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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모든 예비 엄마는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내 아이가 안 좋은 아이로 태어나면 어떡하지?" 그래서 많은 임신부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기형아 검사를 하고,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귀는 잘 들리는지, 말은 할 줄 아는지, 손가락은 다 있는지, 자폐증은 아닌지, 어디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만큼 엄마가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그 아이가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하는 과정은 무겁고 외롭다. 더군다나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어떤 아이가 나올지 전혀 모른다.


토마토 축제에서 몸을 던지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던 여행작가가 있다.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케빈이라고 이름지었지만 그는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아니, 케빈은 마치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갓난 아이때는 시도때도 없이 울더니 조금 크고 나서는 일부러 기저귀에 똥을 싼다. 엄마가 상상만 하던 여행 지도를 더럽히고 상처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엄마를 탓한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케빈에 대하여>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혹은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엄마의 독백이다. 서정적인 화면으로 엄마의 심정을 담아낸 린 램지 감독은 악마 같은 자식도 모성애로 감싸안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기난사사건을 모티프로 하되 그 원인을 삐뚫어진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에서 찾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 영화 속 케빈은 선천성 소시오패스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인격장애가 100명 중 4명 꼴로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소시오패스로 태어난 사람들 모두가 케빈처럼 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케빈은 그에게 활이 주어지고 난 뒤 로빈훗이 되고 싶은 욕망이 그를 살인범으로 만든 원인이 됐을 것이다. 록 듀어, 야스퍼 뉴웰, 에즈라 밀러가 연령대별로 나눠서 연기한 케빈은 마주하기 끔찍한 존재다. 엄마는 모성으로 감싸안으려 해보지만 그에게는 그런 시도마저 상투적이고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케빈은 아마도 모든 엄마들에게 악몽 같은 아이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케빈은 <오멘>에서 666을 새긴 소년이나 <샤이닝>에서 REDRUM을 외치던 소년을 연상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의 연출력 덕분일 것이다. 12살 소년의 성장드라마 <쥐잡이>, 자살한 남자친구를 둔 한 여성의 감성적인 드라마 <모번 캘러>를 연출한 영국 여성 린 램지 감독은 <케빈에 대하여>를 엄마의 시점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서정적인 드라마로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엄마의 감정에 맞춰 포개지는 차갑도록 섬세한 교차편집, 노래 가사로 대신하는 영화의 내러티브, 새로 이사간 넓은 집의 텅빈 공간에 대비되는 강렬하게 번지는 붉은 색. 여기에 수식어가 필요없는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지옥 같은 모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가 음악을 담당했다. 몇몇 곡들은 영화에 잘 어울리고 몇몇 곡들은 약간 부자연스럽다. Lonnie Donegan의 Mule Skinner Blues, Ham N Eggs, Nobody's Child, Buddy Holly의 Everyday, Wham의 Last Christmas, Washington Phillips의 Mother's Last Word to Her Son, The Beach Boys의 In My Room, Helena Gough의 Tephra, Jana Winderen의 Aquaculture 등의 곡들이 사용됐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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