배우 혹은 호텔 도둑과 하룻밤을 보내는 좌충우돌 코미디. 마치 로베르토 베니니 주연의 이탈리아산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디 앨런이 직접 등장해 극중 미래 사돈을 스타 테너로 만들어버린 샤워 오페라 에피소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후반부에 공연장면을 지나칠 정도로 길게 집어넣어서 감독이 스스로 '자뻑'중인건가 생각했는데 마지막은 역시 우디 앨런답게 프랑스 평론가의 말을 빌려 자학모드로 끝을 맺더군요. 하지만 샤워하면서 노래하면 더 잘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영화로 부풀린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죠.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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